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실험: TV 밖으로 나간 TV 저널리즘_SBS 이정애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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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8월 ‘니먼 펠로우’(Nieman Fellow)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미국 하버드 대학교에 모인 24명의 기자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저널리즘의 변화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경제 위기로, 또 기술의 진보로 기존의 미디어가 심각한 도전을 받는 상황에서, 또 하버드 비즈니스 스쿨이나 케네디 스쿨도 저널리즘의 미래에 대해서만큼은 속 시원한 해답을 해주지 않는 상황에서, 펠로우들은 제각기 나름의 시각으로 새로운 저널리즘의 향방을 찾아 나서기 시작했다. 2012~2013 니먼 펠로우 가운데 유일한 TV 기자였던 나의 관심은 당연히 방송 저널리즘의 미래였다.

 

‘멍석만 깔아줬을 뿐…’, 쌍방향 다큐멘터리의 힘
하버드가 위치한 캠브리지에서 저널리즘을 놓고 가장 많은 실험을 하고 있는 곳은 옆 학교인 MIT 미디어랩이다. ‘니먼 펠로우’는 하버드뿐 아니라 MIT의 모든 수업도 들을 기회를 얻기 때문에 나는 MIT 미디어랩도 자유로이 오갈 수 있었다. 그러다 MIT 미디어랩에서 우연히 접한 것이 아랍계 미국인인 지가 메타(Jigar Mehta)라는 전 뉴욕타임스 비디오 저널리스트와 야스민 엘라야(Yasmin Elayat)라는 이집트 언론인이 함께 기획한 크라우드 소스 다큐멘터리(A Crowd Sourced Documentary), ‘이집트에서의 18일’이다.

연단에 선 지가 메타는 스탠퍼드 대학에서 존 나이트 펠로우로 1년 연수를 받던 중 이집트 혁명 소식을 소셜 미디어로 접했다고 했다. 그래서 미국 방송을 틀어봤지만 당시 어디서도 이집트의 상황을 다뤄주는 곳은 없었고, 유튜브에서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의 연설 장면과 시민들의 시위 모습을 생중계로 스트리밍 해주고 있어 봤더니 눈에 띈 것이 시위하러 온 사람들이 모두 모바일이나 태블릿 PC를 들고 그 현장을 직접 찍고 있더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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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에서의 18일’ 바로가기
(http://beta.18daysinegypt.com)

 거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지가 메타는 이집트 혁명 18일간의 이야기를 시민들이 직접 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줘야겠다는 생각으로 시민들이 찍은 영상과 자신이 보고 느낀 소감을 녹음해 영상으로 올릴 수 있는 사이트를 만들었다(http://beta.18daysinegypt.com). 서버 등 사이트를 유지하기 위한 자금은 크라우드 펀딩 방식인 킥 스타터(Kick starter)를 통해 모금했다. 30년 독재 속에서 왜곡된 역사를 주로 접해야만 했던 이집트 시민들에게 이 사이트는 감동 그 자체였다. 이집트 시민들이 열광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기자의 내레이션은 전혀 없이 시민들의 증언만으로 이어지는 이 사이트의 영상을 모아 1시간으로 만든 다큐멘터리 트레일러를 보면, “이제 우리의 역사를 우리가 전한다.” 라는 시민들의 남다른 결의가 온몸으로 느껴진다.

지가 메타는 언론인으로서 자신의 역할은 올려진 영상이 진실인지, 정말로 그 사람이 찍은 것이 맞는지 등 사실을 확인하고 검증하는 작업이었다고 했다. 아직은 언제까지 이 작업을 계속해야 할지, 또 사이트를 의미 있게 지속적으로 관리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숙제도 많지만 새로운 실험을 통해 기존의 미디어에서는 다 다루지 못하는 역사의 현장 속에 있던 개개인의 시각과 감흥까지 다양하게 직접 전할 수 있다는 게 가장 기쁘다고 지가 메타는 전했다. 

