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인의 정치직행에 대한 비판과 대안] 언론인의 청와대행, 무엇이 문제이고 대안은 무엇인가?

[언론인의 정치직행에 대한 비판과 대안]
언론인의 청와대행, 무엇이 문제이고 대안은 무엇인가?1)

김세은 교수 (강원대학교 신문방송학과)

정관계로 진출한 언론인을 통칭하는 ‘폴리널리스트’. 그 가운데 청와대 수석, 비서관, 대변인, 춘추관장, 특보 등을 역임한 언론인만을 추려봐도 줄잡아 70명 가까이 된다.2)

강인섭, 강용식, 고민정*, 권영만, 김경재, 김기만, 김길홍, 김 남, 김동성, 김두우, 김상협, 김성우, 김성진, 김용태, 김은혜, 김의겸, 김한길, 김 행*, 김형오, 김효재, 문학진, 민경욱, 박선규, 박선숙, 박정호, 박준영, 박형준, 박흥신, 선우연, 손주환, 송경희, 신도성, 신범식, 신성호, 신혜경, 심융택, 양정철, 여현호, 염길정, 유성식, 윤도한, 윤두현, 윤여준, 윤영찬, 윤주영, 윤창중, 이경재, 이남기, 이동관, 이병완, 이상휘, 이웅희, 이자헌, 이종원, 이지현, 이해성, 임방현, 전광삼, 전병헌, 정연국, 정혜승, 조용우, 주돈식, 최금락, 최병렬, 최영철, 최우규, 최재욱, 하금열, 홍상표
(*는 기자 출신이 아닌 언론인)

 

사진1

예전에는 국회의원이나 장관으로 가는 예가 많았다면, 최근 들어서는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 수는 감소하는 대신 언론인의 청와대행이 두드러진다. 직급도 다양해지고 있다. 그 이유는 물론 국회의원 경쟁이 과거에 비해 훨씬 치열해졌기 때문이다. 동시에 언론의 산업적 위기 상황에서 언론사와 기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언론과 언론인의 사회적인 위상은 낮아졌다. 국회의원을 꿈꾸는 언론인 수도 그만큼 늘어났다고 할 수 있다. 공천부터 선거까지, 길고도 험한 과정을 거쳐야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반면, 청와대는 경쟁의 절차도 없는데다 총선을 준비하기에도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정치에 뜻을 둔 언론인들이 선호하는 통로가 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경우 이동관, 김효재, 김은혜, 유성식으로 시작된 언론인의 청와대 행렬은 홍상표, 최금락, 하금열 등으로 이어졌고, 박근혜 정권에서는 윤창중, 민경욱, 정연국이 그 뒤를 이었다.

그때는 다들 손가락질하기 바빴다. 그도 그럴 것이, 언론인이 청와대로 가는 것이 괜찮으냐 아니냐, 언론인으로서의 행적이 어떠했냐를 차치하고 과정과 절차의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재인 정권 초기 대변인 후보로 김의겸이 오르내릴 때는, 대부분의 독자가 그랬겠지만, 여러 차원의 것들이 뒤섞여 심경이 복잡해졌다. “부루투스 너마저…”로 표현할 수 있는 다소의 당황스러움과 감성적 실망감은, 연구자로서 이제는 언론인의 정계진출을 사례별로 이해하고 평가해야 하는 건지, 좀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좋은 정부’에 ‘좋은 언론인’이 가는 것은 괜찮은 건지, 다르게 봐야 하는 건 아닌지 하는 고민으로 연결됐다. ‘한때’ 출중한 기자였던 이가 일정한 유예기간을 거친 후 정계로 가서 모범적인 정치인으로 인정받는 사례들이 누적된다면, ‘폴리널리스트’에 대한 평가기준도 좀 달라져야 하는 건 아닐까? (유감스럽게도 그런 고민은 길게 가지 못했다.)

사실 우리 역사를 보면 진보매체 언론인의 정계 진출도 결코 보수계열 언론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기회가 없었을 뿐.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 정계로 나간 언론인 상당수는 진보쪽이다. 물론 진보언론인이라고 해서 언론인으로서의 역량이 더 뛰어났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니, 언론인의 정계 진출을 놓고 이념의 문제를 들이대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너 나 할 것 없이 한국 언론 전반의 특성이요 언론인 모두의 문제로 봐야 하는 것이다. 

