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메일로 기록된 나의 추억들


메일로 기록된 나의 추억들


SBS 김수영 기자


 


 


 



 


딸깍 딸깍


새벽부터 마우스 왼쪽 버튼을 하나씩 누르기 시작한다. 필요 없는 메일을 지우기 위해서다.


수많은 이름으로 메일이 도착한다. 제목을 훑어보고 가장 먼저 제거되는 것은 각종 광고 메일. 특종, 제보, 공보담당, 홍보실 이름을 가진 메일은 적어도 내용은 보게 된다. 하지만 대부분 기사거리가 되지 않는 것뿐이다. 전체 선택을 하고 시원하게 모두 지워버리고 싶지만 그것은 위험하다. 자칫 중요한 일정, 소중한 제보를 놓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참 자판을 누르다보면 제법 시간이 흐른다. 오늘도 도착한 메일 가운데 소득은 없다. 다른 계정의 메일도 열어봤지만 마찬가지다. 지우는 것조차 힘겹다. 이메일은 귀찮은 존재가 됐다. 정작 중요한 제보는 전화로 온다는 말처럼 메일함은 홍보성 글로 넘쳐 난다. 친구 이름으로 오는 낚시성 광고 메일도 이제 익숙해졌다. 익숙하지 않은 자판을 두들기며 소식을 전하던 정겨운 메일은 이제 사라졌다. 마치 우체국이 손으로 쓴 편지 보단 각종 고지서로 가득 차 버린 현실처럼


 


그리워졌다. 예전 서로를 배려하고 따뜻한 말을 주고받던 내용이 담긴 메일을 다시 보고 싶어졌다. 영화 <건축학개론>이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추억을 들춰냈기 때문일 것이다. 99년 처음 계정을 만들었던 D사의 메일을 다시 열어보았다. 너무 오랫동안 접속하지 않아 아이디와 비밀번호조차 생소하다. 991218일에 받은 것이 첫 메일이다. 중학교 때 은사님이다. 이메일이 편지 같지도 않은 것 같아 이상했는데 써 보니까 편리하다는 선생님의 말씀이 새삼 와 닿는다. 현재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과거에 미처 몰랐던 뒷이야기가 담겨 있다.


 


재수 때 힘겨웠던 시간을 토해낸 메일도 있다. 세상에 모든 고민과 고통을 혼자 짊어지고 나만 힘든 것처럼 스스로에게 메일을 보내기도 했다. 불안감에 몸서리 칠 때 보낸 메일에 대한 답은 항상 고맙다’, ‘힘내라지금 생각해보면 낯간지러운 말들을 주를 이룬다. 서로를 격려하면 긴 수험 생활을 함께 했던 동료들이 메일 상대다.


 


이성 친구에게 친구라는 말을 앞세워 감정의 줄타기를 한 것도 눈에 띈다. 관심이 있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게 하기 위해 전체 메일을 보내고 모호하고 현학적인 말로 슬며시 감정을 표현했다. 쿨하게 보이기 위해 떠나간 인연에게 이형기의 낙화를 보내기도 했던 그 시절, 그 순진함이 지금은 그립다.


 


과거를 추억하고 있을 때 다시 현실로 되돌아오게 해준 것은 지우다 지쳐 남겨놓은 성인 광고 메일이다. 주변을 둘러보고 서둘러 삭제한다. 계정마다 용량을 넉넉하게 늘려줘서 이제는 굳이 메일을 자주 지울 필요가 없다. 하지만 남겨두고 싶은 추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