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국 방송에서 특종은?_김헌식 교수(미국 콜로라도 대학교 언론학과)

언제부터인가 방송계에 특종 경쟁이 뜨겁다. 과거 3대 네트워크 방송 시대에도 경쟁이 뜨거웠지만, 요즘과 비교하면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얘기다. 24시간 뉴스 채널이 등장하고 종합편성채널이 우후죽순 늘어나 방송 뉴스 생태계가 예전보다 더 치열한 경쟁 체제로 바뀌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군다나 방송과 더불어 온라인 뉴스 체제가 풀가동되면서 오늘날 방송기자들은 방송이든 온라인이든 다른 경쟁사들보다 1분 1초라도 더 빨리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이 특종이라는 생각을 하는 듯하다. 특히 대형 사건사고가 잇따르거나 정계의 막장 드라마가 난무할 때마다 경쟁사보다 한발 먼저, 다른 기자들이 감지하지 못한 사소한 에피소드를 취재해 기사로 터뜨리는 것이 방송기자로서의 능력을 과시하고 소속사의 가치를 드높인다고 여기고 있다.

특종 경쟁은 상업 언론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
미국과 서구 언론 역사를 돌이켜 보면, 특종 경쟁이란 시장 경쟁 속에서 언론사들이 서로 살아남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상업 언론 체제가 정착된 미국의 경우엔 20세기 초 강력 범죄나 유명인들의 스캔들을 중심으로 특종 경쟁이 치열해 ‘흥건히 피가 튀는 뉴스가 돈이 된다’는 자조 어린 농담을 낳았다. 그런데 특종 경쟁은 종종 선정성 경쟁으로 이어지기 마련이어서 뉴스 취재원이 불명확하거나 사실 여부가 의심스럽더라도 일단 보도하는 사례가 허다했다. 추후에 오보로 밝혀지더라도 공익을 위한 보도는 용인된다는 법원 판례까지 더해지면서 경쟁은 더 극심해졌다. 오늘날 미국 네트워크 방송은 이같은 특종 경쟁에서 다소 자유롭지만, 한정된 수의 시청자들을 상대로 하는 지역 방송국들의 경우엔 특종 경쟁이 여전히 뜨겁다. 툭하면 ‘Breaking News’ 또는 ‘Exclusive’라는 자막을 화면에 띄우면서 호들갑 떤다. 별다른 알맹이 없이 ‘우리가 먼저 전해 들었다’는 식의 보도일 뿐이다.
방송의 특종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기사의 진위성에 대한 이중 삼중의 확인 절차, 취재원의 신뢰성 여부, 뉴스를 접하는 시청자에 대한 배려는 뒷전이고 오직 ‘단독 보도’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들게 된다. 한 가지 기자들이 알아야 할 것은 남들보다 앞서 보도하는 뉴스 특종이란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언론사가 일제히 보도하게 될 단순 뉴스 아이템에 불과하며 정작 시청자들은 어느 방송사가 최초로 보도한 것인지 별달리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어느 방송이 단독 보도나 특종을 했건 시청자들은 개의치 않고 뉴스를 소비한다는 것이다. 결국, 특종이란 언론사나 기자들이 치열한 뉴스 경쟁에서 한발 앞섰다며 스스로 희열을 느끼는 자위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들보다 1, 2분 앞서 보도하면 특종’이라는 등식이 성립한다면 어떤 저널리즘도 바로 설 수 없게 될 것이다.

특종 경쟁이냐, 선정성 경쟁이냐
특종 경쟁의 또 다른 부작용은 이른바 뉴스메이커의 신상 털기나 흠집 내기 등 스캔들 들춰내기 식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2016년 대선을 앞둔 미국에서는 요즘 대선후보들의 말실수나 사생활 등 약점을 파헤치는 방송뉴스가 잇따르고 있다. 정치인들이 지난 몇 년간 이뤄온 공과나 대선 공약의 내실을 검증하기보다 누가, 어디에서 말 한마디 내뱉어 잠시 파문을 일으킨 것이 톱뉴스가 된다. 현재 벌어지는 생생한 뉴스현장에서 기자가 지켜보고 어깨너머로 전해들은 것을 신속하게 보도하는 것이 특종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진정한 특종의 영예는 정치판이나 사건사고의 숨겨진 이야기와 문제점을 끈기 있게 추적하고 이를 시청자들에게 알린 기자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진정한 특종은 정부나 관공서의 불법행위나 대기업의 불공정 비리 등을 파헤치고, 이들의 거듭된 협박과 압력 속에서도 진실을 보도한 기자들의 몫이어야 한다. 정파적 이익을 좇아 특정 언론사에게 기사거리를 던져주는 정치인들이나 광고나 협찬 등을 빌미로 언론사 보도를 좌우하려는 재벌과 당당히 맞서는 것이 오히려 방송기자들의 특종으로 인정받아야 한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미국 뉴욕타임스와 네트워크 방송사들은 사담 후세인이 대량 살상무기를 숨겨놓고 있다는 특종 보도를 잇따라 터뜨렸다. 알고 보면 미국 정부와 여당의 언론 플레이에 말려든 결과였다. 몇 년 전에도 미국 방송사들은 듀크대학교 운동부원들이 흑인 여성을 성폭행했다는 뉴스를 몇 달 동안 특종 보도해 미국 전역을 들끓게 했는데 그 뒤 사실무근이었다는 판정이 내려졌다.

시청자에게 가치 있는 뉴스가 진정한 특종
미국 신문기자들에게 퓰리처상이 최고의 영예라면 방송기자들에게는 피바디 상(Peabody Award)과 듀퐁 상(du Pont Award)이 자신들의 특종에 대한 영예의 징표다. 올해 주요 수상작*들을 살펴보면 과연 진정한 방송 특종이 어떤 것들인지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주목할 것은 대부분의 수상작이 단발성 발생 뉴스를 다룬 특종이 아니라 특정 사안에 대해 몇 달간의 추적을 토대로 이뤄진 심층 기획 보도라는 점이다. 또한 경쟁사들보다 한발 앞서 보도했느냐를 따지기보다는 다른 방송사들이 무시했거나 누락한 사안을 끈기와 집념으로 취재해 방송한 것에 대해 가치를 부여했다. 결국 방송사들 간에 특종 경쟁으로 얼룩진 뉴스가 아니라 시청자들이 꼭 알아야 할 가치 있는 방송뉴스가 진정한 특종이라는 것이다. 방송뉴스의 특종을 말할 때 우리가 생각해 봐야 할 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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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디 상-9.11 테러 직후 미 국회가 승인한 전쟁 수권법의 문제점, 1964년 흑인 민권운동 재조명, 미네소타 주 가톨릭교회의 성 추문, 재향군인 병원 부조리, 에볼라 확산과정 추적, 중국의 장기밀매 실태, 테러집단 이슬람 국가 심층보도 등
  듀퐁 상- 대마초 합법화의 빛과 그림자, 미네소타 주 가톨릭교회 성추문, 국선변호인 제도의 허점, 정부의 시민감시 프로그램, 플로리다 주 교통신호등 점멸주기 조작 파문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