애써 긍정적으로 해석해 보면, 한국 언론인의 뿌리랄까 연원을 삼사三司에서 찾아볼 수 있고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구국과 항일운동의 선봉에 섰던 지사적 언론인들의 사회적 역할이 정치인과 크게 다르지 않았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왕권과 식민권력에 의해 시민의 정치 참여가 억압되면서 언론이라는 ‘유사영역’으로 그 역할이 이전되었으며, 그런 탓에 언론과 정치가 미분화 상태로 오랫동안 지속되었고 언론인 역시 저널리스트로서 충실하기보다는 유사정치인(pseudo-polinalist)으로 자리매김해 온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일부 언론인의 시대착오적 자기인식과 행보는 언론 전반에 심대한 폐해를 가져온다. 정치권과 언론의 인적 이동은 그들만의 카르텔을 형성하고 이익을 공유한다. 대다수 기자들은 그렇지 않은 현실에도 불구하고, 일부 문제적 기자들의 문제적 행위는 기자 전반에 대한 인식과 언론의 신뢰, 그리고 기자 집단의 자기정체성과 직업윤리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밖에서 보기에는, 이른바 ‘언론고시’를 거쳐 언론사에 입사하는 이들은 어려운 관문을 통과한 만큼 언론인으로서의 열망도 강하고 언론인으로서의 자부심이 강할 것으로 추정하고 기대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이 이 폴리널리스트의 존재로 인해 증명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제대로 기자를 뽑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하다. 그 어려운 시험을 통해 무엇을 보고 어떤 기준으로 수습기자를 채용하는가? 기자가 전문직인가 하는 것은 여전히 논쟁적이지만, 기자직을 수행하는 데에 특별한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데에는 대체로 동의가 이루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재능보다는 기자로서의 책무감, 윤리의식에 좀 더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건 아닐까? 교육 문제도 중요하다. 역시 기능 위주의 교육에서 벗어나 사적 이익과 언론 윤리사이에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기자를 키워내는 데에 무게중심을 두어야 한다.

그들이 청와대로 옮기면서 하는 근사한 말들이 실은 남아있는 언론인들의 긍지를 무너뜨리고 조롱과 비난의 대상으로 만든다는 것을 우리는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어려운 조건에서 아무리 열심히 저널리즘의 원칙을 고민하며 객관적으로 기사를 써도, 누군가 정파성이라는 프레임을 덧씌우면 꼼짝 못하고 벗어나기 어렵게 된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청와대나 정당으로 옮겨가는 언론인들을 개별적인 직업선택의 자유로 여기고 방기하면 안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런 점에서, 방송기자연합회나 기자협회, 언론노조 등의 역할이 중요하다. 최근 정치권, 특히 청와대행을 택하는 기자들이 주로 방송 출신임을 생각할 때 적어도 방송기자에 대해서는 방송기자연합회가 중심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 인적 관리는 기사 품질 관리만큼이나 언론의 신뢰에 직결된다. ‘직업으로서의 언론(journalism as profession)’을 확립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을 검토하고 윤리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정치권으로의 이동이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면, 방송 현장에서 그러한 조건과 행위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하는 점에 대해 정교하게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윤리규정을 어떻게 실효성 있게 운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더욱 중요하다. 윤리규정에 위배되는 일체의 행위들을 어떻게 금지하고, 어길 경우 어떻게 징계해야 방송기자로서의 직업정체성이 유지될 것인지에 대한 집합적 논의가 공론화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어야 할 것이다. 이번 호의 기획이 그런 공론화 작업의 시발이 되기를 기대한다.


1) 유사한 논지의 글이 <신문과 방송> 2019년 5월호에 게재될 예정이다.
2) 이 명단은 제헌국회부터 20대까지 언론인 출신 국회의원의 경력 자료를 조사, 분석하면서 청와대 이력이 있는 이들만 따로 정리한 것이다. ‘폴리널리스트’ 자료를 본격적으로 수집하기 시작했던 이명박 정권부터는 국회의원 경력이 없더라도 모두 추가했다. 따라서, 국회의원을 거치지 않은 이들 가운데 이명박 정권 이전의 청와대 경력이 있는 언론인은 누락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청와대나 각 부처 홈페이지에서는 과거 조직이나 명단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한 명단을 확보하기는 어려우며, 부실한 공공데이터와 인물자료 등의 문제로 인한 누락과 오류 가능성을 감안해서 보시기 바란다. 지속적인 자료 축적을 위해 누락이나 오류 지적은 물론, 언론인의 정관계진출 (시도) 사례에 대한 정보를 news@kangwon.ac.kr로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