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사라지고 있는 ‘새’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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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몸담아온 MBC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새’라고 불리는 기자들이 꽤 있었습니다. ‘Bird’라고도 불렸는데, 뭔가 일이 잘 안 됐을 때 ‘새 됐다’라고 말하는 데서 유래된 게 아닌가하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한때 MBC 기자들 사이에서는 시사고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부서에 인사발령이 났을 경우 “나 새 됐어! 나 이제 새야!” 라고 말하는 게 유행했습니다. 아무래도 ‘따뜻하고, 물 좋고, 힘 센’ 출입처에 나가지 못하고, 길거리에서 밑바닥을 훑으며 힘들게 취재해야 하니까 그랬던 것 같습니다.

호칭은 똑같진 않더라도 방송사마다 일군의 ‘새族’이 진을 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들에게는 시사고발 기자로서 묘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조금은 잘난 체인데요. 저도 비리 고발 기사나 정부 정책에 대한 의혹 제기 기사를 쓰고 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균형을 맞춰라.”, “양쪽 주장을 똑같이 넣어라.”는 요구에 대해 마음속으로 반감 같은 것이 있었습니다. ‘고발 기사에 자꾸 균형 보도(요즘은 기계적 균형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만)를 말하는 사람들은 두 종류다. 첫째, 진실을 밝혀내려는 노력을 귀찮아하는 기자이거나, 둘째, 뭔가 다른 의도를 가졌다….’는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물론 상사나 선후배, 동료들에게 대놓고 그런 표현을 써서도 안 되고, 어떤 면에서 속으로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주변에 상처를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잘 난 것 없는 시사고발 기자들이 잘난 체하며 그렇게 생각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른바 새族은 고발 기사를 명쾌하게 쓰는 데서 희열을 느끼는 종족인데요. 명쾌하게 고발 기사를 쓰려면 확실히 근거를 확보해야만 합니다. 부지런할 수밖에 없는 거죠. 여기에다 대고 자꾸 양쪽 공방 기사 식으로 쓰라고 하면, 뭔가 시시비비를 가리려는 접근을 포기한 채 안일하고 게으른 것처럼 느껴지는 겁니다. 확실한 팩트와 의혹마저도 논란과 공방 형태의 기사로 쓰라고 할 때는 의도를 의심도 하게 되는 거고요. 어쨌든 시사고발 기자는 뜨거운 현안도 여야 공방 방식으로 풀어가는 정치부 기사를 재미없게 생각하는 족속이었습니다.

시사고발 기자들이 공정성을 확보하는 방식도 단순명쾌했습니다. 취재가 충분하지 않았거나 잘못된 방향으로 고발 기사를 썼을 경우 언론중재위나 법원 판결에 의해 반론보도, 정정보도, 심지어 손해배상까지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엄격하게 행동하고 공정성을 유지해야 했습니다. 더욱이 부실하게 취재해 소송을 당하면, 선수들 사이에서는 조롱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교도소 담장 위를 아슬아슬하게 걷는 형국이라고나 할까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방송계에는 이런 새族의 서식지가 꽤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주요 서식지였는데, 뉴스에서도 심심치 않게 보였습니다. 방송에서 저널리즘을 말할 수 있는 시대였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요즘 아주 괜찮은 비리고발 기사를 써서 여러 기자상을 받은 기자들이 취재현장에서 사라지는 것을 목격하고, 뚝심 있던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폐지되는 것을 목격합니다. 대신에 뉴스에는 조작, 비리, 부패 사건을 고발 기사 방식이 아닌 여야 공방 기사처럼 기계적 중립만 고집해 처리하는 현실을 목격합니다.

그래서 우리 사이에서 조금은 삐딱한 일군의 새(Bird)들이 사라지고 있는 걸 목격합니다. 어느 곳에서는 거의 멸종했고, 어느 곳에서는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요즘 시대에는 정말 힘든 일이지만, 그래도 이제 다시 이들 새들의 서식지를 찾고 보존하는 게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