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왜 필름카메라로 찍는가

사진-김인정01 

7년째다. 돈도 좀 깨졌다. 필름 사고, 현상하고, 스캔하느라. 그동안 쓴 필름만 어림잡아도 몇백 통 된다. 필름을 사면 신선도를 유지하려고 냉장고에 넣는다. 덕분에 냉장고 맨 위 칸엔 엄마의 명란젓과 마늘장아찌, 딸기잼과 함께 포장을 풀지 않은 필름 수십 롤이 들어있다. 반찬 들어갈 틈이 줄어드는 바람에, 먹고 사는 것보다 사진이 중요하냐며 엄마는 가끔 내 등짝을 후려친다. 그래도 필름을 버릴 순 없다. 장아찌와 젓갈, 먹고 사는 일보다 나에겐 중요한 문제다.

필름을 사서 쓰게 된 건 수동 필름 카메라를 사면서부터다. 수동 구식 카메라, 새 제품은 나오지도 않는 중고 카메라였다. 그걸 산 이유는 단순했다. 쌌다. ‘아웃 포커싱’인가 뭔가 하는 효과를 내보고 싶은데 디지털 수동 카메라는 턱없이 비쌌다. 그렇게 사게 된 첫 필름 카메라가 CANON사의 AE-1이다. 거기에 군대 간 친구가 유통기한 지난 군용 필름이라며 백 통 가까이 가져다준 필름을 넣어 마구 찍기 시작했다. 그때는 필름 발색이 유통기한이나 보관 방법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는 기본적인 상식도 없었다. 무식하게 찍어대는 통에 숱한 과 동기들과 선배들, 학교 밖 친구들이 무참히 희생됐다. 초보 사진사와 초보 모델들은 초점도 노출도 표정도 포즈도 엉망인 사진을 인화해 놓고 한참을 흐뭇하게 바라보곤 했다.

사진-김인정02

이 새로운 취미는 나를 온통 사로잡았다. 무심히 지나치던 도서관 계단으로 들어오는 빛이, 학교 앞 더러운 신촌 거리에 있는 빨간 하숙집 지붕이, 홍대 앞 놀이터 화장실에 그려진 그라피티가 느닷없는 아름다움을 품고 다가왔다. 함께 걷던 친구가 웃음을 터트리는 모습에 걸음을 멈췄고, 물을 따르다가도 물병 안에서 물과 빛이 함께 넘실거리는 모습에 숨을 멈췄다. 필름에 기록할 만한 아름다움인지 아닌지 가늠하기 위해서였다. 일단 그림이 된다 싶으면, 조그만 노출계로 노출을 측정하고 조리개와 셔터 스피드를 조작한 뒤 셔터를 누르면 끝이었다. 그 순간이 필름에 영원히 기록됐다. 디지털카메라의 RAW 파일처럼 찍고 나서 언제든 모든 값을 다시 조정할 수 있다면 그렇게 망설이거나 멈추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떤 순간을 작게 압축해서 실제로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 나는 흥분했다. 필름의 존재 때문에 시간에 현상액을 끼얹어 단단한 물체로 만들어 손에 쥘 수 있게 된 것이다.

어린 시절, 폼페이 화산 유적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사람들이 멈춰 있었다. 뛰거나, 걷거나, 눕고, 웅크려 있었다. 어떤 남녀는 껴안은 모습 그대로 용암 속에 흔적을 남겨 놓았다. 거대한 시간이 유적 안에 멈춰 있었다. 순간은 순간인 동시에 영원이 됐다. 겁이 나서 눈을 뗄 수 없었다. 한국에도 휴화산이 있다고 배운 뒤로 공포는 커졌다. 내 위로 지금 용암이 끼얹어지면 어떡하지…. 정중한 모습으로 죽고 싶어서 열 살이 채 안 된 나는 가끔 가만히 멈춰서 순간을 영원으로 만들어 줄 용암을 기다렸다. 이왕이면 점잖고 괜찮게 생긴 유적이 되고 싶었다. 필름 사진을 찍는 건 비슷한 의미였다. 가만히 멈춰서 카메라를 들고 순간을 찍어 영원으로 만드는 일. 이왕이면 아름다운 순간에 용암을 들이붓는 일. 그렇게 박제된 과거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서 나는 스무 살 언저리의 우울한 날도 견뎌냈다. 앞으로 뭐가 돼야 할지 몰라서 더 나이를 먹고 싶지 않을 때, 사랑하는 가족이 죽어 시간을 멈춰버리고 싶을 때, 나는 계속 사진을 찍었다. 침대보가 축축이 젖을 정도로 울고 일어난 다음 날도 사진이 어떻게 찍혔을지 궁금해서, 필름에 담긴 사진을 현상하는 시간이 즐거워서 나는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현상을 마치고 사진들이 제 모습을 드러낼 때면 고통의 원근법이나 착시 효과 때문에, 아니면 그놈의 ‘아웃 포커싱’이 많은 걸 보이지 않게 뭉개준 덕택에 내 삶이 제법 괜찮아 보이기도 했다.

필름은 그래서 특별하다. 날아가 버리기 일쑤인 순간들을 갈무리해 내 손에 쥐어주고 제법 괜찮았지 않느냐고 어깨까지 툭툭 쳐준다. 아름다운 유적을 계속 만들어내면서 일단 살아가라고, 지금 이 순간이 괴로웠는지 어땠는지는 현상한 뒤에나 생각할 일이라고 응원한다. 그래서 지금도 기록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면 나는 언제든 필름 카메라를 꺼내 든다. 여기가 폼페이라면 나는 카메라를 든 모습으로 멈췄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