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가 만난 방송기자] 변화의 기수, 이번엔 스토리펀딩이다

이곳은 지역방송국. 누구도 인터넷에 우리 뉴스영상을 올리지 않았다. 포털사이트에서는 우리 뉴스가 검색되지 않았다. 본사에서 틀어주는 저녁 종합뉴스 끝자락쯤, 우리는 잠시 지역의 소식을 내보냈다. 지역민들만 볼 수 있도록. 가끔, 특종을 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세상이 잠잠할 때도 있었다. 모두 당연하게 생각했다. 그런데 광주에선 한 젊은 기자가 몇 년 새 모조리 바꿨다. 시대의 변화에 둔감했던 사람들도 그가 깨워대는 통에 일어나야 했다. 그런데 이번엔 또 뭐라고? 스토리펀딩이란다. 그는 늘 변화의 대오 맨 앞에서 깃발을 들곤 하는 사람 아니던가. 무슨 꿍꿍이인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스토리펀딩은 ‘블루오션’… 희망봤다

또 새로운 영역에 도전했다. 왜 스토리펀딩에 도전하게 됐나?
아무리 좋은 콘텐츠를 제작해도 지역 안에서만 소비되는 게 안타까웠다. 개인적으로 스토리펀딩에서 ‘펀딩’보다는 ‘스토리’ 쪽에 방점을 찍었다. 서울 본사에서 결정하는 전국 편성에 의존하지 않고 어떻게 하면 다른 플랫폼을 통해 우리 뉴스를 전국으로 확산시킬 수 있을지 고민해왔다. 첫 실험이 3년 전 광주MBC 뉴스를 유튜브에 직접 올리는 일이었다. 이건 뭐랄까, 버전 업그레이드된 ‘서울 중심 플랫폼 탈피’ 실험이다. 실험 끝엔 희망도 봤다.

어떤 희망이었나? 새로운 가능성이 있던가?
스토리펀딩은 블루오션이다. 지역기자들에겐 더욱 그렇다. 콘텐츠 하나로 승부를 보는 거니까. 예를 들어 지역에서 기획보도를 한다고 하면 일반적으로 지역 안에서만 뉴스가 맴돌게 되지만, 스토리펀딩을 통하면 우리가 만든 콘텐츠를 전국에 확산시킬 수 있다. 지역의 한계를 뛰어넘어서 알리고 싶은 콘텐츠가 있다면 정말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항상 지역기자들이 취재할 때 듣는 말이 있다. “이 뉴스 서울에 나가나요, 안 나가나요?” 사실 그런 질문들이 지역기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할 때가 많지 않나. 이번 스토리펀딩을 통해 이미 고정돼있는 수도권 중심적 플랫폼에서 탈피할 수 있었다. 직접 내 콘텐츠를 웹에 올리고 시간과 공간의 제약이 훨씬 덜한 상태에서 독자들을 만나는 거다.

또 독자들과 소통하고 교감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스토리펀딩은 소통 부분이 강화돼있는 쌍방향 콘텐츠다. 특히나 펀딩의 특성상 콘텐츠 수용자가 돈을 내는데, 후원 절차가 굉장히 까다로운 점을 고려한다면 보통을 넘는 관심이라는 거다. 로그인하고 프로그램 깔아야 하는 번거로움을 마다않고 1만 원, 2만 원 후원해준 독자들의 정성과 진정성에서 진한 감동을 느꼈다. 기사의 취지를 기꺼이 지지하고 참여해줬다. 2만 원 이상 후원한 사람은 다큐멘터리가 DVD로 나올 때 크레디트에 올리기로 했는데 지금까지 모인 걸로만 해도 700명 이상이다. 모두와 함께 만들었다는 감동까지 느낀다.

