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변태기자’의 느림의 미학

사진-부현일01 

“너 변태냐? 그런 걸로 찍으면 사진이 나오긴 해?”
2001년 내가 제주 어느 일간신문 사진기자이던 시절이다. 다른 기자들은 최신식, 최고가의 디지털카메라로 촬영할 때, 1930년대산 구닥다리 폴딩카메라(Adox 6×7)1)로 촬영하던 내게 어느 선배가 한 말이다. 26살의 나는 로버트 카파 같은 종군기자가 되는 게 꿈이었고, 그런 시기의 변태란 말, 왠지 듣기 싫지 않았다.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스스로가 달리 느껴지는 기분이랄까? 그러나 그 날의 사진은 현상과 인화의 시간적 소모로 인해 지면에는 쓰이질 못했다.

당시 나는 클래식 카메라를 수집하는 취미를 가지고 있었다. 1800년대 후반부터 19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라이카Leica, 롤라이플렉스Rolleiflex, 스피드 그래픽Speed Graphic, 짜이스 이콘Zeiss Ikon 등 30여 대를 모았다. 대부분이 중저가다. 난 가끔 주어지는 이 녀석들과의 시간이 즐겁다. 노출과 거리를 조절하고 여유롭게 피사체를 바라본 후 필름을 감고 셔터를 누를 때의 그 느낌, 결과물이 아쉬울 때도 많지만 첫 과정에서부터 스스로 만들어 간다는 기분이 즐겁다.

제일 아끼는 녀석은 올림푸스Olympus 펜 EE-32)다. 작고 앙증맞은 이 녀석은 휴대가 간편해 일을 하다가도 쉽게 꺼내 촬영할 수 있다는 게 맘에 든다. 하프 프레임에 반자동이라는 점 또한 장점이다. 나는 2002년부터 줄곧 EE-3와 ‘풍경을 본다’ 시리즈를 작업해 왔다.

산, 오름, 바다…. 제주의 수많은 풍경들이 사진으로 표현될 때 단지 “아름답다!”, “멋지다!”는 한마디로 언급되는 게 안타까웠다. 원래 풍경 사진들이 그러하겠지만… 찰나에 찍히는 풍경일지라도 그런 풍경이 만들어지기까지의 무수한 시간과 역사, 그 안에 많은 번뇌가 숨겨져 있을 거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겉만 보고 본질을 보지 못하는 오류!

하나의 풍경을 여럿으로 나누어 보고 그 안에서 참다움을 볼 줄 아는 여유가 있었으면 하는 바람에서 ‘풍경을 본다’ 시리즈는 기획됐다. ‘풍경을 본다’(사진1)처럼 한 컷으로는 아름다워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는 4·3의 아픈 역사를 간직한 오름과, 부는 바람에도 움직이지 못하는 허울 좋은 풍차 그리고 전시용으로 심어진 해바라기 등이 결코 아름답지만은 않은 이유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제주올레’가 느림의 미학으로 불리며 세계적으로 각광받게 된 이유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천천히 내딛는 걸음에서 길과 소통하고, 두 눈에 들어차는 풍경에서 자연과 소통하고, 그리고 내 안에서 자아와 소통하고….

21세기. 사진이 촬영됨과 동시에 출력, 전송되고, 발표까지 되는 디지털 시대에서 아직도 한 컷의 사진에 많은 공(?)을 들이고 현상과 인화에 며칠을 허비하며 그 결과물을 기다리는 나는 분명 ‘구닥다리 아날로그 변태’일지도 모른다. 결과가 우선되는 현실에서 이런 행위가 시대에 뒤떨어지고, 사회에서 뒤쳐지는 일이라고 여기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틀에 박힌 방식에 나를 맞춰가고, 빡빡한 일상에 쫓겨 순수함을 잃어가는 스스로에게 이런 구식이 주는 여유와 행복은 따끔한 충고와도 같다. 내달리다가도 잠시 돌아보고, 힘들면 쉬어가고, 무거우면 내려놓고 가라는 평범한 진리와도 같은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것들은 오직 구식에만 있다.

사진-부현일02

이처럼 구닥다리 카메라들과의 교감과 그로 인해 만들어지는 사진들은 내 생활의 지침서와도 같다. 빼어나진 않지만 부족하지도 않은 사진, 요즘처럼 카메라가 만들어 주는 사진이 아니라 내가 만들어 내는 나만의 사진, 그러한 것들이 진정 ‘내가 사랑하는 사진’이 아닐까?
나 자신이 바로 핵심 피사체인 사진!
햇살 좋은 날, 낡은 카메라를 들고 나는 떠난다. 내가 보는 풍경의 중심으로….

 

1) 독일에서 1930년대에 제작된 중형 필름카메라. 렌즈는 폴딩형으로 평상시에는 접어두고 촬영시에만 편다.
2) 1970년대에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던 하프 카메라. 36컷 필름을 넣으면 72컷을 촬영할 수 있다. 반자동 시스템이라 사용이 편리하고 크기가 작아 휴대가 용이하다. 태양열로 노출계를 작동시키기 때문에 건전지가 필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