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석] 우리는 미디어 엘리트입니까?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청기

KBS 이정민 기자

개인적 얘기 하나. KBS 입사 당시의 일이다. 왜 이 일을 하고 싶냐는 최종면접 질문. 뭐라고 했는지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나의 시각으로 세상을 본다는 일이 매력적이라는 취지로 대답했던 것 같다. 한 간부진이 반문했다. “기자가 자기 시각으로 세상을 보면 어떻게 하나?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봐야지순간 뜨끔했다. 어떻게 답해야 하지? 여기서 물러서면 그래도 기자하겠다고 왔는데 왠지 기개가 없어 보일 것 같고에라, 모르겠다. “기자가 신이 아닌 이상 완전히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보도란 불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간부진의 이어진 답변은 면접 끝. 나가세요”. ‘, 떨어졌구나하고 그날 밤 늦게까지 술마셨던 기억이 난다. 입사하고 보니 기사의 중립성은 마치 독도는 우리 땅처럼 당연한 가치로 여겨지고 있었다. 이 당연한 명제를 부정한 당돌한 수험생을 다행히 KBS가 받아준 덕분에 나는 10년째 이 직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언론은 성공한 사람에 편향돼. 공정성에 편향되기도 하고

 

미국 HBO에서 방송된 <뉴스룸>은 한 미국 케이블 방송사의 이야기다. 유명한, 누구에게도 불편하지 않은 딱 중립적인 보도를 하던 앵커가 프로듀서와 팀이 바뀐 뒤 진짜 뉴스를 해보겠다며 고군분투하는 정말 드라마같은이야기. 주인공과 그의 팀은 뉴스에서 가십성 보도를 지우고, 정치인들의 말과 행동에 대한 사실 확인, 다른 언론사의 보도에 대한 검증성 보도로 뉴스 방향을 바꾼다. 사건 사고는 사망자들의 휴먼스토리보다 사안의 심각성과 구조적 문제에 초점이 맞춰지고, 정치집단 뒤에 숨어있는 자본권력을 폭로하는 심층적 내용들이 뉴스를 장식한다. 이런 방식은 뉴스는 정확한 정보를 전해야 한다는 제작진의 인식 공유에서 비롯됐는데, 자신들이 보도하는 문제가 뭔지, 그리고 그 이면에는 무엇이 있는지까지 정확히 취재하고 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결국 제작진은 풀뿌리 시민운동을 표방하는 정치집단 티파티가 엄청난 기업권력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을 보도하게 되는데 (물론 이 에피소드는 작가인 애런 소킨의 정치적 성향이 반영됐다.) 그들의 보도는 엄연히 취재한 팩트에 기인하고 있지만 특정 정파에 편파적인 듯 보이고, ‘공정성을 상실했다는 정치권의 반발을 불러온다. 물론 또 드라마니까! 제작진은 그래도 꿋꿋이 계속 비판 보도를 이어나간다. 그것이 그들이 취재한 진실이기 때문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취재진의 든든한 버팀목이 돼주는 보도본부장(찰리 스키너)의 말이 걸작이다.

 

 

“언론은 성공한 사람에 편향돼. 공정성에 편향되기도 하고. 진실은 중간이야. 공정해보이도록 하려고 어떤 사실이 마치 논란의 여지가 있는 척 하지 않아. 균형잡힌 보도는 진실, 논리, 현실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거야.”

 

 

사람들이 관심있어 하는 내용은 다 어디있어?”

