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문’이 증발된 ‘받아쓰기’의 전통_YTN 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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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임장혁이명박 전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 의혹이 막 불거지려던 지난 2011년 10월 9일, KBS와 MBC, SBS, YTN은 이명박 당시 대통령이 퇴임 후에 내곡동에서 살기로 하고 사저 부지를 매입했다는 청와대 출입기자들의 리포트를 일제히 보도한다. 비슷한 내용의 문장들이 비슷한 순서로 배치된 이 보도들은 ‘아들 명의 구입’ 등 갖가지 의혹들에 대해 ‘아무 문제없다.’는 청와대 발표를 옮긴 것에 불과했다. 기자로서의 확인이나 검증, 최소한의 의문점 제기 등은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이날 시청자들은 일각에서 제기된 ‘내곡동 사저 의혹’을 접하기도 전에, 청와대가 세심한 준비를 통해 지극히 자연스러운 과정을 거쳐 내곡동에 사저를 골랐으며 이를 먼저 자발적으로 밝힌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확인·검증의 실종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통령이나 청와대의 입장과 발표 내용을 무비판적으로 단순히 전달만 하는 태도는 이처럼 청와대와 관련된 의혹에서 두드러진다. 청와대 발표나 해명의 진위에 대한 확인과 검증을 할 수 있는 가장 유리한 위치에 있는 기자들은 누구일까? 물론 청와대의 보안 체계 특성을 볼 때 아무리 청와대를 가까이서 취재하는 출입기자들이라 하더라도 확인과 검증이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발표나 해명의 논리적 모순 혹은 의문점이라도 지적하는 것은 가능할 것이고 모순과 의문을 가장 먼저 집어낼 수 있는 위치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다. 하지만 내곡동 사저 보도처럼 청와대발 리포트 대부분은 최소한의 의문점 제기마저 실종돼 있다.
비선 실세 논란 등 최근 청와대를 둘러싼 일련의 의혹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특히 박근혜 대통령이 문체부 특정 국·과장 두 사람을 콕 집어 ‘나쁜 사람들이라더라.’라며 경질을 지시했다는 유진룡 전 장관의 발언 관련 보도에서도 청와대발 리포트들은 “유 전 장관의 발언은 사실이 아니며 체육 단체 운영비리 개선 방안이 부실했고 체육계 비리 척결에 진척이 없는 데 대한 담당 공무원의 안이한 대처를 질책한 것”이라는 청와대의 해명을 인용만 하는 데 머물렀다. 대통령이 일개 부처 국·과장을 수첩에 적어 좌천 인사를 지시한 자체가 이례적인 점, 왜 정윤회 씨 부부가 관여하고 있는 승마협회를 콕 찍어 조사를 지시했는지 등에 대해서는 청와대의 해명이 없는 점, 박 대통령이 체육계 비리 근절 방안을 보고받은 뒤 한 달도 안 돼 수사권도 없는 공무원들에게 비리 척결에 진척이 없다며 좌천을 지시한 것이 논리적으로 설득력이 있는가 하는 점 등 상식적인 의문을 언급한 청와대발 리포트는 찾기 힘들다.

비판 없는 단순한 전달
‘세월호 참사 당일 대통령의 7시간 행적’ 논란,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대통령 방미 중 성추행 사건, 국정원 대선개입 의혹, 기초연금을 필두로 한 각종 대선공약 논란, 문창극·안대희 총리 후보자 낙마를 비롯한 잇단 인사 파문 논란 등 청와대와 관련된 숱한 의혹 국면에서 청와대발 리포트들의 공통점은 인용과 전달에 머물 뿐 확인과 검증, 의문 제기를 찾기 힘들다는 점이다. 이 같은 받아쓰기식 보도는 진상 규명 대신 ‘의혹을 억지로 일단락’ 시킬 우려가 크다. 청와대의 의중대로 ‘국면 전환’의 계기로 작용하기도 한다. 결국 본질을 흐리고 국민의 알권리 행사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것이다. 받아쓰기의 피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엄청난 나랏돈이 들어가는 일을 그대로 받아쓰면 혈세가 낭비될 수 있다.

10-5 보도

이명박 전 대통령이 지난 2009년 5월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을 당시 현지에서 송고된 청와대발 리포트들은 유전과 가스전 개발 합의 등 성과와 함께 이 전 대통령의 ‘21세기 신 실크로드 건설 제안’을 대대적으로 ‘전달’했다. 역시 확인과 검증, 의문점 제기 등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당시 우즈베키스탄과의 합의로 투입된 자금을 포함해 이른바 MB정부 자원외교 난맥상에 대한 전반적인 국정조사가 실시되기에 이르렀다. ‘바쁜 취재 일정 중에 어떻게 외교적 합의의 허실을 확인, 검증할 수 있겠는가?’, ‘그때 언론이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기 때문에 MB정부의 자원외교 난맥상이 일어났다는 말인가?’라는 반문이 나온다면 토론이 길어질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 발표와 입장을 아무런 확인이나 검증, 최소한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받아쓰는 보도는 언론의 기본을 저버리는 행위이며 과거를 성찰의 계기로 삼아 적어도 반복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런데 지난 6월, 한 방송사 뉴스에서 “우즈베키스탄을 방문 중이던 박근혜 대통령이 ‘신 실크로드’를 제안했다.”는 5년 전과 똑같은 ‘데자뷰 보도’가 나왔을 때 아연실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방송의 받아쓰기식 단순 전달은 ‘청와대’라는 말이 주는 추상적인 권위감과 맞물려 당연히 그래야 하는 전통처럼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청와대 기사는 이래야 한다.’는 데스크와 경험자들의 근거 없는 가르침도 한몫 하고 있는 것이다. 잘못된 전통이다. 왜 잘못된 전통인지, 이유는 다음과 같다.
받아쓰기는 참 쉽다. 굳이 기자가 아니더라도 초등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받아쓸 줄 안다. 받아쓴 걸 토대로 확인하고 검증하고 의문을 제기할 줄 알아야 청와대 출입기자와 초등학생이 구별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