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기자의 삶] 나는 ‘전문기자’입니다

[전문기자의 삶] 나는 ‘전문기자’입니다

전문기자라기보다는… 꿈나무입니다_KBS 서영민 기자 (거시경제 예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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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 등 은행권과 카드사, 국세청, 관세청을 묶어서 1년 정도 출입한 적이 있다. 2010년이었다. 9년 전의 일이다. 그 1년(사실은 1년이 좀 못 된다. 1년이 되기 전, 사회부 의무 복무령이 떨어져 경찰 기자로 배치됐다)이 KBS에서 경험한 처음이자 마지막 경제부다. 그리고 올해 다시 경제부. KBS 입사 13년 만에 두 번째다. 인연이 깊다곤 할 수 없다. 다만 연차는 꽤 차버려서, 금융 출입하는 세 명의 기자 가운데는 선임이 되어 버렸다. 축적한 경험도 없이 이렇게 된 게 종종 난감하다. 그 난감함이 더 커지는 순간이 있다. 동료들이 지나가다 말고 살짝 웃는 얼굴로 내 얼굴을 빤히 보며 놀리듯 “아니 이게 누구야, 거시경제 전문기자님 아니신가?” 할 때다. 동료들이여, 글을 읽다가 ‘어, 내 욕 하나?’ 하고 놀라진 않으셔도 된다. 한 손으론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선후배 동료들이 그랬으니까. 그리고, 사실 내가 제일 난감하니까.
KBS는 지난 2월 ‘예비’ 전문기자제도를 부활시키면서 경제분야에 두 명(거시/실물), 통일외교분야에 두 명(통일/외교), 편집분야에 한 명, 선거방송분야에 한 명을 선발했다. 6명이 1기다. 나는 이 가운데 거시경제 분야에 선발됐다. 그래서 경제부로 오게 됐다. ‘예비’ 전문이니까 예비에 방점이 찍혀야 맞다. 보잘것없는 경력으로 봐도 그렇다. ‘꿈나무’ 비슷한 것이 되겠다. 별 볼일 없는 경력으로 ‘꿈나무’가 될 수 있었던 이유, 그 ‘별 볼 일 없음’을 모두가 공유하는 인사 관행에 있다. 기본 근무 단위가 1년으로 짧다. 이례적인 경우, 1년 반 정도 한 부서에 근무하는 기자가 간혹 있지만, 한 취재부서에 2년 근무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사 형평성이 중시되는 조직 분위기와도 무관치않은데, 하여튼 이런 ‘짧은 주기’는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을 것이다.
경찰 기자나 지역 순환 근무, 또는 경인센터 근무처럼 거쳐야 할 일종의 ‘의무복무’가 많은 영향도 있다. 의무복무만으로도 수년이 흐른다. 내근(편집부) 순환도 있다. 육아 등으로 휴직을 한다면 시간은 또 흐른다. 한 부서에 오래 몸담으며 뉴스 흐름을 계속 지켜보기는 구조적으로 어렵다. 결국 ‘짧은 순환 근무 관행’과 KBS 방송기자의 전문성 약화는 무관치 않다. 우리 방송뉴스가 비교적 짧은 데다 단순 전달 중심이어서 전문성이 비교적 덜 강조된 측면이 있겠고, 역으로 전문성이 부족해 대동소이한 전달 중심의 뉴스 관행이 고착화됐을 수도 있다. 중요한 건 이런 뉴스가 경쟁력을 상실해가고 있고, 모두가 변화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탐사뉴스의 강화와 다양한 형식의 시도 그리고 디지털화라는 트렌드는 기자 전문성 강화와맞물려 있는 셈이다.

