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다른 듯 다르지 않은 장녹수와 최순실

기함할 노릇이다. 단순한 호가호위가 아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최순실의 국민이었다.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가 최순실에게 아예 옥새를 넘겨주고 결재를 받았다. 우리 국민이 그런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 치욕과 절망감을 어찌 견뎌야 하나. 최순실은 대통령의 옷과 장신구에서 정부 인사와 국가 정책까지 주물렀다. 대한민국의 국격과 자존심이 개차반이 됐다.
조선시대 가장 흉악한 폭군과 악덕한 요부, 연산군과 장녹수의 현대판 버전을 보는 듯하다. 연산군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포악하고 잔인한 군주라는 타이틀을 안고 있는데, 그런 임금의 마음을 사로잡으며 국정을 자기 맘대로 농락했던 후궁이 바로 장녹수다. 포악하기 그지없는 연산군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그녀와 최순실은 공통점이 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장녹수는 입담이 보통이 아니었고, 연산군이 원하는 말을 적절히 구사할 줄 아는 센스가 탁월했으며, 상황에 맞게 연산군의 비위를 잘 맞추었다고 한다. 한마디로 입안의 혀와 같았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최순실도 뒤지지 않을 것 같다.
최순실은 지난 1979년 아버지 최태민 목사의 주선으로,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하던 박근혜와 첫 만남 기회를 얻은 최순실은 이후 지금까지 40년 가까이 관계를 맺어왔다. 어지간하면 세월이 관계의 부침을 만들 만도 한데 한결같다. 2006년엔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지방 유세를 하던 중 칼로 얼굴을 베이는 테러를 당했을 때, 박 대통령을 지극 정성으로 간호하는 장면이 목격되기도 했다.
게다가 최씨는 대통령의 연설문이나 국가 정책에 유신시절 아버지의 흔적과 체취를 묻혔다. 대통령이 무엇을 그리워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다 아는 것처럼. 마치 어머니 폐비 윤씨를 그리워하는 연산군에게 진한 모성애를 느끼게 했던 장녹수처럼. ‘환생한 장녹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연산군을 홀린 장녹수의 가무 능력이, 최순실에게는 대통령을 ‘언니’라 부르며 넋을 빼놓는 친화성과 환심을 사는 재능으로 재현됐나 보다.
그러나 모든 것은 다 끝이 있는 법. 반정이 일어나기 일주일 전, 연산군은 자신의 운명을 예견하기라도 한 듯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서 함께 있을 때가 많지 않을 것‘이란 내용의 시를 장녹수에게 전했다. 장녹수는 펑펑 울었다.
종적을 감춘 최순실과 펑펑 우는 장녹수, 그 모습이 지금 겹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