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있네!_SBS 김종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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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MBC 박주린 기자

일 시| 2013년 4월 18일

장 소| 목동 SBS 사옥 앞

 

험한 사건 사고 현장에 가면 약속이나 한 듯 만나게 되는 타사 기자가 있었다. 현장을 배경으로 똑같이 백 스텝을 밟으며 “제 뒤로 보이는 곳이…” 류의 멘트를 하는데, 유독 그만 자연스러워 보여 머쓱해지곤 했다. ‘방송 참 잘한다.’ SBS 김종원 기자에 대한 첫인상은 그랬다. 혼자만의 생각은 아니었는지, SBS 8시 뉴스에는 이내 그의 이름을 내건 현장 고발 코너가 생겨났다. <김종원의 생생 리포트>. 학교 폭력부터 역사 왜곡까지, 그가 고민하는 주제의 폭은 넓었고 그때마다 생생한 현장이 녹아 있었다. 현장이 ‘살아있는’ 그의 리포트는 같은 기자들도 깜짝깜짝 놀라게 하는 힘이 있었다. 취재 중 잠시 짬을 낸 그를 만났다.

 

“현장 보기 전엔 기사 잘 못 써요”

 

<생생 리포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된 건가요?

지난해 올림픽 출장을 다녀오니 메일이 와 있더라고요. “김종원 기자 이름 걸고 코너를 하는데 현장성을 살린 코너를 준비한다.”는 것이었어요. 편집부 주문은 첫째가 ‘재미’, 둘째가 ‘공감’이었죠. 저는 공감이 되려면 시청자들이 오감으로 느낄 수 있는 ‘현장’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학교 폭력이 주제라면 폭력이 이뤄지는 현장, 아기가 버려지고 있다면 버려지는 현장, 이런 식이죠.

 

뉴스에서 이름 내걸고 하는 현장성 코너는 이례적인데, 부담스럽진 않았나요?

겁이 많이 났어요.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가는데 괜히 나댄다는 소리 듣고 바보 되는 거 아닌가, 숨을 데가 없이 뛰어다녀야겠구나…’고 생각했어요. 코너를 맡으면서 책임감이 더 커졌죠. 예전엔 그냥 넘겼던 작은 실수도 이젠 ‘사표내야 하나.’ 생각이 들 정도로요.

아이템 선정이 엄청난 부담이에요. 1주일에 한 번 꼴로 방송이 돌아오는데 하나 끝나면 곧바로 다음 아이템을 준비해야 하니까. 겨우 아이템 잡아서 하루 이틀 만에 후다닥 취재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원래 긍정적인데 하루 종일 손발이 차갑고 걱정이 돼서 밥이 안 넘어가는 경우도 많아요.(웃음)

 

기자가 직접 해 본다든가 실험을 한다든가… 접근방식이 좀 다른 것 같더군요.

저는 현장을 보기 전에는 기사를 잘 못 써요. 현장을 보면서 기사 구성을 하죠. ‘구성원 안에 들어가 봐야겠다, 혹은 실험을 해 보기 전엔 모르겠다, 2박 3일 정도 머물러 봐야겠다…’ 이런 생각들 하면서요. 사실 요즘엔 뉴스에서 다뤄진 사안의 뒷얘기나 그 후의 이야기들을 주제로 잡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시청자들이 무엇을 궁금해 하고, 무엇을 보고 싶어 할까?’를 제일 고민해요. 작가에게도 “시청자 입장에서 얘기해 달라.”고 당부하고요. 동료 기자들보다는 주변 사람들에게 어떻게 접근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편이에요. 어떤 아이템은 뉴스 제공자와 수용자의 입장에서 궁금해 하는 게 완전히 다르더라고요.

 

“인사할 때부터 카메라 켜놓죠”

 

현장성을 살리는 원칙이나 노하우 같은 게 있을까요?

현장에서는 ‘나는 기자-상대는 취재원’ 이란 도식적인 관계를 깨려고 노력해요. 사람들은 마이크를 들이대면 정제된 말을 해요. 하지만 인터뷰 하는 것을 모를 때는 온갖 솔직한 감정들을 표현하거든요. 그래서 아예 카메라를 켜 놓고 만나서 인사해요. 제보자들도 자리 잡고 앉아서 얘기하는 것보다 자리 잡기 전까지 편한 상태에서 제보 경위와 감정 등을 잘 말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취재 과정에서도 ‘공감’이 이뤄져야 화면에서도 그렇게 보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죠.

 

현장성을 강조하다보면 기자가 너무 나선다… 혹은 쇼맨십처럼 비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너무 오버하는 것 아니냐는 얘길 들은 적도 있어요. 내가 돋보이려 한 게 아닌데 결과적으로 “왜 이렇게 기자 얼굴이 많이 나오냐, 네가 주인공이냐?”라는 얘길 들으면 ‘정말 그랬나?’ 하는 생각에 창피하죠. 그래서 취재하면서 늘 ‘자제하자.’는 생각을 해요. ‘내가 주인공이 되면 안 된다.’고 자기 암시를 하면서요.

