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상파 메인 뉴스에서의 문화 이슈 홀대] 왜 이것은 현안이 아니란 말인가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의 문화 이슈 홀대] 왜 이것은 현안이 아니란 말인가

위근우 칼럼리스트

너무나도 깨끗해서,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것 같은 공간. 지상파 메인 뉴스가 문화 소식을 다루는 방식에 대한 칼럼을 준비하며, 마치 완벽한 증거 은닉 현장을 본 기분이 들었다. 흠이 될 만한 어떤 흔적도 남지 않은 텅 빈 공간, 그것이 지상파 뉴스의 문화면이다. 그래서 난감하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무엇에 대해 이야기한다는 것은 바로 그 ‘무엇’을 전제해야 한다. 나는 지상파 메인 뉴스가 ‘문화 뉴스를 홀대하는 방식’에 대해 이야기하려 한다. 하지만 영리한 범인으로서의 메인 뉴스는 아예 문화라는 대상을 다루지 않는 방식으로 자신에 대한 비판을 효율적으로 회피해버린다.

특집04_KBS뉴스9 주말&문화특집04_SBS문화
구체적으로 따지자면 이렇다. 지상파 메인 뉴스가 그날의 사회, 정치 이슈를 줄줄이 다룬 뒤 남는 시간을 채우는 건 류현진의 완봉 소식, 손흥민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도전, U-20 월드컵 대표팀 우승 도전 등이다. 그 시기 화제가 되는 문화적 현상이나, 주요 텍스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가령 홈페이지에서 각 꼭지별로 분야별 분류를 명시해놓은 <SBS 8 뉴스>와<KBS 뉴스9>에서 <KBS 뉴스9>의 ‘주말&문화’ 같은 주말 꼭지를 제외하면 ‘문화’로 분류된 꼭지를 하나라도 찾기 어려울 정도다(<SBS 8 뉴스>는 기상예보를 ‘문화’로 분류한다). 물론 이 공백을 탓하는 건 어렵지 않다. 공론장의 가장 핵심적인 축인 지상파 메인 뉴스에서 문화 꼭지가 이토록 명백히 부족하다는 건 직관적으로도 어딘가 찜찜하다. 하지만 우리는 단순히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은 이 텅 빈 공간의 ‘비어있음’을 따지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이 텅 빈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토대들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앞서 문화 뉴스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예’가 아닌 ‘거의’인 건, 봉준호의 <기생충> 황금종려상 수상이나 방탄소년단의 웸블리 공연처럼, 아이템 선정에 있어 명백한 외부 권위에 의존할 수 있는 경우엔 방송을 타기 때문이다. 이것을 문화 사대주의로 보진 않는다. 그보단 어떤 문화 현상에 대한 아이템이 지상파 메인에 실릴 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에 대한 입증 책임의 부담 문제로 보는 게 적절할 것 같다. 가령 국회 파행, 정치인 막말, 택시업계와 공유경제 갈등, 서울 부동산 시가 등 정치, 사회, 경제로 묶일 여러 아이템들은 시청자의 삶과 직결된 현안으로 쉽게 이해된다. 하지만 문화 기사의 경우엔 좀더 많은 부연이 필요하다.