KBS가 올해 도입한 예비전문기자제도는 2년을 기본 인사단위로 하고, 필요시 8년까지 한 부서 근무를 연장할 수 있게 했다. 한 취재부서를 오래 출입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물론 이는 전문성의 필요조건일 뿐, 충분조건은 아니다. 데일리 뉴스 부담을 덜어주고, 전문성을 강화하려는 장치도 마련했다. 도서 구입비 지원이나 세미나, 연수 선발시 가산점 부여 등이 제시되었다. 회사와 기자 개인의 의지가 잘 맞물린다면 성과를 기대해볼 만하다. 다만 그 성과가 어떤 것인지를 좀 더 분명한 지표의 형태로 가다듬어갈 필요는 있어 보인다. ‘심층 기획과 출연 업무를 전담시키고, 디지털 기사 작성을 위주로 한다’라는 선언적 방향성이 있긴 하지만 얼마나 현실적인지는 아직 물음표가 붙는다. 여전히 ‘꿈나무 기자’들도 데일리 뉴스를 도외시할 수 없는 흐름이 있다.
실제로 통일외교분야는 한해 내내 굵직한 뉴스가 이어지고 있고, 실물경제분야에서도 지열발전부터 한일 통상 갈등 같은 현안이 많다. ‘꿈나무 기자’는 여전히 기존 기사 생산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않다. 또 현실적으로 메인뉴스에 수용되는 심층기획과 출연 뉴스는 여전히 제한적이고, 앞으로 확대될 수 있을지도 물음표다. 디지털 기사는 부가적인 업무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예비 전문기자제도의 성패를 무엇으로 판단할지 좀 더 고민해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조만간 KBS 뉴스룸 안에 들어설 ‘디지털 스튜디오’가 돌파구가 될 수 있다는 기대를 한다. (착공에 들어갔고, 두 달 내 완공이 목표다) 지금 KBS의 디지털 경쟁력 강화는 더 많은 ‘디지털 전용 텍스트 기사’ 생산을 의미한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내부에선 여전히 ‘부가적 업무’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기사량과 주목도, 조회 수 측면에서 ‘통신 기사’나 ‘신문사 기사’와의 경쟁이 쉽지 않은 현실적 한계도 있다. 고무적인 현상은 ‘유튜브 영상’ 같은 영상 소비가 급증하고 있는 트렌드인데, 조만간 들어설 디지털 스튜디오에서 여기에 걸맞은 보다 ‘가볍고’, ‘저비용이되 비교우위가 있는’ 콘텐츠 생산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실험적인 콘텐츠 제작으로 ‘꿈나무 기자’들의 역량을 발전시키면서 KBS 뉴스의 경쟁력도 강화할 기폭제가 되게 머리를 맞대어 보고 싶다.

 

전문기자의 자격_SBS 조동찬 기자 (경제부·신경외과 전문의·의학박사)

사진_02의학전문기자_SBS조동찬기자2008년 여름, SBS는 의학 전문기자를 모집한다는 공고를 냈다. 당시 의학 전문기자 자격은 의사면허가 있고, 군필 혹은 군 면제자로서 군대 의무복무가 남아있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신경외과 전문의로서 대학병원에서 전임의 역할을 하고 있던 나는 의학 전문기자의 자격이 충분하다고 생각해 지원했고, 지금까지 의학 전문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지금껏 의학 전문기자의 정의에 관한 설명을 누구에게도 들은 바 없다. 다만, 의학 전문기자임을 내세우기 위해 신경외과 전문의이며 의학박사라는 사실을 취재원에게 꼬박꼬박 밝히던 풋내기 시절과 달리, 지금은 그런 ‘타이틀’이 내가 의학 전문기자란 것을 증명하는데 아무런 도움이 안 된다는 걸 깨달았다. 오히려 전문적 경력에 천착하는 태도는 약자의 비전문적인 목소리를 듣는 데 방해가 될 수 있음을 경험했다.