“알려줘서 고맙다” 독자 반응엔 감동

독자들의 열성에 감동한 것 같다. 어떤 반응이 있었나?
사실 쌍방향 소통이 기본이 되다 보니 처음엔 악플이 달리지 않을까 걱정을 했다. 특히나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위해 다른 지역에서 산화해간 젊은이들의 역사를 다룬 <그들의 광주, 우리의 광주> 프로젝트가 5.18에 관한 것이다 보니 역사 왜곡이나 비방 댓글이 달리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특히 당시 태어나지 않았던, 5.18을 잘 몰랐던 청소년이나 청년들이 “다른 지역에서도 5.18을 기억하며 죽어간 젊은이들이 있는지 몰랐다. 알게 해줘서 고맙다.”라는 댓글을 달았을 때는 뭉클했다. 애초에 이 기획을 시작했던 취지 중 하나가 요즘 왜곡되고 있는 5.18 역사에 전투적으로 대응을 하기보다 1980년 당시 얼마나 상황이 치열했고, 다른 지역 사람들도 광주를 얼마나 마음 아프게 생각했는지를 그저 보여준다면 좋지 않을까, 하는 것이었다. 몰랐는데 알게 해줘 고맙다는 젊은이들의 댓글 사이에 장년층의 향수와 부채 의식, 공감이 섞여 들어갔다. 온라인의 작은 공간에서나마 5.18이 보편적인 이슈가 되고, 그 안에서 세대가 융화되는 모습을 보니 이번 기획이 5.18에 대한 날선 갈등들을 아주 조금이나마 해소시킨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수익은 공익 목적으로 쓸 계획

이미 목표치인 1000만 원을 훌쩍 웃도는 금액이 모금됐다. 모금액은 어디에 쓰이나?
유족들의 심리치료에 쓰고 싶다. 취재하다 보니 유족들이 심리적으로 여전히 트라우마를 겪는 상황인데도 지금까지 너무 방치돼 있다는 걸 느꼈다. 취재를 하다 유족들이 인터뷰를 끝내 거부해서 못한 사례도 꽤 된다. 한 예로 남편이 숨진 이유를 “자녀들에게 알리기 싫다, 예전 아픈 기억을 떠올리기 싫다, 아물어가는 상처를 왜 이제 와서 들춰내느냐.”는 한 유족의 마음 아픈 항의도 있었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의 역사 속에 마땅히 포함됐어야 할 죽음들이 역사의 언저리에서만 맴돌다 끝내 평가받지 못했기 때문에 유족들이 세상에 나서길 꺼리는 것이라고 본다. 확정적인 건 아니지만 광주시나 5.18 기념재단, 광주트라우마센터 같은 곳에서 추모 사업이나 기념사업을 끌어갈 수 있도록 이 모금액을 상징적인 기금, 종잣돈처럼 쓰면 어떨까 싶다.
‘펀딩’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해보자. 방송사의 일반적 수익모델과는 전혀 다른 모델인데?
사실 직접 해보니 방송사의 새로운 수익 모델로 삼긴 적절하지 못하다고 판단했다. 내 경우, 애초에 수익이 목적도 아니었다. 스토리펀딩이라는 게 크라우드펀딩과 저널리즘을 합쳐놓은 형태다. 기성 방송사가 여기 참여하는 경우에는 펀딩은 어디까지나 공익적 목적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쓰여야 하지 않을까 싶다. 물론 1인 미디어들이 제작비를 쓰는 경우가 있고, 그런 경우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방송사들은 제작비나 인건비는 이미 어느 정도 있기 때문에, 모금액을 그런 쪽으로 돌려쓴다면 정성껏 후원해준 사람들의 뜻에도 어긋나는 게 아닌가 싶다. 아까도 말했지만 엄청나게 복잡한 절차를 뚫고 기어이 후원해준 사람들이다. 정성을 봐서라도 허투루 쓰면 안 되겠다는 책임감이 드는 소중한 후원금이다.
악조건… 그래도 가치 있는 도전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이야기를 하자. 지역방송기자는 사실 기획취재를 하는 것 자체가 쉬운 상황이 아니지 않나. 당시 출입처도 경제, 스포츠 등 여러 곳이었는데.
정말 하고 싶어서 하지 않았다면 못 했을 거다. 악조건이었다. 짬짬이 쉬는 시간을 쪼갰다. 휴일도 반납했다. 막판에는 퇴근이 없었다. 스토리펀딩이라는 게 우리 회사의 경우 처음 해보는 일이었고, 5.18은 당시 내 출입처가 아니었다. 데일리 취재를 손상 없이 병행하겠다고 설득해서 데스크의 승낙을 받아냈다. 사실 기획이라고 하는 게 시간도 들고 품도 든다. 회사의 전폭적인 지지 없이 하기에는 어려운 일이었다. 겨우겨우 해냈다. 내가 하고 싶던 취재라서 후회는 없지만 나의 사례가 혹시 일부 데스크에 의해 악용되진 않을지 우려되기도 한다. 책임감 때문에 끝까지 달렸지만, 해보니 정말 쉬운 일은 아니었다. 어떤 지역방송사가 스토리펀딩에 관심을 갖고 도전해보고자 한다면, 기자에게 충분한 지원과 시간을 주는 게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만한 가치가 있는 일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