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이미지 과잉을 넘어 공정 검증으로

 

이재강

 

방송기자연합회장

 

시기적으로 어느 때가 되면 으레 방송에 등장하는 뉴스가 있다. 해마다 연말에 빠지지 않는 어려운 이웃의 힘든 세밑류의 보도도 그런 것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불우한 이웃을 돌아보자는 게 나쁠 리는 없다. 그러나 어려운 이웃은 왜 성탄절 즈음한 연말에 돌아봐야 하는 것일까. 너무도 당연한 얘기지만, 그들은 연말에만 힘든 게 아니다. 일 년 열두 달 어렵게 산다. 허망하게 사라지는 특정 시기의 관심이 아니라, 사시사철 작동하는 제도를 통해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는 게 맞다. 시청자의 잠깐의 심정적 공감을 넘어, 불우 이웃의 삶의 개선에 관심 있는 기자라면, 응당 제도적 처방에 눈길을 돌릴 것이다.

 

 

2012년 가을과 겨울은 대통령 선거의 계절이다. 날은 하루가 다르게 쌀쌀해지지만 대선 후보들의 발걸음은 나날이 분주해진다. 하루에 대여섯 개의 일정을 소화하며 사람들을 만나고 악수하고 사진 찍고 좋은 말들을 쏟아낸다. 노인요양원, 중고등학교, 소방서, 군부대 등등 아주 다양한 곳을 찾아간다. 재래시장도 빼놓을 수 없다. 어묵이나 순대 정도는 먹어줘야 한다. 물론 후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동행하는 취재진에 의해 기록되고 보도된다.

 

 

연말 불우이웃 보도와 대선 후보 동정 보도에는 비슷한 점이 있다. 바로 특정한 이미지만 전달하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미지 뒤편에 무엇이 있는지는 좀처럼 알려고도, 알리려고도 하지 않는다. 하기야 어느 분은 재래시장에서 어묵을 맛나게 드신 후, 재래시장이 대형마트의 공세에 무너지는 걸 수수방관하셨다. 집권 후 시종일관 서민보다 부자를 사랑하신 걸 보면, 어묵은 서민 코스프레용 먹을거리요, 재래시장은 이미지를 만들기 위한 무대였음이 분명해 보인다. 이미지와 실체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후보의 어떤 행위가 진실된 것이어서 향후 정책으로 실현될 것인지, 아니면 코스프레를 위한 가식적 행동이어서 결실 없이 사라질 것인지, 이런 것을 살펴서 알려주는 게 대통령 선거에서 언론의 역할이다. 물론 하나같이 좋은 말, 그럴 듯한 계획을 내놓기 때문에 시시비비를 분간하기가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시시비비에 근접하고자 노력하는 것과 이미지 전달에 만족하는 것과는 큰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 언론이 검증을 하느냐, 하지 않느냐의 차이로 귀결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말이나 약속이 믿을 만 한 지를 가늠하는 1차적인 판단기준은 그 사람의 과거를 살펴보는 것이다. 사업가라면 사기 친 경력이 있는 파트너를 좀 더 의심하는 게 합리적이고, 여성이라면 성폭력 가해 경력이 있는 사람을 좀 더 조심하는 게 당연하다. 이런 점에서, 후보의 과거는 그 사람의 현재와 미래를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검증 재료이다. 후보의 50년 혹은 60년 인생은 송두리째 없는 양, 그 날 그 날의 동정에만 지나치게 초점을 맞추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을뿐더러, 진실을 왜곡할 수도 있다.

 

 

최근 일부 방송이 별도로 검증 팀까지 꾸려 정밀한 취재를 하거나, 공약 검증을 위해 시민사회단체와 적극 협력하는 것은 과거의 대선 보도 관행을 개선하려는 긍정적 시도로 평가할 만하다. 이 모든 노력이 이미지 하나로 죽고 사는 대선 국면에 실체의 중요성을 인식시키는 계기로 작용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검증 노력을 다한다 해도, 그 잣대가 비뚤어져 있으면 도로 아미타불이다. 잣대가 공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일부 방송이 검증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후보에게 관대하고 특정 후보에게 가혹한 잣대를 들이댄다는 비판이 방송가 안팎에서 설득력 있게 제기되고 있다. 공정성을 잃은 검증은 내부 구성원과 시청자의 엄중한 검증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대한민국의 권력 지도가 바뀌는 대통령 선거에서 과거 수 십 년 동안 방송 보도는 조금씩이나마 공정보도를 향해 전진해왔다.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었을지 몰라도 공정성 시비는 점점 줄어들었다. 그러나 이번 대통령 선거 때도 방송이 그 연장선상에 있을 지를 두고 걱정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왜 그런 걱정이 나오는지는, 이명박 정부의 방송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공정과 불공정 사이에 펼쳐진 아슬아슬한 영역이 방송기자들의 올곧은 양심과 냉철한 판단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