전문성의 함정
지금도 수많은 기사가 “전문가들은 ~~이라고 지적합니다”로 끝난다. 모호하고 비겁한 표현이라는 비판에도 이런 표현이 지속하는 건 왜일까? ‘전문성은 선한 것이며, 전문가의 의견은 받아들여야 한다’라는 보편적인 사회인식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러한 인식이 절대성을 지니는 것이 아님을 우리는 뼈아프게 경험했다.
가습기 살균제는 관련 분야 
전문가들의 감수를 거쳐 ‘안전’이라는 포장지를 두르고 세상에 팔려나갔지만, 수천 명이 목숨을 잃는 결과를 가져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최고 전문기관인 질병관리본부는 부실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고, 이건 가습기 살균제를 만들어 판매한 회사는 8년 넘게 법적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명분으로 활용됐다. 최고 대학의 모 교수는 기업에 이롭게 실험을 조작한 혐의로 구속되기도 했다. 허위 허가 서류로 3천 7백여 명의 환자에게 투여된 세계최초 유전자 세포 치료제, ‘인보사’ 사태에서도 국내 최고 대학병원 전문의와 국내 최고 대학 교수가 제약회사 안팎에서 고위직을 역임하며 관여했다는 게 드러났다.

3세대 전문가와 전문기자
전문성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에 대한 학계 정의는 변했다. 1970년대는 정보처리 능력과 문제 해결 능력을, 1990년대에는 복잡한 문제의 해결 능력을 전문성의 요체로 봤다. 각각 1세대, 2세대 전문성이라고 하는데 최근 3세대 전문성에는 ‘태도’가 추가됐다. 인지적 요소 외에 사명감, 가치, 열정, 끈기, 즐거움과 만족, 독립적 자아, 자신감과 같은 정의적 요소도 전문성의 핵심이라는 것이다1) 1세대·2세대 전문가 정의에 따르면 이순신 장군, 히틀러 모두 전쟁 전문가라 할 수 있지만, 3세대 정의로는 히틀러는 전문가가 될 수 없다. 히틀러의 전쟁 기술은 인류의 사명감과 가치에 정면으로 배치됐기 때문이다. 가습기 살균제와 인보사 사태를 이끌거나 묵인한 전문가들 역시 3세대 관점에서는 전문가라 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기자의 전문가 선별 기준도 달라져야 한다. 전문적인 경험을 오랫동안 쌓아왔거나 미국 FDA, 세계보건기구 등 전문적인 기관 경력이 있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전문가로 인정해 기사의 인터뷰이interviewee로 등장시켜서는 안 된다. 최고 대학 교수, 미국 OOO기관 10년 근무 등 화려한 경력 뒤에 비윤리적인 태도가 숨어 있다면 과감하게 전문가 집단에서 제외해야 한다. 전문기자가 무엇인지 아직 잘 모르겠지만, 비윤리적인 전문성을 배제해야 하는 책임이 전문기자에게 새롭게 주어진 것 같다.

1) 「전문성 발달에서 경험의 역할과 쟁점」 2016년 서울대학교 이상훈 외

 

어쩌다 전문기자_MBC 김현경 기자 (통일방송추진단장)

사진_03통일전문기자_MBC김현경기자“현경 선생은 어떤 이유로 그 오랜 세월 통일사업 부문에서 일하게 됐습니까?”
작년 평양 취재 중 북녘 보장성원(지원인력)이 물어왔다.
“나도 이렇게 오래 한 우물을 팔 줄은 몰랐습니다. 예전엔 팔자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소명이 되었습니다.”
솔직한 내 고백이다. 나는 북한 전문기자의 꿈도 한 번 꾸어보지 않은 채 어쩌다 전문기자가 되어 버렸다.

