[발행인 칼럼] 질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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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결정의 첫 번째 규칙은 반대의견 없이 결정을 내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결정이든 반대 논리를 펴는 존재가 없어지기 시작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상황이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피터 드러커의 말입니다. 단체나 기업은 물론, 국정 운영에서도 반대 논리를 펴는 존재가 없다는 것은 적신호가 켜진 것으로 봐야 한다는 얘깁니다.

취임 첫 해를 보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은 어떻습니까? 어떤 결정을 내리거나 정책을 추진할 때 반대 논리나 다른 의견을 펴는 ‘존재’가 있습니까? 그런 존재를 용인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습니까? 청와대나 국무회의에서 쟁점에 대한 토론이 벌어지기도 합니까? 아니면 지시를 내리면 토 달지 않고 충실히 수행하는 측근들만 있습니까? 궁금합니다. 국민과 소통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십니까? 국무회의나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현안에 대해 잠깐 언급한 것으로 국민과 충분히 소통했다고 보십니까?

이상한 일입니다. 취임 이후 지금까지 ‘기자회견’ 한 번 없었습니다. 기자들의 질문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도 질문해본 적이 없답니다. 여론을 전하는 기자들에게 질문 기회조차 주지 않았던 경우가 민주화 이후에 또 있었습니까? 끊임없이 소통하고 이해를 구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 아닙니까? 할 말,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만다면 여론을 어떤 식으로 파악하고 계십니까? 혹시 응답률이 15% 안팎에 불과하다는 지지도 조사를 ‘민심’으로 믿고 계신 것은 아닙니까?

여론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비판을 차단하다 보면 흐름과 타이밍을 놓치기 마련입니다. 국가정보원을 비롯한 국가기관의 대선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대처가 딱 그렇습니다. “국정원으로부터 도움 받은 일 없다.”며 선을 그어놓고 침묵하다가 논란만 키웠습니다. 그러다 여론이 악화되자 총리를 시켜 담화문을 발표하게 하고 다시 수석 비서관 회의에서 스스로 입장을 밝혔습니다. 민주주의의 뿌리를 흔드는 국가기관의 선거 개입에 대해 철저한 진실 규명과 관련자 문책, 재발 방지 조치를 약속하는 것이 그렇게 힘든 일입니까?

기초연금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실천할 자신 있다고 몇 번씩이나 다짐했던 핵심 공약이라면 개정안 다 만들어놓고 국무회의에서 “죄송한 마음”이라는 말로 넘어갈 게 아니라 사전에 국민들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어야 했습니다. 대탕평 인사 약속은 또 어떻게 됐습니까? 취임 초부터 인사 난맥상이 드러나고 지역 편중인사로 여당 내에서까지 우려의 목소리가 나와도 바뀐 게 없습니다. 오히려 더 심해졌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모두가 함께 가는 국민대통합, 국민 행복시대, 100% 대한민국’을 만들 수 있다고 보십니까?

박근혜 정부는 창조경제를 주창했습니다. 창조경제의 시작은 창의적 사고입니다. 창의적인 사고는 다른 의견, 다양한 생각을 용인하는 환경에서 나옵니다. 획일적이고 상명하복식의 조직에서는 기대할 수 없습니다. 지도자의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살피는 데만 급급하고, 지시받은 대로 움직인 것으로 할 일 다 했다고 여기는 조직에서는 지도자의 판단이 틀렸을 때 이를 바로 잡을 방법이 없습니다.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철학자 맹자는 문과즉희(聞過則喜: 다른 사람이 자신의 허물을 지적하는 말을 들으면 오히려 기뻐한다)를 군주의 자세로 꼽았습니다.

박근혜 대통령께서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