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연합회 정책위원회] 모른 척, 못 본 척 너그러운 방송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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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기자연합회 정책위원회

※이 보고서는 KBS·MBC·SBS·YTN 등 주요 방송의 메인 뉴스를 모니터해 작성했습니다. _편집자 주

세월호 보도에서 지적되는 대표적인 잘못이 ‘받아쓰기식 보도’였다. 방송뉴스는 시간에 쫓긴다는 핑계로 정부의 발표 내용을 사실 확인 없이 받아쓰기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육·해·공 총동원’, ‘가용 전력 모두 투입’, ‘필사의 수색’ 등 전형적인 허위 과장 보도가 잇따랐다. 구조 당국의 이런 면피성 발표를 방송뉴스는 충실히 전달했고, 그 결과 ‘기레기’ 소리를 듣게 됐다.

그렇다면 거짓말의 근원지였던 정부 당국은 어떤 책임을 졌는가? 언론이 정부에 따질 수는 있겠지만, 국민의 비난은 오롯이 언론 스스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국민이 직접 접한 거짓말은 ‘정부의 거짓말’이 아니라 ‘언론의 거짓말’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언론은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뿐만 아니라 언론 스스로의 명예와 책임을 위해서도 정부 당국이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 해외 재난재해 전문취재 과정을 다녀온 기자들에 따르면, 미국의 재난재해 당국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이것이다. “언론은 우리를 정직하게 만든다.”

자세히 보도하려는 언론과 정보를 통제하려는 정부 간에는 긴장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그 과정에도 최소한의 금도는 있다. ‘거짓말은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 그런데 지금 정부가 이 금도를 버젓이 넘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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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거짓말’… 너그러운 방송뉴스
지난 10월 13일 우리 정부는 ‘30일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갖자.’고 북측에 제의했다. 그렇지만 이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음날 통일부는 기자들에게 “제의 시점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고 밝힌다. 그러나 하루 뒤 한 조간신문에 “정부가 13일 제의했다.”고 보도되자 그제서야 이 사실을 시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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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통일부의 14일 답변이다. 통상 밝히기 곤란한 사안은 “모른다.”, “확인해 줄 수 없다.”는 정도의 답변을 하는데, 이번에는 명백한 거짓말을 했다. 아무리 남북 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한다 해도 이번 일이 과연 정부가 거짓말을 하면서까지 감출만한 사안인지 의문이 생긴다. 사안이 중요해서가 아니라 정부가 정보 통제와 비밀주의의 단맛에 빠져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면 언론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언론은 국민을 대변해서 정부를 상대한다. 정부가 언론에 거짓말했다는 것은 국민에게 거짓말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언론은 국민을 대신해서 정부에 책임을 묻고 다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하도록 질책해야 한다. 그런데도 통일부의 거짓말이 드러난 15일, 방송뉴스에서는 거짓말에 대한 비판을 찾아보기 어렵다. SBS만 ‘정부가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꼬집었을 뿐, 다른 방송들은 정부가 제의한 사실을 단순 전달하거나 통일부의 해명을 실어주기 급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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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기야 20일 기자단이 통일부의 ‘거짓말 브리핑’과 ‘비밀주의’에 공식 항의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기자단은 ‘민감한 남북관계 상황을 모두 공개할 수 없는 정부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정부는 최소한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이 같은 기자단의 항의조차도 방송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흔히 ‘기자는 기사로 말해야 한다.’고 한다. 정부의 거짓말에 대한 비판도 기자단 항의에 그칠 것이 아니라 뉴스를 통해 시청자들에게 직접 전달해야 하지 않았을까? 자신들이 낸 항의 성명을 갖고 기사를 쓰기가 어색하다는 기자도 있었다. 그래서일까? 통일부 기자단에 소속되지 않은 JTBC가 오히려 적극적인 보도를 했다. 거짓말이 드러난 15일 기자 출연을 통해 정부의 ‘비밀주의’를 비판한 데 이어 21일에는 통일부 기자단의 항의를 리포트와 기자 출연으로 보도했다.

