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 기사 제대로 발음하고 있습니까? 전영우 수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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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 박성호 본지 편집위원장

일 시 | 2013년 2월 13일

전영우 교수는 앵커나 아나운서들에게는 『표준 한국어 발음사전』의 저자로 잘 알려진 우리말 발음의 최고 전문가다. 동아방송(DBS)과 KBS 아나운서실장에 이르기까지 방송 30년, 경기고 국어교사에서 수원대 인문대학장까지 학문 30년, 그야말로 우리말 연구의 이론과 실무를 두루 갖춘 남다른 전 교수에게 비친 기자들의 발음 실력은 어떨까 궁금했다.

 

 

발음은 전달력의 문제

먼저 이 인터뷰 기사를 읽기 전에 아래의 단어들을 발음해 보자. 정답은 본문 속에 있다.

 

   pron 

여러분이 몇 개의 답을 자신 있게 댔을지 몰라도 전 교수가 평가하는 방송기자들의 발음 점수는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한다.

“내가 보기엔 대체로 잘해요. 그런데 좀 요구하고 싶은 것은 1988년에 정부에서 새롭게 어문규정 발표한 게 있어요. 국어사전 권말 부록에 다 있거든요. 그걸 기자들이 한번 봤으면 좋겠는데, 봤으면 그런 발음이 안 날 텐데. 안 본 것 같아요. 그래서 바쁘겠지만 한가할 때 한 번 볼 필요가 있어요.”

 

구체적인 지적 사항이 뒤따랐다.

“공권력을 [공궐력]이라고 발음하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이건 [공꿘녁]이라고 해야 해요. ‘공권公權’의 힘이니까요. 그런 것들이 예시돼 있기 때문에 한 번 보면 알아요. 한 번 봤으면 미연에 방지 할 수 있죠.

요새 나오는 말 중에 방사선량이라는 게 있거든요. 이걸 [방사설량]이라고 그러더라고요. 자음접변이라고 그러는 모양인데, 이건 [방사선]에서 끊고 [량]이라고 발음해야 해요. [방사선냥], 방사선의 양量이거든. 생산량도 [생산 냥]이지 [생살량]이 아니거든. 철권통치는 [철 ]이 아니라 [철권]이고, 간단하게는 [간딴]이 아니라 [간단]이고요. 그런데 방송에서 잘하는 건 무수단리를 [무수단 리]라고 해요. [무수달리]가 아니죠.”

 

‘리里’는 마을을 의미하니까 그 앞에서 끊어야 한다는 것인데, ‘발음 환경’이 다른 것은 묶어서 발음하지 않는다는 규칙 때문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다음의 단어들을 길게 발음해야 할지, 짧게 발음해야 할지 읽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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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단음은 현재 많이 벗어나고 있어요. 무관심과 무의식 속에서. 예를 들면 불이 났을 때 ‘[화ː재]가 발생했습니다.’라고 해야 하는데, ‘[화재]가 발생했습니다.’ 하는 경우가 있어요. 정치 뉴스에서도 [여ː야]라고 분명하게 길게 발음해야 해요. 여와 야를 구분해서. 이렇게 환경에 따라 장단음이 다른데, 참, 환경도 [환경]이죠. [환ː경]이 아니라. 선배들이 다 구분해 놨는데, 후배들이 몰라요. 왜냐하면 안 가르쳤으니까. 후배들도 우선 관심이 있어야 해요.”

 

기사 내용이 중요하지, 발음이 대수냐? 그렇게까지 꼬장꼬장하게 따져야 하느냐는 반론이 나올법 하다. 그러나 이동 중에 뉴스를 자주 듣는다는 한 대기업 고위 인사는 이렇게 말한다. “기자가 예순 세 개를 육십 세 개라고 읽는다든지, 나도 아는 발음을 틀리면 그 순간에 그 보도에 대한 신뢰가 확 떨어져요. 라디오로 들으면 더 정확하게 들리는데 그런 것에 신경쓰면 뉴스가 귀에 안 들어옵니다.” 방송의 전달력에 관한 얘기다.

 

전교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언어학에 나오는 기표記標와 기의記意가 등장했다.

“공감해요. 시니피앙signifian이란 게 있어요. 간단히 하면 ‘소리’죠. 시니피에signifié에는 ‘뜻’이에요. 시니피앙이 정확해야 시니피에가 정확히 전달이 돼요. 소리가 부정확하면 뜻이 모호하게 전달돼요.”

