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는]갈라지는 기자의 길, ‘취재’와 ‘방송’_ MBC 임영서 도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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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한 민영방송이 올해 일반직 신입사원 17명을 선발했다. 일본은 기술직과 아나운서직 외에는 일반직으로 통합 선발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이 가운데 기자로 배치된 사람은 2명뿐이다. 나머지는 제작과 사업 분야에 배치됐다. 시청률 경쟁이 치열한 일본 민방은 철저하게 비용 대비 효과의 관점에서 조직을 관리하고 있고, 그 결과 취재 영역은 인력과 비용을 점점 줄여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마당이라 ‘고참’ 기자들에 대한 조직의 기대와 관리는 점점 더 냉혹해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주요 포스트에 오르지 못한 중견기자들은 몇 자리 없는 내근석을 차지하지 못하면, 사실상 보도 부문에서 역할이 없어지고 다른 부문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되고 만다.

    

늘어나는 ‘제작’ 인력

    

Untitled-3그래서 이런 아이디어도 나오고 있다. 회사 위기관리 역할을 맡기는 것이다. 즉 각종 프로그램 제작과정에 개입해 향후 발생할 법률적 문제라든가 사회적 논란 등을 미리 예견하고 수정을 하는 역할이다. 기자적 감각이 필요한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엄밀히 말하자면 이들에게 일을 주기 위한 일종의 ‘위인설관’의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다. 방송기자의 미래로 보기에는 오히려 민망해지는 현실이다.

    

이 같은 취재영역의 슬림화와는 대조적으로 이른바 제작 인력, 즉 뉴스 프로그램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인력은 계속 늘리고 있다는 점은 주목된다. 여기서 ‘제작’이라 함은 현재 한국 방송기자들이 매일 하고 있는 아이템 제작 과정과 거의 동일하다. 즉 뉴스를 취재하는 것보다 이를 포장해서 전달하는 쪽에 힘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이른바 취재와 제작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경향이 일반화되고 고착화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취재기자를 하던 직원이 뉴스 제작부서로 가면 스스로 더 이상 기자라고 하지 않는다. 명함에도 기자 대신 디렉터 등으로 표기하고 있다. 즉 취재하는 인력이냐, 아니면 그 콘텐츠를 가지고 제작하는 인력이냐의 구분이 내면화되고 있는데, 이 구분의 본질은 ‘꾸며서 내보는 게’ 중요하다는 인식의 확대에 있다. 결국 ‘날 정보’를 취합하고 저장하고 관리하고 통제할 수 있는 능력에 대한 과소평가라 할 수 있고, 필연적으로 방송기자 역할이 수직적 하명구조에 갇히고 창조적이고 대등한 문제제기가 봉쇄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구조라면 나이 든 방송기자의 입지는 더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방송을 위한 ‘취재기자’

    

그러나 이런 구도와 배치되는 현상도 계속되고 있다. 일본에서 가장 시청률이 높은 뉴스는 NHK의 저녁 7시 뉴스다. 이 뉴스의 특징은 스트레이트 뉴스를 앵커가 담백하게 전달하고, 이른바 제작물이 매우 적다는 데 있다. NHK가 무대 이면에 있는 풍부한 취재인력을 활용해 확보하고 검증하고 판단한 정보에 시청자들이 신뢰로 화답하는 것이라 판단한다. 결국 아무리 잘 ‘꾸며서 내보내도’ 시청자들이 정작 원하는 건 정확하고 믿을만한, 가급적 ‘새 정보’라는 고전적 진리를 다시 되새기게 만드는 현상이다. 정확, 진실, 통찰, 깊이 등의 덕목이 뉴스에서 살아있어야 한다는 점, 그리고 이런 가치를 인정할 때야 비로소 경험 많은 방송기자들의 힘이 빛을 발하게 된다고 믿는다.

    

우리에게도 선택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고 본다. 핵심은 뉴 팩트를 취재하고, 이미 드러난 사실들을 검증할 수 있는 능력에 있다. 즉 방송기자의 ‘취재 능력’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에서부터 문제를 해결해 가야 한다고 본다. 일본에서 진행 중인 취재와 제작의 분리 강화를 참고삼아 보다 논쟁적인 문제제기가 필요한 상황이다. 방송취재기자의 본질은 방송하는 기자가 아니라 방송을 위한 취재기자라는 인식은 어떠한가? 팩트 확보와 사실 검증 능력을 무엇보다 소중하게 다루는 조직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을 지금부터 고민해야 한다고 본다.

    

한 해 한 해 흐를수록 경륜과 함께 전문성이 더욱 깊어지는 방송기자의 모습을, 정확하고 깊이 있는 방송 뉴스를 기대해 본다. 유능한 선배들의 활동 모습을 오래 오래 지켜보고 배우고 자극받고 싶다. 무엇보다 그들이 자긍심을 갖고 일할 수 있는 때가 우리 방송뉴스가 한 단계 도약하는 때라고 생각한다. 방송기자 선배들의 고민은 우리 모두의 미래의 모습이며, 한국 방송 뉴스가 하나의 전환점을 맞이했다는 자각이 절실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