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진 초기 방역망… 사태는 ‘일파만파’_KBS 김덕훈 기자

KBS 김덕훈 기자(사회1부)

“발열이 적어 격리 대상이 아닙니다. 메르스에 걸릴 확률은 거의 없어요.”
지난 5월 20일 밤, 보건당국은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감염이 의심된다며 격리·검사를 요구했던 40대 여성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체온이 38도를 넘지 않았다.”는 게 질병관리본부 설명이었다. 여성은 함께 병원으로 이송됐던 76세 아버지만 두고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이송 당시 고열 증세를 보였던 아버지는 하루 뒤 메르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여성은 5월 16일, 메르스 최초 환자와 4시간 동안 한 병실에 있었다. 평소 지병이 있었던 아버지를 간호하던 중이었는데, 부녀가 모두 이 시점에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으로 보인다.

“38도 넘어야 격리”… 꽉 막힌 보건당국
다시 5월 20일 밤으로 돌아가 보자. 병원에서 격리를 거부당한 여성은 안절부절못했다. 가족과 함께 사는 집에 돌아갈 수도 없었다. “남편하고 딸 하나 있어요. 병원에서는 가라고 하니까 있을 수가 없죠. 가족이 감염될까 걱정하고는 있지만…. 뭐 방법이 없잖아요.” 갈 곳 없는 이 여성을 데리러 남편이 병원까지 왔다. 그리고 이 여성은 적어도 21일까지는 자택에서 가족과 머물렀다. 언론은 가족 간 3차 감염이 우려되고, 보건당국의 장담처럼 자가 격리가 자발적인 통제로는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는 점을 이 시점부터 지적했다. 이 문제들은 불과 며칠 뒤 현실이 됐다.
이 여성은 집으로 돌아간 지 이틀 만에 최고 37.9도의 고열 증세를 보였다. 질병관리본부 기준인 38도에는 0.1도가 모자랐다. 결국 5월 25일, 체온이 38도 넘게 오른 뒤에야 병원에 격리 조치될 수 있었다. 보건당국은 이날 곧바로 유전자 검사에 착수했고, 4번째 환자로 확진했다. “여성의 격리 요구를 뿌리치더니, 결국 메르스 감염으로 드러났다. 가족은 어떻게 할 거냐?”는 비판이 쏟아졌다. 보건당국은 이 여성을 포함해 메르스 최초 환자와 접촉했던 많은 사람들을 격리 대상자에서 누락하는 등 중대한 실수들을 저질렀다. 정부의 초기 대응 부실로 64명에 불과하던 격리 대상자는 메르스 발생 한 달 만에 6천 명을 넘어섰다.
대혼란 초래한 ‘방임적’ 자가 격리
취재진이 4번째 메르스 환자와 만난 건 21일 새벽이었다. 국내 첫 메르스 확진자가 나온 지 만 하루가 안 되는 시점이었다. 메르스가 비말(침방울)로 감염된다는 사전 정보 정도만 있었다. 마스크 등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5m 이상을 떨어져 인터뷰했지만, 결국 다음날부터 회사 차원에서 자가 격리에 들어갔다.
2주간의 자가 격리는 보건당국의 자가 격리 수준과 비슷했다. 원래 출입처 취재원인 질병관리본부 담당자와 필요할 때 연락할 수 있다는 점만 일반 자가 격리자와 달랐다. 사흘만 지나도 집 안에 쓰레기가 넘쳐났다. 삼시 세끼를 집에서 해결하니 쌀도 금세 떨어졌다. 6달 전에 약속했던 친구의 결혼식 사회는 결국 다른 사람으로 교체됐다.
혼자 사는 사람에게 자가 격리란 ‘고립’이다. TV 실컷 보고, 책 읽는 것도 2주면 지친다. 메르스 증상이 나타나면 스스로 경각심이라도 가질 텐데, 증상도 없다. 답답하다. 누구라도 ‘밖으로 한번 나가볼까’하는 유혹에 빠질 수 있다고 보는 게 상식적이다.
메르스 발생 초기 “많은 사람들을 자가 격리만으로 통제하는 게 가능하다고 보는가?” 하는 질문을 보건당국에 한 적이 있다. “그 정도는 국민을 믿어야지 어쩌겠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격리 대상자 범위라도 확대해야지 않냐?”는 질문에는, “한 병실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을 격리 조치할 수는 없다.”고 했다. 보건당국의 확고한 믿음과는 반대로 자가 격리는 전혀 통제되지 않았다. 격리 기간 골프를 치러 지방까지 간 강남 사모님, 원칙을 어기고 자택이 아닌 친정집에 머무르다 적발된 여성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허술한 기준 탓에 격리 대상에서 빠졌던 40대 남성은 메르스에 감염된 상태로 중국 출장까지 떠나 외교적 문제를 초래하기도 했다.
격리 대상자가 수천 명에 이르는 지금은 병원에 강제 격리를 하려 해도 할 수가 없는 지경이 됐다. 하지만 메르스 발생 초기에는 수십 명에 불과한 격리 대상자들을 병원 등에 강제 격리하는 등 집중 관리가 가능했다고 본다. 삼성서울병원의 대량 감염 사태도, 수많은 사망자도 결국 방임과 방기에 가까웠던 보건당국의 격리 대상자 선정 기준과 자가 격리 원칙 때문이었다는 지적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