뉴스는 또한 가십과 흥미성을 배제하기 위해 노력한다. 제작진은 시청률에 신경쓰며 흔들리지 않겠다고 아예 선언까지 해버린다. 심지어 케이스 하나 쓰는데도 케이스는 구조의 잘못을 개인의 불행으로 치환시킬 수 있다며 배제하는 판이니정치권력에 미움받고 있는데 심층보도 하겠다며 시청률까지 떨어지자 경영진은 제작진의 보도를 재제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는 내용들은 다 어디로 갔냐?”. “난 당신들이 비판하는 의회와 사업을 해야 한다, 다른 뉴스와 흐름을 맞추지 않으면 수천 명이 채널을 돌린다며. 꿋꿋이 제멋대로 뉴스를 하던 제작진도 선거 후보 토론회를 하려면 시청률이 어느 정도를 유지해야 한다고 하자 결국 원칙을 버리고 가십 보도에 뛰어든다. 중요한 정치경제적 이슈들은 가십보도에 밀려 축소되고 뉴스의 날은 무뎌진다.

방송에서 시청률은 권력일 뿐 아니라, 자신이 보도하고 싶은 것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릴 수 있는 수단인 매력적인 존재다. 문제는 이 수단목적이 될 때다. 시청률이 목적이 되고 언론으로서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불편하지 않을 방송, 시류에 따라가는 방송을 만들게 된다. 우리가 방송에 내야 할 진실은 굳이 밀어내서가 아니라도 슬쩍 뉴스에서 사라진다. 언론이라면 누구나 그 함정에 빠질 수 있다. 아주 쉽게.

우리는 최고로 사실적일 것입니다.”

이 드라마는 전형적인 미국 언론의 이야기다. 게다가 허구다. 상업주의로 흔히 일컬어지는 미국 언론의 특성, 미국과 다른 우리나라 정서를 고려하고 보면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들도 많다. 하지만 뉴스라면 정보이상의 진실을 알려야 한다는 정의, 그리고 이는 사람과 사회에 대한 애정에 기반 해야 한다는 큰 가치는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다. 드라마 속 뉴스맨들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내 기사로 누군가 이유 없는 피해를 입지 않았나 혼자 고민하고, 진한 동료애를 보여주기도 한다. 열심히 일하는 건 물론이고.(라고 하는게 9시 칼퇴근인걸 보면 업무량에서는 대한민국 기자 따라오긴 멀었지만. ^^)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스룸>을 보며 웬지 꿀리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던 건 그들에게 일상화된 고민의 깊이다. 보도의 파장과 사회에 끼칠 역할, 심지어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받아들여질지에 대한 고민하고 함께 토론한다. 그런 고민이 뉴스에 반영될 때 그들이 보도하는 진실은 힘을 가진다. 이쯤 되면 현실의, 내가 일하고 있는 뉴스룸과의 비교를 하지 않을 방법이 없다. 토론이 사라진 보도국 문화, 형식의 발전이 내용의 발전을 앞서가는 뉴스, 잘잘못을 따져야 할 문제도 정파적 문제로 여겨지는 최근의 분위기가 못내 아쉽다. 그래서 드라마 속 제작진의 이 자신감이 현실의 언론인인 나는 보는 내내 부러웠다.

“이 순간부터 방송하는 모든 것들은 우리가 결정할 것이며 민주주의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보를 잘 아는 유권자라는 단순한 진실에 근거해 방송할 것입니다. 보다 넓은 관점에서 정보를 이해하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현재 우리가 방송하는 것 중에는 뉴스거리가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최고로 사실적일 것이며 빈정거림, 추정, 과장 넌센스는 지양할 것입니다.

뉴스는 인간미라는 관점에서만 의미가 있기 떄문입니다. 우리가 뭔데 이런 결정을 내리냐고요? 우리는 미디어 엘리트입니다.“

10년 전 면접 질문을 다시 받는다면 뭐라고 대답할지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유감스럽게도 답이 해마다 바뀌는 걸 보니 아직 다 여물지 않은 기자인게 맞는 것 같다. 적어도 지금까지 찾은 가장 폼나는 답변은 이거다, “객관적으로 취재를 시작하되 무엇이 옳은 것인가를 찾아내 객관적이지 않은 진실을 제대로 보도하는 게 기자라고 생각한다”. 미디어 엘리트까진 바라지도 않으니 그저 기본이라도 하자 싶다. 우리 뉴스가 함께 고민해 발전해가는 뉴스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