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양치기’ 총리와 ‘면피’ 대통령

총리 후보자 시절 기자 협박 발언으로 언론인을 노리개, 즉 완구玩具로 보느냐는 분노를 샀던 이완구 총리가 자신이 주도한 사정 정국에서 ‘불법 정치자금 3천만 원’을 받은 의혹에 휘말려 결국 임명 두 달 만에 총리직에서 물러나는 믿기 어려운 사태가 발생했다. 사정 정국의 1호 표적이 됐던 성완종 경남기업 회장이 구명을 위해 필사적으로 몸부림치다 여의치 않자 목숨을 끊으며 남긴 메모지와 인터뷰가 직격탄이 된 것이다. 이럴 때 즐겨 쓰는 제갈량과 사마중달의 고사에서 비롯된 비유처럼 ‘죽은 성완종이 산 이완구를 잡은 셈’이다.

그러나 차분히 따져보면 이완구 총리의 낙마는 단지 ‘3천만 원을 받았다’는 데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바로 그의 양치기 소년 같은 계속된 거짓말이 공무원의 수장인 총리로서, 국가를 이끌어가는 정치인으로서 도저히 용납하기 힘들다는 여론이 더 핵심인 것이다. 여기엔 국가 운영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뜻이 내포돼 있다.

중국 고대 주周나라의 유왕幽王은 정사를 간신에게 맡기고 주색잡기에 정신이 없었다. 충언을 하는 신하는 죽임을 당하거나 옥에 갇혀야 했다. 유왕에겐 간신이 천거한 포사褒似라는 절세미인이 있었는데 도대체 웃지를 않아 왕을 애태웠다. 급기야 포사를 웃게 하는 자에게 상금을 주겠다는 황당한 어지御旨가 내려지고, 봉화烽火를 이용해보자는 더 황당한 제안이 채택된다. 바로 ‘봉화를 올려 제후들을 희롱하다’(烽火戱諸侯)는 고사의 어원이다. 유왕은 적군이 쳐들어오지도 않았는데 봉화대에 불을 피워 제후들을 불러 모았다. 천자가 위급한 상황에 닥쳤으니 제후들이 만사 제쳐두고 군사들을 이끌고 달려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나라 수도(지금의 서안西安지역)에 당도한 제후들은 “그냥 한번 해봤어.”라는 말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성루에서 낭패한 제후들의 모습을 보며 포사는 드디어 웃음을 터트렸고 유왕은 너무나 기뻐 제안자에게 큰 상금을 내렸다.

이러기를 수차례, 점차 천자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제후들은 줄어들었는데 이때 포사에게 왕후 자리를 뺏기고 쫓겨난 전 왕후의 아버지가 북방의 견융과 결탁해 대규모로 쳐들어왔다. 당황한 유왕은 급히 봉화를 올렸으나 불행히도 그를 구하기 위해 달려오는 제후들은 하나도 없었다. 제후들은 왕이 또 자신들을 희롱하는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다. 결국 주나라 수도는 함락당하고 유왕 역시 피살됐다. 뒤늦게 견융의 침략 사실을 안 제후들의 노력으로 주나라는 겨우 명맥을 유지했으나 지금의 뤄양洛陽지역으로 천도를 해야만 했다. 기원전 770년, 역사가 서주西周와 동주東周로 나뉘는 주周의 동천東遷은 바로 이러한 ‘왕의 거짓말’ 놀음 끝에 나온 참사였다. 양치기 소년은 거짓말로 양 몇 마리를 잃고 말았겠지만,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은 거듭된 희롱과 거짓말로 자신의 목숨을 잃고 종묘사직의 문까지 닫을 뻔했다. 한 나라 지도자의 도덕성, 정직함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일깨우는 바로 오늘 우리가 깨달아야 할 역사다.

양치기 총리의 거짓말보다 더 우려스러운 게 현재 박근혜 대통령의 면피성 발언과 도피성 행태이다. 세월호 사태와 관련한 이분의 말씀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유가족들에게 직접 진상규명을 약속했으면서도 여전히 진실 앞에 서기를 두려워하고 있다. 특별조사위원회의 업무 범위를 축소하고 그나마 공무원이 조직을 장악하게 만든 시행령이 대표적이다. 진상규명을 약속하고 이를 위해 특별법까지 만들었으면서도 하위 시행령으로 특별법을 무력화해 진상 규명을 오히려 방해하려 한다는 비판과 분노가 쏟아지는 건 당연한 귀결이다.

더구나 세월호 1주기를 앞둔 그 중요한 시점에 굳이 외유를 택해 유가족들의 가슴에 분노를 더할 게 무엇인가? 유가족들이 오죽했으면 추모제를 취소하고 대통령을 만나는 것조차 거부했겠는가? 이런 도피성 행태는 진실에서 도망가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슬픔을 나누려는 유가족과 시민들의 행진을 강경 진압해 국민 여론을 분열시키려는 행태, 끝내 위법적인 시행령을 거두어들이겠다고 밝히지 않는 행태는 ‘세월호 그만하자, 지긋지긋하다.’라는 일부 여론에 기댄 무책임하고 비겁한 것이다. 어찌 국가의 지도자가 국민의 아픈 마음을 위무하려 하지 않고 위압적으로 억누르려만 한단 말인가?

양치기 총리의 낙마, 전·현직 청와대 실세와 집권당 정치인들의 부패 혐의는 그 누구도 아닌 대통령이 나서서 ‘저의 책임입니다. 대오각성하겠습니다.’라고 진정으로 사과해야 할 사안이다. 그러면 국민들은 ‘당신의 진심을 믿습니다. 분발하십시오.’ 이러지 않겠는가?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은 이 시점에 사과는 제쳐놓고 ‘정치 개혁을 확실히 하겠다. 검찰은 모든 것을 명백히 밝혀내기 바란다.’라며 강공 드라이브를 예고했다. 부패한 온상의 책임자가 진심 어린 사죄도 없이 외치는 ‘강력한 정치 개혁’을 어느 누가 믿을 수 있겠는가? 국민들은 대통령의 말에서 오히려 최고 권력자가 이 사태를 모면하기 위해 ‘물타기 수사’ 등 또 다른 꼼수를 부리는 것 아닌가 의심하고 있다.

흔히들 얘기하는 박근혜 대통령의 ‘유체 이탈 화법’은 이래서 더 위험하다. 현대 국가의 지도자는 시민들 간의 ‘사회계약’에 의해 일정한 기간 위임된 권력을 행사하는 ‘계약자’에 불과하다. 그러나 박 대통령의 말과 행동을 보면 ‘나는 하늘로부터 흠결 없는 권력을 위임받았다.’고 생각하는 ‘왕권신수설’에 빠져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연이은 총리의 인사 참사, 퇴진, 실세 측근들의 부패 혐의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지명하고 지휘한 자신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단 말인가?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은 국민에 의해 일정 기간 제한된 권력을 위임받은 지도자’라는 사실을, 위임된 권력에는 ‘권한과 책임’이 반드시 함께한다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그리고 박 대통령이 이런 깨달음을 하루라도 빨리 갖도록 돕는 것, 바로 우리 언론의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