 

매번 현장을 포착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학기 초 학교 폭력’이란 아이템을 선정했는데 통계 자료 하나만 있을 뿐, 나머지 현장 그림을 잡아야 했어요. 경기도의 학교까지 세 팀을 풀어 돌아다녔죠. 이틀 만에 가까스로 현장을 잡았어요. 가출 청소년 취재할 때는 아이들이 자꾸 말을 뒤집고 약속을 바꿔서 아예 형사 잠복하는 것처럼 밤을 꼬박 새기도 했고요. 카메라 기자들에게도 미안한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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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에 남는 아이템이 있나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북한이 주도한 폭동’이라는 유언비어가 퍼지고 있는 실태를 고발한 아이템이었어요. 댓글이 1만 5천 개 달렸어요. 신상 털기부터 시작해 SNS와 메일을 엄청 받았죠. “빨갱이냐, 고향이 광주냐.”는 말은 물론이고요. 회사에서는 “굳이 논란의 중심에 설 필요가 있느냐.”며 안 좋은 소리를 들었죠.

많이 놀랐어요. ‘아직도 이런 얘기를 하면 신상이 공개되고 사이버 테러를 당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 그리고 이른바 ‘의식 있는’ 교수님들도 인터뷰를 거부하는 것을 보고 ‘당연한 진실이 부담스러운 것이 되어버렸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죠. 오기가 생기더라고요. 오히려 이런 아이템을 피해가지는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공감’이 단순히 시청자들이 ‘맞아, 맞아.’ 하는 거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문제를 제기하고 그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하게 해 보는 것도 넓은 의미의 ‘공감’ 아닐까요.

 

“연차 찼다고 데스크에 앉기는 싫어요”

 

올해 6년차. 김종원 기자는 입사 첫 해를 빼면 5년째 내리 사회부다. 정작 자신은 사회부를 지망해 본 적이 없다고 하지만, 지금은 사회부를 떠나기가 ‘두려울’ 정도란다.

 

사회부 기자들도 연차가 조금 되면 편하게 접근하게 되잖아요? ‘생생 리포트’는 어땠나요?

사실 사회부에 내리 있으면서 손바닥 안인 것 같았어요. 보도자료 나오면 ‘둘둘 말아서’ 하면 그만이고 현장을 안 나가봐도 기사를 쓸 수 있는 정도였어요. 불이 나면 다급한 목소리로 일종의 ‘쇼’를 해 주면 된다는 생각도 했고요. 그런데 이 코너 맡으면서 남이 준비해 주는 것 없이 새로운 현장을 내가 찾아야 하니까 엄청난 긴장감이 생기더라고요. ‘내가 너무 안에만 있었구나, 자만하고 나태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있는 그대로의’ 현장에 다시 돌아간 셈이군요?

네. 긴장은 더하지만 살아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기자로서 이름을 걸고 하고 싶은 아이템을 발제할 수 있다는 것은 큰 매력인 것 같아요. 출입처를 떠나 불합리한 것들을 자유롭게 지적할 수 있는 게 큰 장점인 것 같고요. 뛰고, 찾고, 보여주고… 힘들지만 사회부니까 또 그런 것을 할 수 있지 않겠어요? 현장에 있으면 마음이 바빠져요. ‘이런 목소리를 시청자에게 들려줘야 하는데, 찍어서 보여줘야 하는데.’ 이런 생각에 재촉하게 돼요. 보여주고 싶은 욕심, 공감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거죠.

 

마지막으로, 생생 리포트를 만드는 ‘김종원 기자’의 목표가 있을까요?

시청자들이 제 진심을 알아볼 수 있도록 하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저 기자라면 믿을 수 있다.’라는 인식이요. ‘김종원 기자가 리포트 했으니 믿을 만하다.’는 말을 듣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선 더 정확하고 깔끔한 뉴스를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순간순간 욕심으로 침소봉대하거나 일반화의 오류를 범하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연차가 찼다고 그냥 데스크에 앉기는 싫어요.(웃음) 전문기자가 됐든 뭐가 됐든 현장에 오래 있는 기자가 되고 싶어요. 약자들의 얘기를 담되, 보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아이템을 하는 것, 이것이 ‘생생 리포트’의 작은 목표입니다.

 

인터뷰 중에도 취재원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느라 그는 전화기를 놓지 못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현장에서 그가 자연스러워 보였던 것은 단순히 그가 방송을 잘해서가 아니었을 수도 있겠구나… 한 번의 백 스텝에도 공감을 고민하는 치열함, 그리고 현장의 힘을 믿는 사회부 기자의 근성에 현장도 자연스럽게 화답한 것 아니었을까’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