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보도는 탐사보도다_KBS 김용진 기자

 “모든 보도는 탐사보도다.”

인터뷰 : 2010 한국방송기자상 공로상 수상자

KBS 김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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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최원석 명예기자

    

기자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인터뷰는 핑계였다. KBS 탐사보도팀을 이끌던 김용진 기자와의 약속은 실은 그를 ‘탐사’하는 시간이었다. 지난 3월 10일 국회의사당 앞의 한 찻집. 정직 기간을 빌어 잠시 서울에 올라와 있던 김용진 기자를 만났다.

    

    

동어반복의 문제의식

    

김용진 기자는 KBS 부산총국에서 기자생활을 시작했다. 두 번의 노조전임기간을 포함해 십여 년 을 조금 넘게 부산에서 지냈다. 이후 2003년 <미디어포커스>의 창설멤버로 활동하다 2005년 보도국 내에 탐사보도팀이 생길 때 팀원으로 합류했다. 다음 해부터 1년간 미국 미주리대 저널리즘스쿨 (Missouri School of Journalism) 에서 수학하고 돌아와 미디어포커스 팀장으로 다시 합류, 언론 상호 비평 프로그램으로서 미디어포커스가 자리 잡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 기자가 탐사보도팀장으로 자리를 옮겨 <쌈>에 참여하기 시작한 것은 2007년 하반기다.

    

당시 언론계에는 ‘탐사보도’에 대한 관심이 활발해 지고 있던 터, KBS의 보도국의 윤석구 기자를 중심으로 몇몇 기자들이 <시사기획 쌈>을 기획 중이었다. 뉴스에서 다루기 힘든 아이템을 깊이 있게 다루자는 시도로, 일종의 ‘라인업’ 확대였다. 기본적인 보도는 매일(daily) 뉴스에서, 한 달 내의 현안은 <취재파일4321>에서, 그리고 좀 더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내용들은 한 시간짜리 ‘그릇’인 <쌈>에 담아보자는 취지였다.

 

“짧은 시간에 다루기 어려운 이야기들이 우리 사회에 너무도 많지 않나?”

    

김 기자는 탐사보도의 필요성을 한 문장으로 정리했다. 9시 뉴스로 대표되는 1분 30초짜리의 보도에 대해 기자들은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다만, 김 기자는 한 가지를 분명이 짚고 넘어가자 했다. ‘탐사보도’ 혹은 ‘탐사 저널리즘’이라는 용어에는 어폐가 있다는 것. <미디어포커스>를 제작할 당시 인터뷰했던 영국 언론인 존 필저 (John Pilger)의 말을 인용했다.

    

“저널리즘이라는 것이 본래 탐사적인(investigative) 속성이 있는데, 왜 여기에 굳이 또 ‘탐사’라는 수식어를 붙이느냐는 거죠. 동어반복이나 마찬가지인 ‘탐사보도’라는 용어를 쓰는 이유는 지금 저널리즘에 탐사적인 속성이 거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보도는 탐사보도입니다.”

    

탐사보도는 가능하다. 누구든, 어디서든.

    

결국, 탐사보도팀이 아닌 데일리 뉴스나 부처출입 기자도 탐사보도를 할 수 있다고 김 기자는 말했다. 보도자료에 의존하지 않는 자세, 사건의 이면이나 실체에 대한 독자적인 시작의 접근 등 기본적인 취재요령에 충실하면서도 다양한 방법을 통해 탐사보도는 가능하다는 것.

    

한편, 종합편성채널과 맞물린 언론계의 변화 속에서 ‘탐사보도’ (앞선 지적 불구, 편의상 이 표현을 계속 사용해야했다.) 의 입지는 각 언론사에서 줄어드는 추세다. 경영진들에게 여러모로 ‘수익성’이 낮기 때문이다. 김 기자는 이윤동기에 매몰된 언론 산업의 현실이라 말했다.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되겠지요. 광고주나 관련기업과의 관계 등 경영자 입장에서 유리하지 않을 테니, 최대한 탐사의 기능을 억제하든지 형식적인 운영을 통해 언론사의 ‘포장용’으로 두는 한계를 보일 것입니다.” 

