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부터 또 시작이다_YTN 김현미 기자

26-1 꼭지

26-2 제목

26-3 해직기자들

2014년 12월 8일
“선배, 8시 20분부터 회의예요.”
26-4 김현미선배들의 복직 판결 후 인사발령이 났다. 출근하자마자 선배들 자리를 찾아갔다. 정유신 선배는 여유롭게 부장과 앞으로의 스케줄을 상의하는 중이었고, 권석재 선배는 9시가 되기 직전 급히 사무실로 들어오고 있었다. “선배, 우리 8시 20분부터 회의예요.” 늦은 권 선배를 타박하는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온다. 묘한 기분이다. 마치 늘 이랬던 것처럼 선배들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눈다. 갑자기 6년의 세월이 무색해진 기분이다. 그리고 한편으론 나머지 세 분의 빈자리가 더 크게 느껴진다.
6년 전 그날 나는 막 수습을 뗀 신입 카메라기자였다.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을 생각하기보다 하루하루 일을 배워가는 일이 더 치열했던 그런 시기다. 어쩐 일인지 사무실이 텅텅 비고 선배들이 안 보인다 했는데 대량 징계 통보가 있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입사 2년이 돼야 정식 사원이 돼 노조에 가입할 수 있기 때문에 당시 나는 조합원 신분이 아니었다. 빈 사무실에 혼자 앉아 아직 조합원이 아니라서 선배들과 함께하지 못한다는 핑계를 대고 있는 내가 부끄럽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해직 사태가 6년이나 지속될 거라는 생각은 못 했다. 신입사원인 나까지 끼어들 틈도 없을 줄 알았다. 그냥 이것도 지나가는 바람이려니….

2014년 11월 27일
“복직 판결 못 받은 3명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드디어 대법원 판결이 나온단다. 대법원에 직접 간다는 선배한테 결과 나오면 문자 하나 달라 했더니 결과가 안 좋으면 아마 연락 못 할 거라고 하셨다. 판결이 있을 10시가 지났지만 아무런 연락이 없었다. 그리고 해직자 3명만 복직된다는 소식을 인터넷 뉴스로 알았다. 그냥 지나가려니 했던 바람이 6년을 머물더니 이제는 비가 내리는구나. 그날 복직 판결 난 선배들이 더 많이 우셨다.
“복직 판결 못 받은 3명과 우리가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정유신 선배의 말에 다시 눈시울이 붉어졌다. 6년 전에 징계를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 해직이 되었던 사람과 해직이 되지 않은 사람의 차이, 그리고 6년 후 여전히 해직 상태여야만 하는 사람과 복직이 되는 사람의 차이는 과연 무엇일까?
‘나도 징계하시오.’ 대량 징계 사건이 있던 다음 날, 징계를 받지 않은 선배 한 명이 그런 글을 올렸던 기억이 난다. 어떤 징계보다 공정방송 훼손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던 그날엔, 우리들 중 누가 해직이 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다들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해직된 선배들처럼 모두가 해직된 마음으로 살았다. 그렇게 살아온 6년은 그야말로 ‘미생’이었다.

26-5 화초

미생未生
그리고 6년이 지나는 동안 진짜 차이가 생겨났다. 어떤 사람들은 승진을 위해, 보직을 위해, 윗사람에게 찍히지 않기 위해 갖은 이유로 몸을 사리기 시작했다. 처음 낙하산 사장을 반대하던 때의 우려처럼 권력 앞에 공정성을 갖는 뉴스는 점차 사라져 갔다. 공정성을 지키려고 하면 할수록 부딪쳐야 하는 일이 많아지고, 또 징계를 받게 되고, 그러다 보니 싸우는 일 자체를 만들지 않으려고 말해야 할 것을 말하지 않는 풍조도 생겨났다. 한때는 서로의 집에 밥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 정도로 친했던 회사 동료와 사이가 멀어지고, 기사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과 문제 의식은 없어지고, 시청률도 경쟁력도 떨어진 회사에 대해 아무런 대안 없이 한숨만 쉬는 상황이 되었다. 해직된 선배들만 돌아오면 다 해결될 거라 생각했던 믿음도 점점 약해졌다. 오히려 이런 회사에 선배들이 돌아오실 것이 걱정되었고 부끄러웠다.

완생完生을 위해
그래도 신이 났다. 아직 3명이 해직 상태였지만 3명이 돌아오는 것만은 기뻤다. 눈이 오던 날, 선배들의 복직 후 첫 출근이 있었다. 노종면 선배가 좀 늦긴 했지만 6명 모두 출근했다. 선배들과 함께 출근하려는 동료들도 아침 일찍 모였다. 정말로 6명이 다 복직됐으면 좀 더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기뻐했을까? 6년간 선배들 복직엔 관심 없던 사람이 나와서 같이 기뻐한다면 그건 또 보기 좋았을까?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이미 내 마음은 뒤틀릴 대로 뒤틀려서 선배들에게 가식적으로 인사를 건네는 것도 꼴 보기 싫었다. 내가 이럴진대 그 손을 맞잡아야 하는 선배들의 마음은 오죽했을까.
회사는 또다시 복직자 3명에 대한 인사위원회를 연다고 한다. 여전히 힘으로 누르려고만 하는 회사의 입장은 이해도 안 되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회사가 어떻게 하건, 그 누가 가식적인 인사를 건네건, 앞으로 얼마나 더 싸워야 할지 알 수가 없지만 분명한 건 그래도 선배들은 돌아와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공정방송을 위한, 우리들의 싸움을 끝내기 위한 시작점이자 ‘완생’完生이 되기 위한 출발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