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가 만난 방송기자] 이동수단? 내게는 스포츠이자 생활

언제부터 오토바이를 탔던 건가?
오토바이는 내 삶의 가장 오래된 기억 속에 존재한다. 아버지는 버스를 10분만 타셔도 멀미를 할 정도로 차멀미가 심한 분이었다. 그래서 집에도 오토바이가 한 대 있다. 동남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을 상상해봐라. 우리 가족은 안동에 살았는데, 아버지는 오토바이 좌석에, 어머니는 아버지 뒤에, 형은 어머니 뒤에, 나는 아버지 앞 쪽 기름통에 앉아서 온 가족이 이동했다.(웃음)
내가 직접 오토바이를 몰아본 것은 중학생 때가 처음이었다. 아버지가 타시던 배기량 90cc의 소형 기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걸 타고 심부름도 다니고 그랬다. 제대로 오토바이를 탄 것은 1992년 대학에 입학했을 때부터였다.

수박농사 지어서 첫 ‘바이크’ 마련

처음 오토바이를 산 게 언제인가?
그러다 오토바이(이하에서는 라이더들이 쓰는 말처럼 ‘바이크’라 칭하기로 함)를 처음 산 건 1996년 군에서 제대하고 나서였다. 군대에 다녀온 뒤 집 근처에서 수박 농사를 지었다. 농사를 통해 번 돈을 차곡차곡 모았다. 내 이름으로 된 배기량 125cc의 국산 바이크를 샀다. 당시 돈으로 200만 원 정도 했다.

꽤 큰 돈 아니었나?
당시 대학교 한 한기 등록금이 2백만 원이 안 될 때였다. 비싼 금액을 지불했지만 기분은 날아갈 것 같았다. 바이크가 새 거였는지 중고였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첫 바이크를 타고 등하교도 하고, 농사지으러 다니고, 놀러도 다니고..바이크는 내 유일한 교통수단이었다. 그때 이후로 버스도 거의 안 탔다. 차를 하도 안 타서 자동차를 타면 멀미가 날 정도였다. 바이크를 산 뒤 3년간, 그러니까 첫 직장에 들어간 직후까지 그걸 타고 다녔는데, 직장 사람들이 기겁을 하더라.(웃음)

직장생활 시작한 뒤 바이크 생활은 어땠나?
그리고 첫 직장에 들어간 1999년 어느 봄 날, 몇 달 동안 모은 월급을 가지고 꿈에 그리던 ‘드림바이크’를 샀다. 물론 첫 월급은 어머니 내복 선물 사는 등에 썼다. 일본 가와사키사의 배기량 800cc 발칸, 바이크 문화가 발달한 일본에는 ‘남자는 가와사키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내가 그걸 샀던 것이다. 중고로 600~700만 원 정도 했다. 대학 때 수박농사 지어서 샀던 첫 바이크를 수리하러 갔다가 드림바이크를 보게 된 것이 시발점이었다. 한눈에 반했다. 그래서 가게 사장님에게 저 바이크 파는 거냐고 물어봤다. 매물로 나온 거라기에 주저 없이 구입했다.

그걸 타고 여자친구(현재 아내)를 태우고 경북 울진, 청송도 가고 7번 국도를 타고 많이 돌아다녔다. 바닷바람을 맞고 달렸을 때 행복했던 느낌이 생각난다. 하루에 700킬로미터 정도를 달린 날도 있다. 그리고 그 여자와 결혼을 했다. 당시 바이크를 타고 장거리를 다니느라 얼굴에 흙먼지 다 덮어쓰고 데이트했던 아내는 그 뒤로는 바이크 타는 것을 싫어한다. 드림 바이크를 2010년까지 탔다.

