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염병의 시대, 기자는 어디에 서 있는가_대전MBC 안준철 기자

대전MBC 안준철 기자

낙타가 다니는 중동발 외신에서나 보던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가 공식적으로 대전을 덮친 것은 5월 31일이었다. 5월 20일 국내에서 첫 환자가 발생한 뒤 열흘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던 터라 ‘혹시 지나가는 건가?’ 싶었지만 그것은 큰 착각이었다. 5월 15일부터 17일까지 경기도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했다가 2차 감염된 16번 확진자는 퇴원 후 집이 있는 대전으로 돌아와 건양대병원과 대청병원에 입원했고, 3차 감염의 그림자가 두 병원에 드리워 있었다. 고열에 시달리던 그 환자는 국가 지정 격리 병상이 있는 충남대병원으로 30일 밤 후송됐다. 이튿날 메르스 확진 판정이 나온 것은 지역의 연쇄 3차 감염 사태를 알리는 전조였다.

바이러스도 몸으로 부딪쳐라?
기자는 그렇게 메르스 현장에 투입됐다. 그저 ‘발생’이라는 단어만 머리에 주입한 채 아무도 알려주지 않는 병원과 이동 경로, 접촉자 수를 알아내기 위해 무작정 병원으로, 보건소로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지형지물조차 익히지 못하고 적진에 낙하한 공수부대원의 심정이랄까. 방역 당국은 굳게 입을 닫고 있었지만, 다행히 이런저런 취재원 덕분에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대전의 메르스 사태가 얼마나 심각한지 얼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이후 온갖 숫자와 기호, 영문으로 조합된 확진자 번호와 격리자 수, 병원의 복잡한 퍼즐들을 맞추는 나날이 정부가 병원 명단을 공개하기까지 무려 일주일간 이어졌다.

최소한의 데이터조차 공개하지 않는 당국이 확인도, 부인도 안 하는 어둠 속에서 기자들은 허우적거렸고 시청자들은 정보의 비대칭에서 오는 극심한 혼란을 겪었다. 사회에는 거대한 불신의 벽이 쌓였다. 메르스 자가 격리 대상자의 연락이 두절돼 비상이라는 보도가 나갔지만, 그는 이미 격리 지정 당일 지병으로 사망했고, 경찰까지 출동했다가 일주일 뒤 사망 사실을 확인했던 사건은 바이러스 앞에서 무력하고 허둥대기 바빴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병원과 언론의 현실을 보여주는 씁쓸한 장면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어떤 기자들은 용감했다. 메르스 바이러스 감염 환자가 나온 병실을 들락거렸다는 섬뜩한 무용담을 늘어놓는가 하면(대규모 감염 사태가 발생한 다른 병원 곳곳에서 바이러스 RNA 조각이 나왔다는 뉴스를 그는 봤을까 모르겠다.) 별것 아닌데 호들갑을 떤다(현장에서 마스크를 쓰는 게 불안감을 조성한다며 핀잔을 주는 경우도 봤다.)는 식으로 반응하는 기자도 있었다. 2003년 사스(중증호흡기증후군), 2007년 서해안 원유 오염 사고, 2009년 신종 플루, 그리고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 등 숱한 대규모 가축 전염병 사태를 겪었으면 어느 정도 ‘비상상황’에 대한 학습효과가 생겼을 법도 한데, 취재 현장은 여전히 경험이 있든 없든 ‘일단 몸으로 부딪치는’ 식으로 돌아갔고, 기자의 안전과도 직결된 매뉴얼은 그저 매뉴얼에 불과했다.
이런 초기의 분위기는 기자가 취재원을 접촉한 뒤 격리되고, 의사까지 감염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급속히 바뀌었다. 회사에서 받은 N95 마스크와 의료용 장갑을 낀 기자들이 취재 현장에 등장하자 맨몸으로 다니던 기자들의 모습도 자취를 감췄다. 거리에 투석과 화염병, 최루탄이 난무하던 시절 안전모를 지급했다면, 종군 기자에게 방탄조끼와 헬멧을 지급하는 게 상식이라면, 이제 언론사들은 언제 터질지 모르는 전염병 발생 상황에 대비해 기자를 보호하고 기자가 질병 확산의 매개가 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라도 방역 관련 장비를 신속히 보급할 수 있는 태세를 갖춰야 하지 않을까.

침묵의 바이럴, 기자가 전문성을 찾아야
메르스 취재의 장벽 가운데 하나는 전문가들의 침묵이었다. 이를테면 시사 토론회에서 전문가를 섭외하고 싶어도 출연을 고사하는 분들이 워낙 많아 PD와 작가들이 애를 먹었다. 그들의 상당수는 민감한 시기에 섣불리 의견을 개진했다가 혹시라도 불이익을 받을지 모른다는 반응을 보였다. 정부가 정보를 통제하고 국민을 향해 괴담 처벌이라는 명분으로 날을 세우고 있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보도와 토론을 안 할 수는 없는 노릇. 외국의 의학 학술지를 찾고 메르스의 폭풍을 먼저 겪은 중동과 초기에 공격적으로 잘 방어한 미국, 유럽지역 질병 방역기구들의 자료를 검색해서 중동과 한국의 차이점과 유사점은 무엇인지, 두 지역 환자들의 임상적 차이는 무엇인지 파악한 뒤 뉴스와 토론, 시사 프로그램 등의 채널을 통해 전달하는 일 또한 기자들의 몫이었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의 말마따나 현대사회는 위험사회다. 예측도, 통제도 불가능한 위험 요소에는 무차별적으로 공공보건 체제를 위협하는 전염병도 당연히 포함된다. 관료나 전문가 집단에 의해 축소됐던 위험의 불씨가 은폐와 불신, 공포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하는 상황에서 언론의 기능과 기자의 역할이란 무엇인지 전염병의 시대, 메르스 사태는 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