 

‘걷기만 해도 얘기되는…’, 느린 저널리즘의 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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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을 떠나’ 바로가기
(http://www.outofedenwalk.com)

하버드에서 접한 가장 거대한 규모의 저널리즘 실험은 ‘에덴을 떠나’(Out of Eden)라는 이름으로 계획되고 있던, 2012년 단기 니먼 방문 펠로우이자 퓰리처상 두 번 수상에 빛나는 미국 언론인 폴 살로펙(Paul Salopek)의 프로젝트였다(http://www.outofedenwalk.com). 폴은 2013년 1월부터 7년 동안 에티오피아에서 남미 끝까지 1시간에 3마일의 속도로 하루의 20마일씩, 인류가 걸어온 길을 7년에 걸쳐 다시 걷는 여정을 기획했다. 과거 특파원으로 아프리카나 발칸 반도 등의 갈등 상황을 많이 다뤄왔지만, 대개는 갑자기 날아들어가 상황만 취재하고 빠져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번에는 일반 사람들이 살아가는 속도에 맞춰 걸으면서 그 사람들이 사는 모습도 보고, 영상도 찍고, 인터뷰도 하고, 소셜 미디어로 대화도 나누며 이전에는 보지 못하고 지나친 빈곤, 기후변화, 갈등의 근본적인 원인, 이주민들의 문제들을 천천히 다뤄 보겠다는 것이다. 폴은 그래서 자신의 시도를 느린 저널리즘(Slow Journalism)이라고 표현했다. 2012년 12월, 하버드에서 만났던 폴은 정말 2013년 1월 대장정을 시작해 2013년 12월 현재 요르단까지 걸어간 상태다. 하버드 문화인류학과와 교육학과, MIT 미디어랩, 내셔널 지오그래픽 등 많은 기관과 사람들의 지원을 받고 있는 폴은 자신의 프로젝트 사이트에 직접 찍은 영상과 사진, 인터뷰를 지속적으로 올리고 있고 사람들과 소셜 미디어를 통해 대화도 나누며 걷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이전에는 몰랐던 생각지 못한 성과까지 얻고 있다고 폴은 전했다.

그것은 처음에 아프리카를 지나갈 때는 아프리카 사람들이 주로 관심을 가져주고 대화를 걸어줬는데 아프리카에서 중동으로 넘어가니 이제는 아프리카 사람들과 폴의 여정에 관심 있는 중동 사람들이 오버랩 되면서 이전에는 관심도 없고 접할 기회도 없었던 다른 문명, 다른 지역 간의 사람들이 서로 관심을 갖고 연결되기 시작하더라는 것이다. 폴은 서로 다른 사람들 간의 이해를 높여주는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대장정이라는 이름으로 몸소 실천하고 있었다.

 

‘경찰기자, 어디까지 해봤니?’,
기록과 기억, 추적의 공간
하버드 니먼 펠로우 동기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저널리즘 실험을 하고 있는 친구는 워싱턴 D.C.의 살인사건을 다루는 ‘호미사이드 워치 D.C.’ (http://homicidewatch.org) 라는 사이트를 만든 로라(Laura)와 크리스 아미코(Chris Amico부부다. 워싱턴 D.C.의 경찰기자 출신인 로라는 D.C.가 미국의 수도라 정치나 국제 정세 관련 기사에만 관심이 많고 정작 사건기사는 크게 다뤄주지 않자, 미국 공영 라디오 방송 NPR의 IT 전문기자였던 남편 크리스와 같이 워싱턴 D.C.의 모든 살인사건을 취재해 보도할 수 있는 사이트를 직접 만들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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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미사이드 워치 D.C.’ 바로가기
(http://homicidewatch.org)

‘모든 죽음을 기록하고 모든 피해자를 기억하며 모든 사건을 추적하겠다.’는 모토로 시작된 이 사이트는 워싱턴 D.C.에서 일어나는 모든 살인사건을 취재할 뿐 아니라 모든 사건의 용의자가 최종 법정에서 어떤 구형을 받는 지까지 보도하고, 사건이 발생한 지역, 법정 공판일, 담당 형사의 연락처까지 기록해 누구든 제보를 할 수 있게 자료를 공개하고 있다. 또한 각각의 사건에 개별 페이지를 만들어 관련 기사도 링크해주고 피해자의 가족이나 친구들이 피해자에 대해 글을 남길 수 있는 커뮤니티 사이트까지 만들어놨다. 그런데 사건 발생 즈음뿐 아니라 피해자의 생일이나 크리스마스처럼 특별한 날에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다시 사이트로 찾아와 글을 남기면서 이 커뮤니티 사이트가 이제는 피해자 주변 사람들의 치유 공간으로까지 역할을 하고 있다.

