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바마도 주목한 ‘마이리틀팟캐스트’_뉴스백 이국명 편집국장

지난 6월 19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중의 한 명인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 방송에 출연하기 위해 로스앤젤레스(L.A.)를 찾았습니다. 그런데 최소한의 경호원만 대동한 오바마 대통령은 이상하게도 ABC나 CBS, NBC, FOX, CNN 등 유력 방송국이 아닌 L.A. 하일랜드파크에 있는 한 가정집 차고로 향했죠. 더 놀라운 일은 편안한 셔츠 차림으로 오바마 대통령을 맞이한 사람이 데이비드 레터맨이나 존 스튜어트와 같은 유명 앵커와는 거리가 먼 ‘WTF(WTF with Mark Maron)’ 팟캐스트 진행자인 마크 마론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앉기도 불편할 정도로 협소한 차고였지만 오바마 대통령은 1시간여 동안 대본도 없이 흑인을 지칭하는 금기어까지 사용하며 미국의 인종주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열정을 뽐냈고, 네티즌들은 100만이 넘는 다운로드로 화답했습니다.

‘500대 기업 CEO 절반, 팟캐스트로 영감 얻어’
새로운 대안 미디어로 주목받는 팟캐스트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사례처럼 특종을 터트리는 팟캐스트가 크게 늘어난 미국에서는 기존 언론 못지않은 파워를 인정받고 있죠. 포춘 선정 500대 기업 CEO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문·방송이 아닌 팟캐스트에서 정보와 영감을 얻는다는 대답이 절반 이상으로 나온 바 있습니다. 덕분에 미국 내 팟캐스트 광고비는 청취 건수 1,000건당 20~30달러 수준으로 전통적인 라디오 광고비의 5배에 달할 정도입니다.

정당·출판사·언론사도 팟캐스트
국내 상황도 미국과 다를 바 없습니다. 국내에서도 팟캐스트의 진가를 가장 먼저 인정하고 나선 곳은 바로 정치권이죠. 정봉주의 ‘전국구’, 이박사(이종우)와 이작가(이동형)의 ‘이이제이’, ‘장윤선의 팟짱’ 등 정치 팟캐스트가 50만 명이 넘는 구독자를 자랑하자 정의당에서는 노회찬·유시민·진중권을 내세운 ‘노유진의 정치카페’로 바람몰이에 나섰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젊은 의원 3인방(진성준·진선미·김광진)이 진행하는 ‘진짜가 나타났다’를 선보인 상태죠. 현재 국회의원을 배출한 정당 중 새누리당을 빼고 모두 팟캐스트를 직접 운영하고 있는 셈입니다.
팟캐스트 위력에 눈을 뜬 분야는 정치만이 아닙니다. 최근 위기를 겪고 있는 출판계도 팟캐스트에서 돌파구를 찾고 있습니다. 위즈덤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이동진의 빨간책방’이 베스트셀러를 좌지우지할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자 창작과비평은 ‘창비라디오’, 문학동네는 ‘문학동네 채널’, 교보문고는 ‘낭만서점’ 등을 속속 개국했죠. 종교계도 ‘법륜스님의 즉문즉설’, ‘두란노 이야기성경’, ‘지방교회’ 등 팟캐스트에서 포교활동을 활발히 하고 있습니다.
기존 언론들도 팟캐스트 열풍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KBS·MBC·SBS·CBS 등의 인기 라디오 프로그램은 대부분 팟캐스트로 재방송되고 있죠. ‘마녀사냥’, ‘김제동의 톡투유’ 등 TV 프로그램도 오디오 버전으로 청취자들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신문사들이 운영하는 팟캐스트도 늘어나고 있습니다. 중앙일보·한겨레·경향·한국경제·머니투데이 등 유력 일간지들은 소속 기자나 칼럼니스트 등을 동원한 팟캐스트로 독자층 넓히기에 나서고 있습니다.

기존 방송 재탕으론 성공 힘들어
주목할 점은 기존 언론에서 운영하는 팟캐스트의 성적이 신통치 않다는 점입니다. 애플의 팟캐스트나 팟캐스트 플랫폼 ‘팟빵’을 기준으로 1위에서 10위까지는 일반 팟캐스트들이 차지하고 있습니다. 20위까지 범위를 넓혀 봐도 ‘JTBC 뉴스룸’, ‘이진우의 손에 잡히는 경제’가 눈에 띄는 정도입니다. 탄탄한 기획력과 섭외력, 이슈 장악력까지 지닌 언론사로서는 체면이 구겨지는 이야기죠.
이는 기존 언론들이 팟캐스트의 성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탓으로 분석됩니다. 팟캐스트는 애플의 아이팟(iPod)과 방송(broadcasting)의 합성어입니다. 2004년 2월 영국의 기술 칼럼니스트 벤 해머슬 리가 처음 사용한 용어로 네티즌들이 제작자이자 구독자가 된다는 점에서 ‘오디오 혁명’이라고 언급했습니다. 실제로 인기 팟캐스트의 대부분은 값비싼 장비나 전용 스튜디오 없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간단한 오디오 장비와 노트북만 있어도 충분히 팟캐스트를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청취자들도 기존 라디오처럼 방송시간에 맞출 필요가 없습니다. 원하는 팟캐스트에 구독신청만 해놓으면 PC는 물론 스마트폰으로도 출퇴근 시간이나 휴식 시간에 짬짬이 들을 수 있습니다.
기존 언론들이 독점해왔던 방송 제작은 물론 소비시간까지 네티즌들 손에 넘어갔다는 이야기죠. 따라서 마음에 드는 팟캐스트를 발견하면 업데이트된 순서를 ‘역주행’하며 듣는 청취자들도 많습니다. 기존 방송의 장점인 속보나 휘발성 연예 뉴스로는 팟캐스트 청취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경제·IT·의학 등 전문적 콘텐츠도 인기
팟캐스트 스타가 탄생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합니다. 유명 연예인이나 인사들이 줄줄이 출연해 자신의 인맥이나 지식을 자랑하는 기존 방송과는 달리 이웃집 형, 누나 같이 다소 어눌한 출연진이 카페에서 진솔하게 이야기를 나누는듯한 방식이 큰 호응을 받고 있습니다. 때로는 청취자들에게 배우고 함께 공부하는 것도 마다치 않는 열정에 네티즌들이 신선한 박수를 보내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고 팟캐스트 콘텐츠의 품질이 기존 방송보다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과학하고 앉아있네’ 등은 책으로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훌륭한 콘텐츠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게다가 기성 언론에서 다루지 않은 다양한 의제로 콘텐츠의 풍성함은 오히려 뛰어납니다. 사회적 비판이나 풍자 팟캐스트는 물론 인문학, 종교, 과학, 철학, 종교 등 전문적인 콘텐츠도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경제상식을 다루는 ‘경제브리핑 불편한 진실’, 의학지식을 담은 ‘나는 의사다’, IT분야의 ‘IT 토킹쇼 잇백’ 등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은 전문지식을 대본도 없이 자유자재로 요리하는 팟캐스트도 호평을 받고 있습니다.
기성 언론이 잘 갖춰진 연미복을 입고 연주하는 클래식이라면 팟캐스트는 자유로운 스타일의 힙합에 가깝습니다. 이런 점을 정확히 간파한 오바마 대통령도 격식과 권위를 벗어버리고 편안한 셔츠차림으로 팟캐스트에 출현하지 않았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