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비고

 

 KBS범기영

입덧 때문이었다. 아내는 음식을 먹기는커녕 냄새를 맡는 것도 힘들어 했다. 밥 익는 냄새나 찌개 끓는 소리는 몇 주째 없었다. “온종일 멀미를 하는 것 같다.”고도 했다. 메슥거리는 속은 주스나 탄산수로 겨우 가라앉히던 참이었다.

어느 휴일, 비빔국수 이야기를 먼저 한 것은 나였다. 뭐라도 곡기를 넘기게 하고 싶었다. 종종 냉면으로 끼니를 때운다고도 했으니 나쁘지 않은 메뉴겠다 싶었다. 비교적 쉽게 만들 수 있기도 하다. 마침 부모님이 주신 열무김치가 적당히 익었으니 맛내기 어렵지 않겠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시골에서는 새참으로 국수를 내놓았다. 내놓는 쪽에서도 부담 없었고 일꾼들 입장에서도 먹기도, 소화시키기도 좋았다. 따로 멸치국물을 우릴 것도 없이 냉수에 국수 한두 덩이 풍덩 담근 뒤엔 설탕을 크게 두어 숟가락 풀었다. 도시에서는 흔한 피로회복 음료 혹은 에너지 드링크 역할을 흡수 빠른 설탕물이 했을까? 달디 단 국수에 열무든 총각이든 김치를 얹어서, 일꾼들은 논두렁에 앉아 마시듯 먹었다. 막걸리까지 한두 대접 곁들이면 노동으로 뻐근한 관절이며 근육이 한결 풀어졌을 것이다.

날씬함이 곧 아름다움인 시대. 도시 여성은 아이를 배고도 몸매를 걱정한다. 몸무게가 너무 빠른 속도로 느는 것은 아닌지, 출산 후에 지금 입는 옷을 다시 입을 수는 있을지 생각하며 우울해 한다. 그런 사람에게 설탕 국수를 먹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다면 역시 열무김치를 얹은 비빔국수만큼 맞춤한 음식은 없겠다.

투 떰즈 업Two thumbs up. 아내는 국수를 참 맛있게 먹었다. “입덧 시작한 뒤로 가장 맛있는 음식”이라고도 했다. 칭찬이 과하더니 그날은 결국 온종일 국수를 삶고 건지고 양념을 만들어 비볐다.

파는 비빔라면을 적절히 활용해도 좋다. 예능 프로그램에서 ‘골빔면’으로 소개된 바 있다. 차이가 있다면 양념. 소개한 비빔국수 양념장으로 비비면 건강한 비빔면을 즐길 수 있다. 여기에 깡통 골뱅이를 건져내 섞고 오이와 양파채를 얹으면 맥주 안주로도 훌륭하다. 밋밋하다 싶으면 비빔라면에 들어있는 액상스프를 살짝 넣으시라. 익숙한 그 맛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이미 마법의 양념, 인공 감미료의 포로다.

  

Recipe KBS범기영2

만들기는 어렵지 않다. 먼저 국수를 삶는다. 팔팔 끓는 물에 국수를 넣는다. 끓어오를 때 찬물을 부어 가라앉혔다가 다시 끓인다. 면발을 먹어보고 익었다 싶으면 건져내서 바로 찬물에 헹군다(적당히 퍼져 부드러운 면을 좋아한다면 생략해도 좋다). 얼음물이 좋다지만 흐르는 수돗물로도 충분하다. 헹구면서 살살 비벼주면 쫄깃함이 배가된다.

다음은 비빔면의 생명, 양념이다. 기본 공식은 이렇다. 고추장 3, 식초 2, 매실청 2, 참기름 1, 통깨 적당량. 고추장과 식초가 기본이다. 단맛도 필요한데 나는 보통 매실청을 쓴다. 청매실을 설탕에 재워 얻는 매실청은 설탕 대용으로 훌륭하다. 없으면 설탕이나 요리당을 써도 물론 무방하다. 취향에 따라 비빔 양념에 겨자나 다진 마늘 등 다른 양념을 적당량 넣을 수도 있다. 

이제 담아내기만 하면 된다. 건져놓은 면을 그릇에 놓고 잘 익은 열무김치를 적당량 얹는다. 그리고 비빔양념을 올려 오른손으로 비비고 왼손으로 비빈다. 모양을 내고 싶다면 당근이나 양파, 오이를 채 썰어 올린다. 단백질까지 해결하려면 달걀을 삶아 반으로 자른 뒤 올려도 좋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