이 사이트도 초기에는 크라우드 펀딩인 킥 스타터의 도움을 받았으나, 이제는 포맷의 저작권이 인정돼 얼마 전에는 시카고의 한 언론사에 ‘호미사이드 워치 시카고’를 발족해주고 컨설팅까지 해주고 있다.

 

‘이러면 볼텐데…’, TV 저널리즘의 벽 깨기
35 모바일TV 저널리즘의 미래와 관련해 수업을 통해 지속적인 실험을 하고 있는 곳은 MIT 미디어랩의 ‘소셜 TV’ 수업이다.‘당신이라면 TV가 어떻게 바뀌면 보겠는가?’라는 질문을 놓고 TV가 어떻게 더 인터렉티브하게 바뀌면 보겠는가에 대해 매주 새로운 기획안을 내야 하는 팀 프로젝트 수업이다. 흥미로운 것은 팀을 짤 때 기술 전공 학생, 비즈니스 전공 학생, 인문·사회과학 전공 학생을 골고루 섞고 매주 팀을 바꿔 새로운 팀과 아이디어를 짜게 한다. 그만큼 다양한 배경의 다양한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새로운 발상을 만들어내게 하기 위함이다. 그러다 기말고사 때가 되면 본격적으로 한 아이템을 잡아 팀을 꾸리고 프로토 타입까지 만들어 발표해야 하는데, 최종에서 뽑히면 MIT 나이트 재단에서 기금을 지원받아 실제 그 프로젝트를 실현해볼 수 있는 기회를 얻는다.

주로 방송과 연계된 앱에 대한 아이디어들이 많이 나왔는데, 2012년 2학기 소셜 TV 수업에서 1등으로 뽑힌 아이디어는 하버드 케네스 스쿨에 다니던 캐나다 CBC 방송기자 출신 제니퍼 홀렛(Jennifer Hollett)과 MIT 비즈니스 스쿨에 다니던 댄 세이걸(Dan Siegel)이 같이 만든 ‘수퍼팩 앱’이었다. 미국 대선을 앞두고 후원자들이 거대한 기금을 들여 특정 후보를 지지하는 광고를 엄청나게 만들기 시작하자 제니퍼와 댄은 광고가 나올 때 TV 앞에 스마트폰을 가져다 대면 수퍼팩 앱이 그 광고의 음성을 인식해 어떤 단체가 만든 광고인지, 후원자는 누구인지, 돈은 얼마를 후원했으며 이 단체가 주장하는 혹은 지지하는 정책은 무엇인지를 바로 알 수 있게 했다. 보다 투명한 사회를 지향하는 앱인데, 미국 대선을 앞두고 이 앱이 한때 아이튠스 시장에서 앱 다운로드 순위 1위를 기록하는 등 엄청난 반향을 일으켰다.

저널리즘의 대체제는? 결국 저널리즘뿐
36 니먼펠로우지난 2월 니먼 재단을 방문한 MIT 미디어랩의 조이 이토 소장은 과거 블로그가 만개하던 시절에는 블로그가 전통미디어를 대체할 수도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며, 기자들이 취재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위험을 감수하면서 하는 희생에 대해 알게 되면서 이제는 그 무엇도 저널리즘을 쉽게 대체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은 뉴욕타임스의 이사회 멤버로 뉴욕타임스와 MIT 미디어랩이 지속적인 실험을 통해 미디어를 살릴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하버드나 MIT 주변에서 지난 1년간 본 많은 실험 중에 지금의 위기에 처한 저널리즘을 살려낼, 시류를 바꿔놓을 만한 결정적인 성과는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하지만 많은 실험들이 방송이라는 ‘영상 콘텐츠’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고, 태어날 때부터 디지털을 접한 디지털 세대들은 이전 세대보다 영상을 더 친숙하게 느낀다는 점에서 ‘영상이 중심이 된 실험’들은 끊임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그러다 보면 여러가지 다양하게 변형된 저널리즘의 모습 속에 이전의 전통 미디어들이 추구하던 가치를 잇는, 가슴이 뛰게 하는 새로운 저널리즘의 모습도 나타날 수 있지 않을까 예상해본다. 그리고 또 하나, 지난 1년간 미국에서 연수하면서 느낀 것은 한국의 방송 수준이 이제는 어느 나라에도 뒤처지지 않는다는 자부심이다. 그래서 이제는 방송 저널리즘을 둘러싼 여러 실험이 한국에서도 조금은 더 도전적으로 일어나 보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