지금 타고 있는 바이크는 어떻게 마련했나?
2010년, 직장생활 만 10년을 기념하고 싶었다. 후배가 구경하던 독일제 BMW 바이크가 눈에 들어왔다. 신세계가 열리는 기분이었다. 이완 맥그리거가 주연한 ‘롱웨이 다운’, ‘롱웨이 어라운드’라는 영화가 있다. 바이크를 타고 세계일주를 하는 내용이었는데, 그 영화를 보고 ‘뽐뿌’를 제대로 받았다. 아내를 한 달 넘게 졸라서 중고 독일제, 배기량 1,200cc짜리 바이크를 2천만 원 넘게 주고 구입했다. 나도 언젠가는 세계일주를 하리라고 마음 먹었다.
새 바이크를 구입하고 나서는 일단 행동반경이 달라졌다. 과거에도 바이크를 타고 장거리를 다닌 적도 있지만 그때까지 바이크는 그저 이동 수단이었다. 하지만 새로 장만한 바이크는 사람이 두 발로 다닐 수 없는, 길이든 길이 아닌 곳이든 어디든지 마음만 먹으면 갈 수 있는 바이크였다. 당일로 대구, 부산을 다녀와도 무리가 없었다. 언제든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갈 수 있었고 나는 더 자유로워졌다. 숲에 에워싸인 숲길을 달리는 기분이란…

딸과 함께 바이크로 일본 여행

세 아이를 태우고 여행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바이크를 바꾼 차에 2012년에는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첫째 딸을 바이크 뒤에 태우고 일본에 갔다. 일단 부산까지 도착한 다음 부산항에서 페리를 타고 시모노세키에 도착했다. 일주일 동안 규슈 일대를 여행했다. 왜 아이가 크면서 사이가 별로 안 좋아지는 경험들을 하지 않나. 그런데 일본 바이크 여행을 함께 한 뒤 딸아이와 사이가 좋아졌다. 그간 대화할 기회가 없었는데 아빠랑 딸이 일주일 동안 바이크 타고 다니는 것을 상상해봐라. 하루 종일 여행하면서 얘기하고 장난치고…물론 딱 석 달 갔지만 말이다.
아이들도 유아용 헬멧과 안전장비를 갖추고 바이크에 탄다. 지금도 세 아이 중 하나와 함께 모터캠핑을 다닌다. 아이를 뒤에 태우고 텐트를 싣고 강원도 등지로 떠난다. 세계일주를 준비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내게 바이크는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스포츠이고, 가족과 함께 추억을 쌓는 수단이다.

위험한 것 아니냐는 말을 많이 듣겠다.
바이크를 탄다고 하면 대부분 처음 묻는 얘기가 위험하지 않냐는 것이다. 실제로 2011년에 사고가 있었다. 마포대교 근처를 달리는데 불법 유턴하던 차를 미처 피하지 못했다. 바이크가 완파돼 폐차하는 사고가 났다. 당시 차와 부딪힐 때 몸이 붕 떠서 잠시동안 정신을 잃을 정도였다. 하지만 발바닥부터 머리끝까지 헬멧, 장갑, 슈트, 신발까지 안전장비를 완전히 갖춘 상태여서 다치지는 않았다. 바이크 사고시 사망률은 차보다 높은 게 맞다. 그러나 그보다 항공기 사고시 사망률이 더 높지 않은가.(웃음)

그리고 오프로드 바이크를 타려면 체력이 필요하다. 타는 중간중간 내려서 바이크를 끌고 뛰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바이크 대회에 참가하는 경쟁자들은 모두 2,30대다. 그래서 지금은 바이크를 일주일에 2~3회 타고 그렇지 않은 날에는 달리기를 해서 출퇴근을 한다. 체력을 키우려는 거다. 뛰는 것으로는 부족해 웨이트 트레이닝도 열심히 했다. 덕분에 생활스포츠지도사 자격증도 땄다. 바이크가 위험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내게는 오히려 건강에 도움이 된 셈이다.

언제까지, 몇 살까지 바이크를 탈 건가.
카우보이를 다룬 영화들 보면 이런 말이 나온다. 말에 스스로 못 오를 정도가 되면 그 때가 카우보이의 마지막이라고. 아마 내게도 그때가 마지막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