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산에서 힐링하기


 


산에서 힐링하기


 


SBS뉴스텍 정성화 기자


 



 


 



힐링이 뭐냐?”


격이 없는 후배에게 던지는 질문입니다.


 


글쎄요. 몸과 마음의 치유라고 하는데 잘은 모르겠어요. 기술문명이 발달하면서 점점 휴머니즘이 사라지고 거기에 따른 사회적 변화를 겪으면서 삶의 혼란에서 오는 정신적인 상처 등을 치유하는 게 아닐까요?”


요즘 우리사회에 유행이 된 힐링(Healing) 열풍은 최근 새롭게 나온 개념이 아닙니다. 옛날에 유행한 단어 엔도르핀, 웰빙, 신바람 등이 따지고 보면 같은 이야기죠. 단어만 바뀌어 새롭게 시장에 유통된 셈인데 돈벌이의 계산이 숨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고전에서 보면 2500년 전 소크라테스 시대까지 소급해야 하고 이후 종교, 철학, 예술에서 수많이 강조된 흘러간 유행가 같은 겁니다. 견유학파, 스토어 사상, 노자, 공자 등이 정신적인 인간의 삶을 강조했으니 이때부터 힐링의 중요성이 지금까지 거듭 강조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죠.



그럼 왜 또다시 힐링이고 그것이 왜 필요한가? 그리고 지금 시대에 치유란 무엇인가?


저의 해석으로는 이런 것들은 현실의 개념이 아닙니다. 과거의 개념입니다. 현실의 희노애락은 즉각적으로 해소, 혹은 소통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찌꺼기들이 남게 되는데 그게 차곡차곡 쌓여서 자신의 무의식 부분에 저장되죠. 이것을 콤플렉스라고 하는데 자신의 내면의 화를 다스리자 하는 것이 지금의 힐링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후배의 해석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테크놀로지에 희생된 혹은 희생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도 지금의 힐링 열풍에 크게 동조했다고 봅니다.


 



가수 송창식이 말하는 70년대 힐링은 이렇습니다.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을 춰봐도 가슴엔 하나 가득 슬픔뿐이네. ~ 떠나자. 고래(희망) 잡으러~” 이 이야기는 비단 시대적인 정치상황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인간 내면이 가지고 있는 무의식의 스트레스는 현실에서 술 마시고 춤춘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니죠.


스스로를 위로하고 스스로의 상처를 보듬어 줘야 하는 것이죠. 그것이 지금의 힐링 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무의식에 저장된 내면의 화들은 대부분 상대적인 개념이지 태생적인 개념은 아닙니다. 너에게 비하면 나는 가난하고, 너에게 비하면 나는 못생기고, 너에게 비하면 진급도 못하고. 뭐 이런 것들인데 비교할 기준이나 상대가 없다면 고통, 불행이란 인식도 없다는 것이죠. 그러나 우리들은 생로병사 희로애락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합니다. 지난 상처나 충격들이 우리의 의식 속에서 사라졌다 하더라도 그것은 없어 진 것이 아니라 무의식 속에 존재하기 때문에 그 무의식 속의 나를 찾아 치유해 주자는 것이 힐링 입니다.


! 힐링하러 떠납시다. 내 몸을 위한 음식, 나를 편안하게 해주는 음악, 나를 위한 휴식부터 시작합시다.


 


주위를 둘러보면 힐링하기 최적의 장소가 산길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가까운 북한산만 하더라도 첩첩산중의 고독이 있고 계곡 물소리의 아우성이 있으며 산새들의 화음과 나무 사이를 비집고 돌아다니는 바람이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만날 수 있습니다.


숲의 고요함은 마음의 사색을 열어주고 인기척 없는 고독은 자신으로의 여행을 떠나기 좋습니다. 청량한 공기 한줌을 걸레 삼아 자신의 깊숙한 곳에 손을 넣어 상처를 닦아주고 기억이 가물가물한 지난날의 노여움을 찾아 화해합니다. 산은 앙상한 계절을 보여 줌으로서 자신의 초라한 종말을 가르쳐 주고 파릇한 새싹으로 회심의 겸손함을 이야기 합니다.


 


내가 산을 자주 가는 이유는 순전히 산 밑으로 이사를 갔기 때문입니다. 휴일 한 낮 집에서 뒹굴 거리다 일상이 무료해지면 물 한 통 챙겨 들고 불쑥 들어가 버리면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미로 속으로 자신을 숨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금 이른 시간에 혼자라면 호젓한 산 길 전체를 전세 낼 수 있습니다. 운 좋은 날이면 서너 시간의 산행에서 사람 한 명도 만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풍광 좋은 자리에서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에 맞춰 춤을 춰도 좋고, 실컷 욕을 내질러도 좋습니다. 세상살이 고단함에 울부짖어도 좋고, 떠나버린 옛 애인 영순이를 향해 돌아오라고 간청해도 좋습니다. 여기는 산이고 산이 매력적인 건 나를 향해 어떤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성의 통제라는 명목으로 자신을 억압하지 마십시오. 본능과 화해하고 타협해야 합니다. 우리는 수도자나 위대한 성자처럼 살 수도 없고 그렇게 살아야 할 필요도 없습니다.


원효봉에서 바라보는 백운대는 안개 낀 흐린 날이 좋고 향로봉에서 바라보는 의상능선의 첩첩산중은 눈이 오는 날이 장관이고 세상과 단절된 생의 종말을 느끼려면 숨은 벽의 늦은 가을을 봐야 합니다. 산줄기가 거대한 공룡의 등 같아 두렵다가도 삼천사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콧등을 스치는 바람 한 점에 세상 시름 잊기도 합니다. 땅거미지면 산 속 허름한 주막을 찾아 손가락 휘휘 저어가며 막걸리 한잔 마시는 것도 소소한 재미를 느낄 수 있어 좋습니다.


 


납 색 하늘 머리에 두고 잠 덜 깬 몸을 이끌고 산으로 간다.


바람에 밀려 잎을 던지는 나무들은 서걱거리며 아침을 맞이한다.


맺히는 땀방울에 솔 향기 범벅 되어 나는 어딜 바삐 가려고 하는가?


 


알려고 하지 마라 모름은 모든 가능성의 시작이고 안다는 것은 막다른 골목에 서있는 외로움이다. 산 길은 정적(靜寂)하고 그림자를 밀어낸 아침 또한 볕을 받아 시간을 내린다.


천 년 변함 없는 저 산에 유리 막 같은 나의 마음을 깨고 또 깨며 발걸음을 내딛는다.


 


깨달음이란 밥 한 숟가락 보다 쓸모 없는 것이어서 저 대지에 양분으로 쓰이지 못한다.


지나간 성인들의 고매한 소리는 변기통에 던져버리자. 여기는 아프고 외롭고 비틀거리는 사람들의 땅. 말없는 바람처럼 스러지는 수많은 계절


 


산모퉁이의 바람으로 행복한 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모르는 동질감 때문이다.


산을 세속의 잔으로 끌어내리면 이름으로 규정되어 또 값이 매겨질 것이 아니겠는가?


상상은 질퍽한 재미를 만들어 내지만 산은 그 자리에 말없이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