 

탐사보도팀이 없다고 해서 탐사보도를 못하는 것은 아님을 김 기자는 강조했다. 일례로 얼마 전 발생했던 소말리아 해적사건 보도를 들었다. 경찰의 공식발표나 브리핑을 비판적으로 검증하고 확인했다면, 그것이 탐사보도의 시작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고. 그러나 현실적으로 탐사보도엔 많은 재원과 인력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입사 4년 차, 부산에서 일명 ‘노동계 블랙리스트’를 취재할 때였습니다. 몇 만 명 되는 리스트가 있었는데, 취재나 분석을 원시적으로 했어요. 이 때 기자들의 취재를 보조하는 리서처 researcher) 제도나 취재기법이 마련되어 있었으면 훨씬 더 입체적으로 다양한 리포트가 가능했을 겁니다.” (기자는 “노동자 블랙리스트 디스켓 발견” 보도로 1991년 제13회 한국기자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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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탐사보도팀의 ‘위대한 탄생’

 

“부산 미군용 비행기 도색작업을 하던 인부들이 집단 직업병 (크롬중독)에 걸렸습니다. 핵심적인 이야기가 다 빠진 채 한 꼭지로만 보도되었죠. 이런 아이템을 간혹 마주칠 때, 후배들이 깊이 있게 취재해 볼 여건을 만들어주자는 욕구가 일었습니다.”

    

김 기자는 탐사보도팀을 구성할 때 충분한 취재 보조 환경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했다. 우선 팀장이었던 김의철 기자와 의논, 10년차 전후의 기자들의 주요 출입처와 관심사를 골고루 안배해 팀원을 선발했다. 경쟁률도 높았다.

    

“팀장을 맡은 뒤에는 추가로 팀원을 보강했지요. 제가 팀장을 할 당시 기자들이 제일 많았습니다. 원하는 만큼은 아니지만 회사의 지원도 꽤 충분한 편이었습니다.”

    

방송사로는 처음으로 두 명의 석사급 리서처를 고용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른바 엑세스 (Microsoft Access)나 SPSS를 이용해 고급 정보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전문연구원이었다. 김 기자는 이들을 <쌈>팀과 탐사보도팀에 각각 배치하고, 정보콘텐츠팀에서 문헌정보나 정보처리를 전공한 인력을 파견 받아 업무를 분담했다.

    

“정기적으로 기획을 했지요. 제작기간이나 방송시점을 정해두지 않고 ‘이야기’될 때까지 취재하되, 난상토론을 통해 대다수 팀원들의 동의할 때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동의가 없을 경우 함께 제작하는 리포트의 질이 떨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김 기자는 의견을 제시하되 팀원들에게 무엇을 강요하지 않았다. 취재하려는 기자가 아이템에 자신감을 가졌을 때, 해당 소재의 ‘의미’, ‘취재가능성’ 그리고 ‘시의성’을 고려해 결정했다. 장기적인 기획의 경우 방송되는 시점을 최대한 예측해 시의성을 판단하기도 했다. 

    

“김 선배의 리더쉽은 무척 합리적이었어요. 같은 연배의 데스크들과 달리 항상 공부하면서 취재에 함께 참여했죠. 데스크를 보면 어떤 팩트가 더 보강되어야 하는지 짚어주었기 때문에 원고에 힘이 생겼습니다. (KBS 김태형 기자)

    

여러 기자들의 그런 건의와 논의를 거쳐 탐사보도팀이 태동한 것. 그만큼 함께 활동했던 동료기자들에 대한 애착이 클 듯 했다. 김 기자는 특히 최경영 기자를 생각할 때 가슴이 아프다고 이야기하며, 유능한 동료기자들이 예전처럼 취재현장에 복귀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좋은 시절에 할 만한 여건 다 되면 기자가 할 일이 있나요. 아이러니하지만 사회가 어렵고 문제 많을 때 기자가 필요한 거지, 태평성대에 기자가 뭐 필요합니까.”

