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파울루 말진 기자의 월드컵 외곽 취재기_SBS 강청완 기자

48-1 현장에서-월드컵

 

 이름만 들어도 가슴 설레는 세계 최고의 스포츠 축제, 브라질 월드컵을 현장에서 취재하는 영광을 안았다. 삼바의 열기 속에 호날두가 눈앞에서 거친 숨을 몰아쉬고, 메시의 헛다리가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들릴 것 같은 생생한 현장! 얼핏 상상하면 AD 카드를 목에 건 채 스타디움을 누비며 네이마르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수만 관중의 환호를 들으며 기사를 쓸 것 같지만, 입사 3년 차인 내게 주어진 역할은 ‘상파울루 말진’. 주로 경기장 안보다 바깥을, 훈련장보다 길거리를 누비는 ‘외곽 취재’의 임무가 암묵적으로 주어졌다. 하지만 원래 ‘월드컵’이란 무대는 피치pitch 바깥에서도 수천수만 가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60억 인구의 축제가 아니던가. 하루에 수백 건도 넘게 쏟아지는 축구 기사보다 소소하더라도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낀 생생한 월드컵 뒷이야기를 전해본다.

포켓몬보다 네이마르

나의 ‘브라질발 1호’ 취재 아이템은 브라질 사람들의 독특한 축구 열기를 주제로 맨땅에 헤딩하듯 찾은 브라질의 ‘축구 딱지’, 피구리냐Figurinha가 됐다. 90년대 어린 시절을 보냈다면 동네 문방구 앞에서 팔던 NBA 카드나 프로야구 카드를 기억하실 것이다. (요즘은 포켓몬이나 유희왕으로 명맥을 이어오는) 그 월드컵 버전이 바로 브라질의 축구 딱지다. 다른 게 있다면 마이클 조던이나 이종범 대신 네이마르 같은 축구 선수가 나온다는 점, 그리고 다 큰 어른들이 열심히 카드를 모은다는 점이다. 시내 중심가 광장 여기저기서 머리가 허옇게 센 할머니와 정장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중년 남성 등 수십 명이 모여 손바닥만 한 딱지를 서로 교환하고 사고팔기도 하는 모습은 웃기기도 하지만, 브라질 아니면 보기 힘든 진풍경이다. 식당 점원인 33살의 흑인 남성 알레샨드레는 “우리는 축구를 좋아하기 때문에 축구에 대한 모든 것을 모으고 싶은 것”이라고 말했다. 구자철과 기성용 카드를 신나게 흔들어대는 아들과 아버지 2대에게는 존경의 엄지손가락을 들어줬다.
이들의 축구 사랑은 박물관이라는 ‘성지화’된 공간으로 이어진다. 2008년 문을 연 상파울루 국립 축구 박물관은 브라질의 대표 관광 명소가 됐다. 그냥 축구 콘텐츠를 죽 늘어놓은 게 아니라 브라질 역사와 축구사를 함께 전시해놓은 것은 물론, 월드컵이 열린 그 해 세계사의 중요한 순간을 월드컵 명장면과 엮어놓은 전시관도 있다. 이곳에 다다르면 역사와 축구를 동일시하는 축구 사랑에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축구의 나라’라는 이름은 축구 실력에서만 온 게 아니라 이들의 문화와 정신까지 포괄하고 있었다.

32년 전통의 한인 조기축구 리그

상파울루 하면 5만 인구의 한국 교민 사회를 빼놓을 수 없다. 누가 브라질 아니랄까 봐, 교민 사회에는 무려 32년 전통을 지닌 교민 주말 축구리그가 존재한다. 6개 팀이 매주 경기를 하는데 팀마다 나름 홈구장을 갖고 홈-어웨이 경기를 치르는 위용을 과시한다. 교회 목사님의 드리블과 태권도 사범님의 헛다리, 한국슈퍼 사장님의 대포알 슈팅이 이어지는 그라운드는 그 자체로 한국 교민들의 ‘화합의 장’이다. 안타깝게도 수준은 한국 조기축구를 크게 넘어서지 못한다. 취재를 나간 그 날도 ‘사단’이 벌어졌다. 피 튀기는 혈투 끝에 급기야 ‘너 몇 살이야!’가 나오는 어디서 많이 보던 갈등 상황이 연출됐지만, 경기 뒤 벌어진 감자탕 뒤풀이에 모두들 하나가 됐다. 먼 이국땅에서 살아가는 교민들에게, 안마당에서 벌어지는 월드컵은 감격스러운 축제다. 다음날, 조기축구 회원들은 러시아전을 치르는 우리 대표팀을 응원하기 위해 24시간 걸리는 쿠이아바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남은 교민들과 함께, 나는 이역만리 상파울루에서 거리응원을 하며 1차전을 지켜봤다. 이근호의 골이 터지는 그 순간, 상파울루 유 씨 아저씨와 부둥켜안고 방방 뛰던 그 순간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상파울루에서 SBS 강청완입니다.”

그렇다고 외곽만 돌아다닌 건 아니다. 역사적인 개막 당일에는 브라질과 크로아티아 개막전 상보를 현장에서 리포트 하는 영광을 안았다. 48-2 기자제니퍼 로페즈의 축하 공연과 네이마르의 중거리 슛을 앞에서 지켜본 건 평생 잊지 못할 경험이었다.
브라질 월드컵은 무언가가 다르다. 월드컵만으로도 모자라 브라질이라니, 지금 내가 느끼는 현장의 분위기는 마치 월드컵은 처음부터 브라질 것이었다는 느낌이다. 앞에 남아공, 카타르가 붙는 것과는 아우라부터가 다르다. 그 월드컵 현장 한가운데, 마음껏 취재하고 마음껏 느낄 수 있다는 건, 기자로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