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어디가?] “아름다운 얘기가~ 있어, 여수 밤바다~♪♬”

 76

영화 <어바웃 타임>의 한 장면을 보는 순간, 갑자기 가슴이 뛰었다. 방금 막 흘러가버린 ‘1초’조차 아까울 지경이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아버지가 아들과 마지막 ‘시간 여행’을 떠난 장면. 아버지는 죽기 전, 시간을 되돌려 소년 시절 아들과 바닷가에서 물수제비를 떴다.
아이들의 자는 모습을 물끄러미 내려다봤다. 하루하루가 다르게 크고 있었다. ‘여행을 가자’, ‘추억을 쌓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아빠, 어디가?’ 원고 청탁이 왔다.
운명 같은 여행은 그렇게 시작됐다. 여행지는 전남 여수. 1박 2일 일정이었다. 출발하는 날 아침, 아내와 7살, 3살 두 아들 녀석의 달뜬 목소리를 들으며 미안했다. 내근 부서에 발령받고도 열심히 놀아주지 못했다.

가족 여행, 이게 ‘행복’, 이게 ‘평화’!

자, 출발! 교통편은 비행기로 정했다. 형편상 해외는 엄두가 안 나니, ‘국내선이라도 타보자.’는 생각이었다. 특히 둘째 아들은 첫 비행기 탑승, 작은 선물이 되지 않을까.
큰아들은 창가에서, “아파트가 개미 같아요.”, “이제 코딱지만 해졌어요.” 연방 신이 났다. 세상이라는 게, 멀리서 또 높이서 보면 사실 별로 대단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몸으로 느꼈겠지. 여행 준비하느라 일찍 일어난 아내와 비행기를 처음 타보는 둘째 아들은 구름 위에서 단잠에 빠졌다. 비행기의 저주파 소음을 들으며 내 눈꺼풀도 내려앉는다. 이게, ‘평화’구나.
김포에서 출발한 지 50여 분이 지나 여수에 도착했다. 여수에서의 첫 ‘이벤트’, 먹은 것을 다 토해내는 큰아들 등 두드려주기였다. 불길한 첫발이다. 비행기 안에서 잠 안 자고 재잘거리더니, 녀석! 그래도 금방 힘을 낸다. 안색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아내는 아들 둘 데리고 장거리 여행은 아니라고 생각했단다. 왜 이제 와서? 여행의 ‘리더’가 된 입장에서 갑자기 우리 팀장에게 미안해지려 한다. 투덜대고, 말 안 듣는 기자들 데리고 일하느라 힘들었겠다.
숙박 장소는 여수 세계박람회장에서 멀지 않은 ‘엠블 호텔’로 예약했다. 무궁화가 무려 6개였는데, 장인어른이 선물해 주시지 않았다면 ‘언감생심’의 호텔이다. 우리가 예약한 15층 방문을 열었다. 와! 통유리에 여수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온다. 왼쪽으로는 오동도가 펼쳐져 있다. 아이들은 신 났다. 온 가족이 ‘SNS용’ 사진을 찍고, 침대에 누웠다. 옆으로 누워서 창밖을 보니, 푸른 하늘과 쪽빛 바다가 수평선 하나에 수렴된다.

77
“다음번엔 진정한 전라도 음식을”

갑자기 배가 등에 수렴되는 느낌, 아! 배고프다. 전라도 음식, 생각만 해도 군침 돈다. 여수에서 근무했던 동기에게 ‘맛집’을 물었다. 답이 없다. 바쁜가 보다. 급히 인터넷 검색을 해서 가장 인구에 회자되는 ○○회관으로 향했다. 1인분에 4만 원 하는 회 정식, 메뉴판은 선택의 여지를 봉쇄해 놓았다. 다시 나가기도 멋쩍고, 50가지의 음식이 나온다는 설명에 그냥 앉았다.
음식 맛은 그저 그랬고, 더욱이 회와 치킨, 소시지가 섞여 나오는 다소 ‘난해한’ 구성이 아쉬웠다. 어머니 밥상 같은 여수 음식은 어디서 먹을 수 있다는 말인가. 저녁을 먹기 위해 찾아갔던 곳도 다소 아쉬웠으니, 미식 여행은 실패했던 셈이다. 동기에게서 맛집 정보 문자가 온 건 저녁 식사 이후였으니, 오호통재라!

“다시 오지 않을 하루, 가족과 충실히 살리라”

여행 일정이 1박 2일로 짧다 보니,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했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장소는 오동도. 아내와 두 아들과 오동도까지 난, 긴 도로를 함께 걸었던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다. 마치 시골에서 개울가 징검다리를 건너듯, 양옆으로 펼쳐진 바다 풍경을 동무 삼아 천천히 걸으며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오동도에 들어가서는 작은 동산의 숲길을 온 가족이 손잡고 걸었고, 절벽 위에서 가족사진을 찍고, 음악에 따라 물줄기가 춤을 추는 음악 분수 앞에서 서로 어깨를 기댔다. 그 기쁨, 행복, 깊었다. 흡사 두바이의 호텔 수족관을 연상시키는 ‘아쿠아리움 플래닛’에 가서는, 내년이면 마흔이 되는 나도 두 아들과 함께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번 여행 중 가장 아쉬웠던 것은, 여수 해양 레일바이크를 못 타본 것. 오후 6시가 거의 다 돼 도착하니, 영업이 끝났단다. 서울로 돌아오는 날 아침 일찍 타볼까도 생각했으나, 비행기 놓칠 것을 각오해야 하는 선택이라 포기했다.
1박 2일이라는 시간은 쏜살같이 지나가고, 어느덧 다시 서울이다. 여행을 다녀온 뒤, 큰아들과 작은아들은 감기에 걸렸다. 기침하고 코가 막혀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아내도 연일 잠을 설쳐 심기불편이다. 나는 매일 6분짜리 코너 출연 때문에 날마다 밤 11시 퇴근이다.
그래도, 추억이 쌓였고, 다시 떠날 힘을 얻었다. 그리고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을 하루하루를 가족과 더 충실히 보내야겠다고 결심한 것, 이번 여행이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