    

‘호족’감시, 왕건의 묘수는 어디 있나

    

다만 모든 언론사가 탐사보도 환경을 마련하기는 어려운 상황. 김 기자는 부산과 울산에서 지내는 동안 지역언론의 열악한 상황을 볼 수 있었다.

    

“지역기자들도 욕구는 있지만 뉴스와 지면을 메우느라 CAR를 쓰거나 정보공개청구를 할 시간이 없습니다. 단체장이나 의원들의 예산 사용, 도덕성, 자질 등을 일상적으로 짚어주지 못하지요. 이런 상황이니, 지역에 있는 공직자들은 감시를 안 받고 사는 셈입니다.

    

김 기자는 특히 공직자 인사검증이나 예산감시를 힘주어 말했다. 어떻게 예산이 집행되는지를 아는 건 납세자의 권리이고, 이것을 시민 대신 분석하고 알리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중앙언론에서는 그나마 국회나 시민단체에서 나오는 자료를 활용할 수 있는데, 지역은 그런 기능이 거의 없다고 봐야죠. 공직자들의 자질, 예산집행과정, 도시계획 같은 부분을 감시해 잘못된 것이 있으면 밝혀내는 것이 제일 중요한 언론의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대변인의 대변인’이 아닌 ‘난세의 기자’

    

쉽지 않은 일로 들렸다. 김 기자가 강조한 언론의 역할에 공감한들, 모든 기자가 ‘보도’를 ‘탐사보도’로 여기는 자세가 어찌 쉬울 것인가. 어떻게 준비하고 훈련해야 할 지, 24년차의 ‘선배’기자에게 후배기자 및 학생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무엇보다 사회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 합니다. 2003년 미국의 블레이드 (the Blade)라는 중급신문사에서 베트남전의 ‘Tiger Force’ (특수부대) 만행보도로 퓰리처상을 받았습니다. 세 명이 한 조였는데, 출장비가 없어 자비로 취재를 하고, 또 관련 문서를 열람하기 위해 열 시간이 넘는 거리를 몇 번이나 차로 오갔답니다. 이런 저널리스트의 소명의식이 필요하겠지요.”

    

평소에 바둑의 기보를 보듯 좋은 기사와 보도를 많이 접하고, 또 어떻게 프로그램을 만들었을지 고민해보는 것도 중요하다고 김 기자는 덧붙였다. BBC의 파노라마, PBS의 프론트라인이나 AIR (American Investigative Report, 탐사보도 재구성 프로그램) 와 같은 프로그램들을 추천하기도 했다. 데이타를 다루는 Excel이나 SAS를 다루는 연습을 하고, 열린정부 사이트 (Opengov.or.kr)를 활용해 ‘취미생활’처럼 정보공개청구를 하는 요령은 덤. 그 동안 기자가 어떻게 취재활동을 해왔는지 알 수 있는 조언들이었다. 

    

“기자란게 원래 탐사보도를 해야 하는 겁니다. 존 필저는 요즘 기자들이 ‘Spokesmen of Spokesmen, De-briefers of Briefers’ (대변인의 대변인)가 되고 있다고 했지요. 베껴쓰고 받아쓰는 기자, 엄밀히 따지면 기자가 아닙니다. 요새 뉴스를 보면 기자가 독자적으로 취재한 보도가 없습니다. 언론의 자화상이지요.

    

일을 좋아하는 흰 머리의 팀장. 김 기자가 쌓아온 시선의 깊이를 다시 보도에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물론 ‘탐사보도’가 아닌 ‘보도’에서다. 모든 보도는 탐사보도여야 한다는 말이, 기자와 헤어지던 여의도의 새벽에 짱짱하게 울렸다. 그는, ‘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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