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란 이름] ‘위’ 보다 ‘아래’를 살피는 선배


보다 아래를 살피는 선배


개인의 영달보다 후배의 미래를 돌아보는 내가 되길


 


아리랑 TV 이지윤 기자


 


 


아리랑TV에 입사한지 어느덧 3. 14년 넘게 미국에서 살아온 나는, 한국의 독특한 선후배 문화를 이곳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미국의 문화 특성상, 그 곳에선 나이,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서로 이름을 불렀기에 처음에는 선배라는 호칭이 너무 어색했다.


아리랑 TV에서 일하면서 내 생애 처음으로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들이 생겼다. 처음엔 점심을 많이 사주는 선배들이 제일 좋은 선배였다. 물론 비싸고 맛있는 점심으로. 내가 쓴 기사에 대해 지적하고 코멘트를 해주는 사람들에게 겉으로는 고맙다고 했지만 내심 불편하고 불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무심코 흘려들었던 그 선배의 한 마디가 어렵고 힘든 순간 내 머릿 속을 스쳐 지나갈 때 그들의 존재를 느끼기 시작했다. 옛말에 어른 말 틀린 것 없다고 했던가. 몇시간 동안 아이템 때문에 끙끙 매는 날 보며 같이 고민해주고 도와주던 선배들의 모습이 조금씩 커 보이기 시작했다. 나보다 많은 경험을 쌓아온 선배들의 존재감을 느낌과 동시에 나도 그렇게 선배가 되어갔다.


 


시간이 흘러 아리랑TV 보도국에서 시니어 기자 중 한명이 되었다. 그 만큼 후배들도 많아졌다. 나름 새로 입사한 후배기자들한테 맛있는 밥도 사줬고, 이곳에서 잘 살아남는 나만의 비법도 귀뜸해 줬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그게 다였다. 정작 과거에 내가 뒤늦게나마 진심으로 감사하고 고마워했던 가시 박힌 조언들은 숨겨두고 있었다. 내가 처음 느꼈던 불편함과 불쾌함 때문일까? 자신들이 설렘 반 두려움 반 안고 나갔던 첫 취재, 기사들에 대한 관심과 피드백을 원했을 것인데, 정작 난 내 코가 석자라는 이유로 후배기자들이 어떤 취재를 나갔는지 조차도 잘 살피지 못했다. 뒤돌아보니 난 좋은 선배가 아니었다.


 


생각해보면 좋은 선배는, 위 보다 아래를 한 번 더 살피는 사람이 아닐까. 개인의 영달을 위해 위와 앞만 보고 달리는 사람보다 내가 걸어왔던 길을 따라올 후배들의 미래를 한번쯤 돌아볼 수 있는 사람. 후배들의 기사를 읽어보고 가감 없이 혼내고 칭찬해주는 선배. 바빠서 지나칠 수 있음에도 한걸음 멈춰 한 마디 건낼 수 있는 선배. 현장에서 경험했던 어려움과 노하우를 함께 나눠주고 공유해줄 수 있는 선배. 잘못한 일에 대해 따끔하게 혼내고도 맥주한잔 하면서 다독일 수 있는 선배. (말은 참 쉬운데 역시 어렵다.)


 


그래, 역시 젤 쉬운 좋은 선배되기의 결론은 기자다운 기자가 되는 것이다. 취재 현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항상 열정을 다할 수 있는 사람보다 멋있고 훌륭한 선배가 있을까. 앞서 걷는 사람들이 곧은 길을 내주면 뒤따르는 사람들의 발걸음도 자연스레 힘차고 경쾌할 것이다. 이런 모습을 볼 때 후배기자들은 그 선배에 대한 믿음과 신뢰가 생길 것이고 비로소 진짜 선배라고 생각하고 존경하는 조직이 만들어 질 것이다.


 


나는 아직 기자로서 배울게 너무나 많고 선배라는 타이틀이 한참 부끄러운 신참선배다. 후배들을 향한 관심, 애정, 그리고 내 일에 대한 열정 또한 아직은 걸음마 수준이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하지 않았나. 내일부터 후배가 쓴 기사 하나 읽어보고 코멘트 해주는 것부터 시작해야겠다. 작심삼일이 되지 않도록 무한한 노력을 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뻔하지만 분명한 사실. 좋은 선배들이 있어야 좋은 후배들이 있다. 그만큼 후배에게 선배는 어려운 사람임과 동시에 가장 가까이서 함께 걸어가는 사람인 것이다. ‘좋은 선배를 만났다고 말할 수 있는, 그런 행운을 내 후배들에게 언젠가 안겨줄 수 있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가진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