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란 이름] ‘멋’과 ‘친구’보다 ‘신뢰’를 얻고 싶다


친구보다 신뢰를 얻고 싶다


갈등, 오해, 극복, 이해가 빚어낸 신뢰그 빛나는 이름


 


SBS 뉴스텍 정상보 기자


 


 




얼마 전 회사 후배가 뜬금없이 물었다.


선배는 어떤 부모가 되고 싶어요?


글쎄존경 받는 부모가 되고 싶다.


? 웬 존경? 촌스럽게친구 같은이나 멋있는부모가 아니고?


난 사실 부모님을 존경한다. 아주 특별하신 분들은 아니지만,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며 솔선수범하고 인자하신그런 나의 부모님을 존경한다. 물론 낳아주고 키워주신, 그리고 오랜 시간 경제적 정신적 노력을 기울여주신데 대한 고마움이 전제되어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런데 선배는 부모와 좀 다르다. 직장을 그만두거나 옮기게 되면 바뀔 수 있는 게 선배이다. 또한 인생 선배로서의 도의적 책임이나, 회사 동료로서의 형식적 관계 외에 필수불가결한 의무나 역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누군가 내게 어떤 선배가 되고 싶으냐?’고 묻는다면 그건, ‘어떤 부모가 되고 싶냐고 묻는 것보다도 좀 더 어려운 문제가 된다. 지금부터 그 어려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한다.


 


요즘 추적자라는 드라마가 SBS에서 방송되고 있다. 억울하게 딸을 잃은 아빠가 거대한 권력에 맞서 딸의 복수를 해 나간다는 스토리이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인 백홍석(손현주 분)은 경찰이다. 하지만 딸의 복수를 하는 과정에서 직장도 잃고, 심지어 법정 살인을 저지르고, 탈옥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형사과 선배 황반장(강신일 분)과 후배 조형사(박효주 분)는 자신들의 피해와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지켜주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심지어 법을 어겨가면서도 선후배의 의리를 지킨다. 왜일까? 백홍석이 위험에 처했을 때 황반장은 이런 말을 한다. “내가 지난


20년 동안 우리 와이프보다 더 많이 시간을 보낸 게 바로 너다. 함께 잠복하며 새운 밤도 수


없이 많다.” 그들에게는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며 세상의 법보다 중요한 서로간의 신뢰가 있는 것이다. 물론 황반장의 어려운 집안 사정 때문에 그들의 관계가 심각한 위기를 맞기는 하지만, 그들 내면의 근본적인 신뢰를 시청자라면 누구나 느낄 수 있다.


 


회사에는 참 다양한 선배들이 있다. 누가 봐도 정말 일을 잘하는 선배, 항상 새로운 장비와 테크닉을 탐구하고 분석하는 선배, 아주 착해서 근무도 잘 바꿔주고 회사생활도 잘 도와주는 선배, 아주 훌륭한 가정 생활을 하는 선배, 재테크에 탁월한 선배 등등. 반면 후배들을 별로 신경 쓰지 않고 지낸다거나, 상관에게 지나치게 아부하는 모습이 볼썽사나운 선배, 혹은 게으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선배도 있다. 전자에 나열한 선배들은 당연히 닮고 싶은 선배들이고 후자의 선배들은 닮고 싶지 않은 선배들이다. 문제는 이게 그렇게 똑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은 잘하지만 아주 이기적이기나, 회사생활을 잘 도와주고 착한데 업무처리가 좀 부족해 보인다거나 좋은 면과 나쁜 면에 혼재된 선배가 대다수란 것이다. 그건 어쩌면 모든 인간이 선한 면과 악한 면을 동시에 가지고 있는 것처럼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 직종은 참 특이해서 입사해서 퇴사할 때까지 거의 한 부서에서만 회사생활을 한다. 결국 영상취재팀에서 보통 30년 정도를 보내게 된다는 의미이다. 여자친구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했던 선배들에게 요즘은 육아나 노후대책에 대한 상담을 받기도 한다. 후배도 마찬가지다. 우리가 속한 방송국의 동료들은 피가 섞이지 않았을 뿐 동거동락하며 긴 세월을 함께 보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사실 참 말도 많다. 서로가 서로를 칭찬하며 격려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뒷담화를 하거나, 왕따를 시키기도 한다. 오랜 시간 함께 생활한다고 해서 꼭 좋은 관계로만 지내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서 나는 어떤 선배가 되고 싶은 것일까?


돌이켜보면 우리 부모님을 내가 존경하는 것은 단순히 40년을 함께 보냈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 세월 속에 수많은 갈등과 오해의 시간이 있기도 했지만 그것을 극복하고 이해했던 시간도 함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이제는 서로 신뢰할 수 있기 때문인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신뢰를 만들어 주신 부모님의 노력과 사랑에 대해 이제 존경한다고 말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추적자에서 백형사가 그토록 선배인 황반장을 믿고 의지하는 것은 그를 진심으로 신뢰하기 때문이다. 조형사 또한 백형사와 함께 보낸 오랜 세월 속에서 그가 진심으로 선한 양심을 가지고 성실하게 살아왔다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무한한 지원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나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신뢰할 수 있는 선배로 후배들에게 남고 싶다. 친구 같은 선배나 멋있는 선배보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