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란 이름] 실력과 인격, 모두를 갖춘 선배가 되고 싶다


실력과 인격, 모두를 갖춘 선배가 되고 싶다


거울과 채찍같은 후배들나의 행동으로 그들을 바로잡을 수 있길


 


MBC 박민주 기자


 




 


MBC에 입사해 방송기자 생활을 한 지도 만 8년이 지나 9년째에 접어들었다. 8년 넘게 일했지만 그럼에도 나에겐 소위 말하는 대표작이라 할 만한 것이 없다. 남들이 알아줄만한 특종도 해보지 못했고, 당연히 수상실적도 없으며 나 스스로도 내가 기자생활을 하는 동안 이런 대표작을 만들었다고 당당히 내세울만한 취재도 없었다. 기자로서 스스로 능력 없는 기자라고 털어놓는 셈이다.


 


초년병 시절, 모든 기자들이 그렇듯이 악착같이 뛰었다. 그 악착같이 뛰었던 단기적인 목표는 지금 생각해보면 나도 좀 해보자’, 즉 나도 다른 동기들처럼 큰 특종도 하고 제작도 잘해서 조직 내에서 나를 각인시켜보자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생존전략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렇다고 당시의 그런 태도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기자라면 초년병이든, 고참이든 가리지 않고 항상 치열하고 악착같이 뛰어야 하는게 기본이니까. 어쨌든 그렇게 열심히 뛰었지만 난 다른 동기들처럼 인정받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 스트레스는 정말 컸고, 그땐 내가 과연 기자로서의 능력이 있긴 한 건가?” 라는 근본적인 의문에 한동안 고뇌하기도 했다. 단순히 남들보다 좀 더 일찍, 한발 더 빨리, 좀 더 부지런히 뛰는 데에는 자신이 있었다.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도 나 자신의 큰 무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엄청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별로 달라지는 건 없었다. 그러다 입사 후 3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는 스스로를 현실에 적응시키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끊임없이 공격적으로 취재해서 새로운 이슈와 특종을 발굴해내는 기자가 아니라, 위에서 시키는 아이템을 최대한 성의껏 열심히 만들어서 납품하는데 만족하는, 일종의 안정적인 수비수형 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물론 안정적인 수비수도 상당히 중요하고 안정적인 수비를 하는 것도 꽤 어려운 일이니 내가 그 정도 경지에라도 과연 이르렀는지를 내 스스로 평가한다는 건 우스운 일이긴 하다. 확실한 건 나는 안정적인 수비수가 되기 위해 그냥 적당히 노력하고 있는 기자 같았다. 나의 판단에는 그랬다. 한 해 한 해 시간이 흐르고 후배들이 생기기 시작하자 후배들을 통해 나 자신의 부끄러운 자화상을 너무도 명확하게 목도할 수 있었다. 단 하나의 팩트라도 더 챙기기 위해 취재원에게 막말에 가까운 욕을 먹거나 잡상인 취급을 당하면서도 끈질기게 물고 늘어지는 후배들의 모습을 보면서 나 자신의 초년병 시절이 떠올랐다. 막연하게 잠 안자고 부지런히 뛰기만 할 뿐 나 스스로 인간적인 모멸을 당할까봐, 나 스스로 싫은 소리를 듣기 싫어서, 상대방의 기분을 상하게 하기 싫어서, 스스로를 예의 바른 기자라고 자위하며, 핵심을 벗어나 단순히 육체적 근면만을 내세우며 소극적인 정신자세를 고치지 못했던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웠다. 과연 내가 저 훌륭한 후배들에게 선배대접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시도 때도 없이 반문해보곤 했다. 그렇게 후배들은 나 자신을 다질 수 있는 가장 무서운 채찍이 됐다.


 


입사 2년 정도가 흐른 뒤, 당시에도 턱없이 어린 막내 급 기자임에도 불구하고 그 수많은 훌륭한 MBC의 선배들을 감히 마음속으로 평가해서 등급을 매기는 건방지기 짝이 없는 태도도 생겼다. 저 선배는 정말 일 잘하고 취재 잘하는 기자, 저 선배는 특종의 달인, 저 선배는 그냥 무난하게 일하는 수비수, 모 선배는 일은 잘하지만 성격은 고약한 기자, 또 모 선배는 일도 별로고 성격까지 고약한 정말 닮지 말아야 할 기자 등그러나 선배들에 대한 나의 성급하고도 건방진 판단은 나에게 후배들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처참하게 깨지고 말았다. 기자생활은 연차가 쌓이고 후배들이 늘어날 수록 기하급수적으로 어려워졌다. 막내급 후배일 때는 열정과 투지만으로도 버틸 수 있었지만 연차와 경험이라는 것이 늘어날수록 그것들을 뛰어넘는 끊임없는 자기계발과 실체적인 결실을 요구했다. 내가 어린 연차 때 선배들을 성급하게 평가했던 태도가 얼마나 어리석었는지지금의 나의 모습은 여지없이 초년병 시절에 내가 별로라고 평가했던 그런 선배의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에게 연차가 쌓이고 고참급 선배가 된다는 건 가장 무서운 일이다. 그만큼 책임이 늘어나고 열정에 찬 매서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후배들이 도처에 깔린다는 얘기다. 나는 이런 선배가 되고 싶다. 내가 직접 말로써 후배의 잘못을 가르쳐주고, 후배의 잘못된 행동을 탓하지 않아도 그 후배가 평소 나의 행동을 보고서 스스로 잘못을 깨닫고 스스로 자신을 되돌아보게 할 수 있는 그런 선배가 되고 싶다. 이건 단순히 인격적인 도야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 업무에서의 성과로도 보여줘야 한다. 기자에게 실력과 인격은 어느 하나를 더 중시하거나 더 소홀히 할 수 없는, 반드시 평형 상태를 유지한 채로 갖추어야 하는 영원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