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에서 인생을 배웠다_MBC 서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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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도 기차도 아닌, 자동차로 1시간 30분을 달려 도착한 인천. 도시는 익숙했고, 45억 아시아인의 축제는 국내 대회같이 느껴졌다. 하지만 착각도 잠시. 개막과 동시에 인천은 45개국에서 온 2만여 명의 선수단과 취재진의 열기로 들썩였고, 매일 영화보다 극적인 삶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왔다. 16일간의 인천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그곳이 아닌 아시아 선수들의 꿈의 무대였다.

스타, 자신의 이름을 짊어진 사람
‘체조 요정’ 손연재 선수에게 아시안게임 금메달은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여겨졌다. 과연 선수 본인도 그렇게 느꼈을까. 플래시 세례 속에 시작한 첫 연습은 경직돼 보였고, 경기 당일 무대로 걸어 나오는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했다. 연기를 지켜보는 기자에게도 중압감이 그대로 느껴졌다. 모두가 숨죽이고 지켜보는 가운데 손연재는 혼신의 연기를 펼쳤고, 그렇게 4종목을 모두 끝낸 뒤 금메달을 확인하고 나서야 활짝 웃었다. 지독한 악플과 외로운 러시아 훈련, 잔인할 정도로 빡빡한 일정을 모두 이겨내고 따낸 금메달. 기대감과 부담감을 등에 업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한 스물한 살 동생이 존경스러웠다.
아시안게임, 올림픽, 세계선수권을 모두 제패한 ‘도마의 신’ 양학선 선수에게 2연패는 쉬워 보였다. 그러나 부상이 발목을 잡았고, 제대로 뛰어보지도 못한 채 리허설을 마무리했다. 결선 당일 연습장에 나타나지 않아 기권하는 것인가 하고 걱정했던 순간, 그가 웃는 얼굴로 나타났다. 아픈 허벅지를 부여잡고 경기를 치른 양학선은 자신의 기술을 맘껏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값진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런데 경기 전에는 웃었던 그가 은메달을 목에 걸고서는 웃지 못했다. 죄송하다는 말만 반복했다. 부상에도 끝까지 최선을 다한 것이 그렇게 죄송한 일일까. 자신의 진가를 증명해야 하는 ‘스타’라는 이름의 무게감을 헤아리기 어려웠다.

메달, 그 안에 담긴 수만 가지 이야기
우리 선수단 첫 금메달의 주인공은 우슈의 이하성 선수였다. 종목과 선수 이름 모두 귀에 익숙지 않았다. 알고 보니 어린 시절부터 예능에서 이름을 날린 신동. 첫 금메달리스트를 리포트 하는 기자들의 손길이 자료 검색으로 바빠졌다. SBS, KBS에 여러 차례 출연했지만 MBC에 출연한 적은 없는 것 같아 포기하려던 순간, <대단한 도전>이 있었다! 10년 전 자료를 찾아냈지만 안타깝게도 분량이 적어 리포트에 담을 수는 없었다. 고등부를 휩쓸다 성인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힘겹게 태극마크를 달았지만, 결국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된 이하성의 스토리는 전파를 타고 국민에게 알려졌다.
28년 만에 승마 종합마술 금메달을 따낸 송상욱 선수는 원래 장애물 대표였지만, 2006년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선배인 김형칠 선수가 낙마 사고로 숨진 뒤 선수층이 줄어들자 이 종목으로 전환했다. 국내에는 훈련장조차 없는 위험한 종목. 하지만 그는 돌아가신 선배에게 금메달을 안겨드리기 위해 8년을 인내했고, 마흔둘의 나이에 금메달을 바치며 결국 눈물을 내비쳤다. 79개의 금메달을 포함한 234개의 메달 중 사연이 없는 메달은 단 한 개도 없었다.

인천, 부끄럽고도 자랑스러운 도시
취재가 자정을 넘긴 어느 날 밤, 국제방송센터 앞에는 1백 명 넘는 외국 취재진이 버스 한 대를 에워싸고 있었다. 조직위는 수요와 상관없이 미디어촌과 인천 각 호텔에 버스를 1대씩 배치했는데, 미디어촌을 가는 버스는 부족하고 호텔행 버스는 텅텅 비어있자 화가 난 취재진들이 빈 버스를 막아선 것이다. 그곳에는 운영요원이나, 심지어 한국인이 한 명도 없었다. 나는 한국 기자라는 이유로 외국 취재진들에게 상황을 설명해야 했다. 결국 전화를 걸어 사태를 해결했지만, 준비 안 된 상태에서 대회를 유치한 조직위와 인천시가 부끄러웠다.
이에 비해 시민들은 놀랄 만큼 협조적이었다. 많은 도로를 통제하는 마라톤과 사이클 경기의 불편함을 감수했고, 차량 2부제를 지켜줬다. 차량 진입을 막은 미디어촌 앞에서 일반 차량은 찾기 어려웠고, 택시는 외국인과 타지인을 돈벌이 대상이 아닌 손님으로 대해줬다. 거대한 조직의 부족함을 잊게 하는 작은 시민들의 힘. 이번 대회를 통해 얻은 가장 큰 교훈이었다. 인천 아시안게임을 통해 나는 인생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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