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판단 그르치는 북한 로열패밀리 보도_MBC 김현경 논설위원

 

“인류 최후의 황제 김일성 퍼레이드”
1991년 6월, KBS는 <인류 최후의 황제 김일성 퍼레이드>라는 폴란드 다큐멘터리 영화를 방영했다. 영화는 1988년 9월 평양의 퍼레이드 행사에서 수십만 군중이 열광적으로 김일성 만세를 ‘절규’하는 장면으로 채워졌다. 이 영화에 대해 국내 한 일간지는 “북한이 체제의 우수성과 결속을 과시하기 위해 인간을 도구화하고 심성을 황폐화시키고 있음을 보여준 좋은 자료”라고 평가했다.1)
김일성 주석이 사망한 1994년 7월, 이 다큐 영화가 재방송됐다. 그러나 55분 분량의 방송은 31분 만에 중단됐다. ‘김일성을 영웅시하는 내용을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할 수 있느냐’는 시청자들의 항의가 빗발쳤기 때문이다. ‘북한의 실상을 잘 보여준’ 영화는 불과 3년 만에 ‘북한방송처럼 김일성을 일방적으로 추앙, 선전’한 ‘분별없는 돌출 행위’가 되었다.2) 남한의 뉴스는 바로 전날까지만 해도 김일성을 남북정상회담의 상대로 예우했다.3) 북한 최고지도자에 대한 보도는 이처럼 시대 상황과 수용자(시청자)의 정서, 매체의 성격에 영향을 받으며 변화를 거듭했다.

한국 언론에 비친 3代 지도자
김일성에 대한 보도는 논외로 하더라도 그의 실물 사진은 1980년대가 돼서야 신문과 방송에 등장할 수 있었다. 그 이전까지는 주로 큰 혹이 달린 캐리커처로 표현됐다. 그에게는 ‘주석’이라는 직함 대신 ‘괴수’, ‘원흉’ 등의 수식어가 붙었다.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하던 김일성 장군의 이름을 도용한 가짜 김일성, 김성주라는 기사도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다. 분단과 전쟁, 냉전과 체제 경쟁의 현실, 그리고 국민 정서가 반영된 보도였다. 1990년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남한의 총리가 김일성을 만나 ‘주석님’이라고 부르고, 1994년 김일성-카터 회담이 열릴 때는 ‘정치인’으로서의 김일성이 조명되기도 했다.
1980년 공식 등장한 김정일은 1994년 북한의 지도자가 된 후에도 우리 언론에 ‘파티를 즐기는 애송이’, ‘유부녀와의 사이에서 혼외자를 낳은 바람둥이’, ‘밤새 기쁨조 파티를 즐기는 호색한’, ‘영화광’, ‘아웅산 폭탄 테러와 KAL기 폭파의 배후’, ‘포악하고 광기 어린 망나니’ 등의 이미지로 묘사됐다. 그를 사적으로 만난 목격자들, 체포된 테러리스트들이 그렇게 증언했다.4) 사생활에 대한 지나친 관심에 비해 ‘현실 세계의 정치인 김정일’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은 부족했다. 김정일 정권이 김일성의 공백을 메우지 못한 채 머지않아 붕괴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판단 착오는 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책에도 악영향을 미쳤다. 언론은 한참 뒤에야 1970년대 초에 후계자가 된 그가 1980년대부터 측근들을 중용해 당 조직을 장악하며 정책을 주도했고, 90년대 초반에는 군권까지 손에 쥐었다는 사실을 직시했다. 정상회담 등으로 남북 교류가 활발할 때는 김정일의 정책 구상과 전략·전술에 대한 객관적 분석 기사들도 많이 등장했다.

유명인사가 아닌 현실 정치인으로… 냉정한 인식 아쉬워
새 지도자 김정은의 등장 이후 기사의 양은 급증했다. 현대 정치에서 전무한 3대 혈통 세습, 후계자 공식 지명 2년 차의 20대 지도자…. 거침없는 육성 연설에 아내와 팔짱을 끼고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가 하면 월트 디즈니 캐릭터와 미국 프로 농구 스타가 그와 함께한다. ‘미국 본토 공격’이라는 활자가 선명한 작전 지도 앞에서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실험을 지휘하고, 고모부인 장성택 등을 가차 없이 처형하면서 그는 세계의 눈을 피하지 않고 즐기는 듯했다. 어느 기자가 기사를 쓰지 않을 수 있겠는가?
게다가 북한에서는 최고지도자 ‘수령’이 국가나 국민보다 우선한다고 주장한다. 지도자가 정책 전반에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독재 국가일수록 지도자의 성격 등 퍼스낼리티는 중요한 관찰 대상이다. 문제는 기사의 양이 아니라 질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권력 내부의 각종 설, 여자관계에 대한 루머, 성형수술설, 몸짓이나 헤어스타일, 눈썹 손질 여부 등이 버젓이 뉴스에 등장한다. 아내 리설주에 대한 황당한 추문설도 모자라 거기에 장성택 숙청을 연결시킨 뉴스는 낯 뜨거운 에로틱 판타지 소설 같다. 북한의 로열패밀리에 대한 소문은 최소한의 검증도, 기사 가치에 대한 고민도 생략된 채 기사화되고 있다.
김정은을 희화화·악마화하는 가십성 기사는 시청자들의 반짝 관심을 끄는 대신 뉴스의 품격을 갉아먹고 남북 관계나 대북 정책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 북한의 반발도 반발이지만, 남북정상회담 등 대화의 수요가 있더라도 김정은이 폭군 네로로 인식되는 한 회담에 대한 지지와 동력은 떨어질 것이다. 최근 부상하는 김정은 정권 붕괴 임박설은 20여 년 전 김정일 정권 조기붕괴론을 떠올린다.
우리 언론은 북한에 대한 예측이 빗나갈 때마다 원래 북한이 ‘예측할 수 없는 집단’이고 ‘허를 찌르는’ 선택을 한다고 말해왔다. 과연 그 이유만 있는가? 언론이 김정은의 외모나 루머, 사생활 등 표면적, 단기적 관심에 집중하는 한 분단 한반도의 중요한 행위자, 현실 정치인 김정은에 대한 냉정한 판단은 유보될 것이다. 그것은 김정은 정권의 전략과 계산, 한반도 문제 등에 대한 우리의 정책과 대응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1) 「북한의 실상과 허상」, 『서울신문』, 1991.6.19
2) 『서울신문』 1994.7.13, 『국민일보』, 1994.7.19
3) 1994년 7월 25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예정돼 있었다.
4) 1978년 납북됐다가 1986년 탈출한 최은희 신상옥 부부의 증언과 수기, 1996년 김정일 로열패밀리에 대한 수기를 쓴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 김정일의 파티에 참석한 만수대 예술단원의 증언(1997)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