 

편집부에 ‘발음 코치’ 기능 필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기자뿐 아니라 각 방송사의 간판급 앵커 가운데에서도 전망을 [전ː망]이 아니라 [전망]으로 발음하는 사례를 듣곤 한다.

 

“신문기자는 활자화하지만 방송기자는 음성화를 하죠. 음성화에 가장 중요한 게 발음입니다. 어려운 게 뭐냐 하면 발음은 언어습관이에요. 자기가 잘못된 발음을 하고 있다는 걸 몰라요. 그래서 보도국 편집부에 발음 문제에 정통한 사람이 몇은 있어서 코치를 해 줘야 합니다. ‘김 기자, 아까 발음 정확히는 이거야.’라고 일러줘야 개선이 된다고요. 선배들 중에 정년을 앞둔 사람들이 편집부에 두서너 명 있으면서 그때그때 즉시 지적해 줘야지, 나중에 모니터 보고서를 내면 시간이 늦어요. 현장에서 이야기해 줘야죠. 제가 있던 어떤 방송사에서 예전에 그렇게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대체로는 방송사들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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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음이 정확한 앵커라는 평가를 받았던,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어느 선배의 말이 떠올랐다. ‘나는 평기자 때부터 늘 오디오 녹음하러 가기 전에 전영우 박사가 쓴 발음사전을 펼쳐놓고 미심쩍은 부분을 체크했어.’ 전 교수는 1962년 『국어발음 소고』를 시작으로 수정, 보완을 거듭해 발음사전을 발전시켜 나갔다. 수첩 형태에서 시작해 지금의 사전이 됐다. 왜 이렇게 발음사전에 천착했을까

 

“한글이 우수한 글자이지만 아무리 한글이 소리글이라도 소리나는 대로 적을 수 없는 부분이 있어요. 음성은 다양해요. 그리고 언어는 변합니다. 변하는 언어를 너무 따라가도 안 되고, 그렇다고 그걸 놔둬도 안 돼요. 그래서 발음사전이 필요해요. 탤런트 이순재 씨가 연극배우협회 회장을 할 때 인터뷰 기사를 보니까, 지금도 연기 지도할 때 제가 쓴 발음사전으로 가르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국어학자로가 본 발음 문제의 근원은 학교 교육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어에서도 독해뿐 아니라 말하기 교육이 필요한 것처럼 국어도 말하기 교육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국어 시간은 있는데 국어를 안 가르치고 있어요. written 스타일은 가르치지만 spoken 스타일은 안 가르쳐요. 제가 과거에 고등학교 선생을 했어요. 국어 시험문제를 보면 틀에 박힌 게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여라, 다음 글을 읽고 밑줄 친 부분을 설명해라.’ 이 두 가지에요. 이건 국어國語 시험이 아니라 국문國文 시험이죠. 글을 가르치고 글 배운 걸 시험 보는 것이지 말을 가르치고 말 배운 걸 시험 보는 게 아니죠. 국어시간에 말하는 것도 가르쳐야 해요.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도 해석만 가르치면 그건 영어를 배우는게 아니잖아요. 국어를 가르치려면 발음을 가르쳐야 해요. 우리가 영어를 배울 때도 발음을 배우잖아요.”

 

아는 만큼 보이듯이 아는 만큼 들린다. 방송뉴스에서도 잘못된 발음이 귀에 거슬리는데, 집 밖을 나서면 곳곳에서 확대재생산 중인 잘못된 발음을 접하게 된다.

 

“기차역 중에 수원 근처에 병점이라고 있어요. 그런데 전철 안내방송을 들어보니 [병쩜]이라고 해요. 이건 가게 ‘점店’이기 때문에 그냥 [병점]이라고 해야 하는데. 문구점, 서점 읽을 때처럼 말이죠. 그런데 0점, 가산점, 이럴 때는 점수니까 [쩜]으로 읽습니다. 그래서 내가 역장에게 찾아가 항의를 했죠. 지금은 바뀌었어요.”

 

인터뷰 다음날 필자가 탄 지하철에선 여전히 ‘고객 여러분’을 ‘[고ː객] 여러분’이라고 발음하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버스에서는 ‘광화문 빌딩’을 ‘광화문 [빌띵]’이라고 방송했다. 다 찾아가서 항의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