기자가 아니었기에…
1994년 7월 9일. 평양 방송이 김일성 주석의 사망 소식을 전하던 그때 나는 MBC-TV ‘통일전망대’를 5년, 그리고 라디오의 북한 소식을 2년째 맡아 전하던 8년 차 아나운서였다. 서당 개 마냥따라 읊은 풍월을 밑천 삼아 뉴스 특보를 보조했는데 그게 제법 인상적이었는지 순식간에 보도국 북한부 기자로 직종을 변경하게 되었다.
고백하건대 그때 내가 방송기자의 삶을 알았더라면 절대 기자가 되지 않았을 것이다. 출입처 시스템과 잦은 인사이동, 그리고 총을 맞듯 아이템을 배정받아 길어야 1분 30초 리포트를 주문 제작하는 일. 애써 취재하고 고민 끝에 작성한 기사를 엊그제 인사 발령받은 데스크가 칼질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더라면 말이다.
무식했기에 용감하게 수습도 없이 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내근 6개월을 거쳐 통일부 출입 기자가 되었다. 방송기자가 뭔지를 바닥부터 배우며 정신을 차릴 때 쯤 누가 말했다. “좋은 출입처 기웃거리지 말고 통일부에서 북한이나 들이 파!” 돌이켜보면 그때 통일부는 ‘좋은 출입처’가 아니었던 것 같다. 외교부 출입 기자가 가케모치(겸임)하거나 정치부 주니어 기자가 경력을 관리하는 곳 또는 시니어가 쉬어가는 곳 정도였다. 경력관리를 포기하고 북한 이슈만 파고드는 기자는 드물었다. 음지에서 고사리가 무성하게 자라듯 아는 것이라고는 북한밖에 없는 얼치기 기자가 소리소문없이 경험을 축적하기엔 좋은 환경이었다.
인사이동의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때마다 번번이 나를 통일부 말뚝으로 못 박아버린 것은 대형 뉴스 특보였다. 1998년 소떼 방북 당시 6시간 연속 생방송, 그해 11월 금강산 첫 출항 선상 생방송, 무엇보다 2000년 6월 첫 남북정상회담 때는 2박 3일 생방송을 해내야 했다. 화면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상황 묘사에서 해설까지 하는 것이 임무였다. 만일 내가 처음부터 뉴스데스크 1분 30초 꼭지에 특화된 방송기자 훈련만 받았다면 할 수 있었을까? 마이크만 들면 말하는 아나운서 훈련을 받고, 주간 단위 북한 전문 프로그램을 메우느라 데일리 뉴스에서 다루지 않는 시시콜콜한 내용까지 뒤지고 다니고, 좋은 출입처는 엄두도 못 낸 채 통일부에서 북한이나 들이 파던 비정규 ‘특수병과’ 출신이기에 가능했던 일이 아니었을까?

제도도 환경도… 험난한 전문기자
10여 년 전부터 방송사에도 한 분야만 들이 판 북한(외교, 안보) 전문기자들이 등장하고 있다. 그 사이 통일부는 ‘좋은 출입처’가 되었다. MBC에도 북한 전문기자를 꿈꾸는 후배들이 제법 있다. 하지만 MBC에는 2005년 잠시 전문기자 직제가 도입됐다가 몇 년 못가 사라진 뒤 더 이상 북한 전문기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제도가 뒷받침하지 않는 현실은 녹록지 않다. 전문가가 되기 위해 시간의 축적이 필요하지만 오랜 시간 한 분야를 파는 이들이 때로는 인사에 부담을 주는 요인이라는 눈총을 받을 수 있다. 사실 방송에서는 손쉽게 전문가들을 데려다 쓸 수 있으므로 굳이 시간을 투자해 기자를 전문 인력으로 기를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보다는 어떤 일에도 믿고 투입할 수 있는 화력 좋은 올 라운드 플레이어가 주목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여전히 짧은 호흡의 백화점식 나열에 머물고 있는 뉴스 포맷, 냉철한 분석보다 당파적 논쟁으로 흘러가는 토론, 기계적 균형의 관성이 전문기자의 육성을 저해하는 환경이라고 할 수 있다. 25년전 어쩌다 기자가 된 운 좋은 음지 고사리는 지금 대북 협력사업과 방송을 아우르는 부서를 맡아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지금 시간을 쪼개 공부하며 한 분야만 들이 파고 있는 자격 넘치는 후배들에게 같은 기회와 행운이 찾아오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