걸캅스
가령 나는 5월 27일 영화 <걸캅스>의 손익분기점 돌파
가 상당히 중요한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남성 중심으로 이뤄졌던 코믹 수사 활극을 여성 캐릭터 중심으로 변환한 텍스트적인 맥락과, 이에 대한 백래시로서의 별점 테러, 그리고 또한 이를 극복하기 위한 여성 소비자 운동으로서의 ‘영혼 보내기’라는 사회 현상적인 맥락이 다양하게 교차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시기 벌어졌던 대림동 취객 사건으로 불붙은 여경 혐오가 동료 시민으로서의 여성들의 자존감을 하락시켰던 것까지 생각한다면 <걸캅스>에 대한 여성들의 지지는 그들의 실존적 요구까지 담아낸 것이다. 하지만 이를 다룬 메인 뉴스는 어디에도 없었다. 천만 관객을 기록한 것도 아닌 영화의 손익분기점 돌파가 뉴스로서의 화제성을 갖긴 어렵다. 하지만 바로 그런 것, 그 자체로는 대중이 무심코 지나갈 수 있는 사건이 현재 갖는 의미를 재구성하고 의제화해 공적 논의를 활성화하는 것이 공론장의 주요 일원으로서 레거시 미디어가 갖고 있는 힘이자 책무이지 않은가? 이 지점에서 문화 기사에 대한 우리의 질문은 이렇게 변환되어야 한다. 지금 지상파 메인 뉴스는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책무를 다하고 있는가?
지난 한 달여간, <걸캅스> 손익분기점 돌파처럼 SNS를 중심으로 많은 논의가 오갔지만 메인 뉴스가 외면한 문화 이슈들은 다음과 같다. 네이버웹툰 <틴맘>의 십대 임신 묘사 문제, 역시 네이버웹툰 <복학왕>의 장애인 비하적인 재현, 유튜버 박막례 씨의 에세이집 발간, 인기 BJ 감스트의 성희롱 방송, tvN <아스달 연대기>에 대한 실망, <기생충>에 대한 상반된 비평적 관점과 논쟁들, 백종원의 유튜브 진출 등. 물론 SNS 안에서의 화제성이라는 것이 찻잔 속의 폭풍에 지나지 않을 수는 있다. 하지만 공론장 이론의 권위자 위르겐 하버마스가 정확히 지적했듯 “공론장의 의사소통 구조는 사적 생활영역과 연결되어 있어서, 시민 사회적 주변부가 정치적 중심부에 비해 새로운 문제 상황을 지각하고 확인할 수 있는 감수성을 훨씬 더 많이 갖고 있다.”

당장 감스트 건만 보더라도, 기존 
방송인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갖춘 인터넷 방송 인플루언서에 대한 사회적 책임, 플랫폼의 자율 규제 기준, 여성 혐오적인 문화에 대한 반성, 감스트의
과거를 문제 삼지 않고 그의 인지도를 활용하는데 급급했던 MBC 스포츠국과 예능국의 레거시 미디어로서의 책임 등 현재 미디어 환경의 중요 맥락과 도덕적 의제가 다양하게 연결되어 있다. 특히 감스트 이슈나 <복학왕> 이슈처럼 인터넷 동영상과 웹툰이라는 동시대적인 미디어의 영향력과 그 안에서 느슨하게나마 구조화되고 응집력을 얻는 차별적 담론은 이미 정치의 영역과 맞닿아 있다. 이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우는 것이, 이들 현상을 이해하기 위한 논의 맥락을 정리해서 제공하는 것이, 과연 이미 모두들 알고 있는 류현진의 10승 불발 소식과 이강인에 대한 해외의 관심 같은 단편적 소식보다 덜 중요한 일일까. 문화는 동시대를 해석하는 관점을 제공하거나 재생산한다는 점에서 이미 대중의 실존적 삶에 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왜 현안이 아니란 말인가.
앞서 지상파 메인 뉴스의 문화면이 완벽한 증거 은닉 현장 같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바로 이 깨끗하게 치워진 공간이야말로, 문화의 사회 정치적 맥락을 지워 진공상태로 두려는 오래된 불의의 증거에 가까워 보인다. 외부인으로서 이것이 문화 영역에 대한 보도국의 단순한 오해인지, 정치적 민감성을 탈색시키려는 또 다른 정치적 의도인지, 관성적인 꼭지 구성 때문인지, 전문성의 부족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공론장 안에서 다양한 의제 안의 담론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공적 논의의 자원을 평등하게 제공하는 것으로서 방송 뉴스의 권위가 확보되는 것이라면, 문화에 대한 외면은 메인 뉴스의 직무유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