통일부를 담당하는 일부 기자들은 ‘통일부 대변인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라 청와대가 남북관계를 주도하면서 통일부 대변인이 정보에서 배제된 게 아닌가?’하고 분석했다. 기자단의 성명에도 비슷한 부분이 나온다. 그렇다면 청와대의 독주로 오히려 주무 부처인 통일부가 배제되고 있는 문제점을 방송뉴스를 통해 지적해야 마땅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40여 년 전 미국의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한 워터게이트 사건의 핵심도 불법 도청이 아니라 거짓말이었다. 닉슨은 도청 책임을 지고 사퇴한 게 아니라 ‘모르는 일’이라며 거짓말을 했다가 그 책임을 추궁당해 물러났다. 정부의 거짓말에 대해 언론이 더욱 엄중히 질타하고 비판해야 정부가 언론을 무서워하고 국민을 무서워하게 된다.

‘대선 공약 파기’… 모른 척 방송뉴스
비리 기업인에 대한 ‘무관용’은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다. 박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대기업 총수들의 중대 범죄에 대한 사면권 행사를 엄격하게 제한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해외 순방 중이던 지난 9월 24일 황교안 법무장관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을 준 기업인은 가석방 또는 사면할 수 있다.”고 밝혀 파문이 일었다. 대선 공약 파기를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다음날에는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법무장관의 말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기업인이라고 지나치게 엄한 법을 집행하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안 된다.”며 지원 사격을 했다.

SBS를 제외하고는 모두 보도했다. 그러나 ‘대선 공약 파기’가 아니라 ‘정부 기조의 변화’에만 초점이 모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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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장관의 발언이 ‘비리 기업인 사면 제한’이라는 대통령의 공약을 뒤집는 것이라는 분석이나 비판은 없었다. 장관들이 대통령과 교감 없이 이런 발언을 했다면 대통령의 국정 통치 기조를 거부하는 것인데 대통령이 이들을 질책했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렇다면 대통령과 사전에 교감이 있었거나, 최소한 대통령에게 공약 파기의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 대통령이 해외 순방에 나선 틈에 두 장관이 총대를 메고 여론을 떠보는 전형적인 ‘발롱 데세’*를 한 셈이다. 그리고 무비판적인 방송들은 발롱 데세에 충실히 이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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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감장의 꼼수’… 못 본 척 방송뉴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 출석 예정이던 김성주 대한적십자사 총재가 국정감사를 이틀 앞두고 돌연 중국으로 출국했다. 국감을 앞둔 피감기관 기관장의 전격 출국을 두고 껄끄러운 국정감사를 피하기 위해 이른바 ‘도피성 출국’을 한 게 아니냐는 비난이 쏟아졌다.

같은 날 미래창조과학위원회에서는 곽성문 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코바코) 사장의 이른바 ‘친박 자기소개서’가 도마에 올랐다. 곽 사장이 코바코 사장 지원 당시 자기소개서에 ‘친박 그룹 일원으로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섰다.’는 등의 문구를 썼기 때문이었다. 곽 사장은 또 답변 과정에서 “코바코 사장에 응모할 당시 친박 의원들과 상의했다.”고 말해 질타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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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MBC와 YTN에서는 어느 뉴스도 찾아볼 수 없었다. 물론 뉴스 가치에 대한 판단은 각 사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근거가 있는 의혹이고 녹취도 있는 상황에서 국정감사 관련 아이템을 굳이 외면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MBC, YTN 방송사 모두 코바코와 업무상 관련이 있는 데다, 2년 전 국정감사 때 증인으로 채택됐던 김재철 당시 MBC 사장과 배석규 YTN 사장이 돌연 ‘도피성 해외출장’을 나간 전례가 있다는 점이 과연 우연일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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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롱 데세[ballon d’essai]: 여론의 동향을 탐색하기 위한 여론 관측 수단. 시험기구나 관측기구를 뜻하는 기상 용어에서 비롯된 용어로 반향이 확실치 않은 논리에 대해 시험적으로 특정 의견이나 정보를 언론에 흘림으로써 여론의 방향을 탐색하려는 여론 관측수단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정치인 등이 종종 이용하는데, 발롱 데세 결과 부정적인 여론이 나타나면 이미 했던 말을 뒤집는 경우도 있다. [출처: 네이버 지식백과(시사상식사전, 박문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