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목적인 경쟁에 ‘진실’을 놓쳤다_SBS 권지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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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가 없는 그곳, ‘서초동’
“서초동의 권력이 법원으로 넘어간 지 오래됐어. 앞으로 법조기자가 살 길은 법원 취재야.”
2008년 여름, 서초동에 처음 온 내게 오랜 기간 법조 출입을 했던 선배가 해 준 말이다. 7년이 지난 2015년 2월, 또 다른 법조기자는 후배에게 이렇게 말했다. “검찰 중심의 법조 취재 방식은 변해야 해. 앞으론 법원 중심의 기획 기사가 나아갈 길이야.”
3년이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4년이면 대학 졸업장도 받을 시간인데, 합쳐서 7년이 지나도 법조기자들은 같은 말만 하고 있다. 웹 2.0의 기본정신인 ‘개방, 참여, 공유’도 이미 옛말이 된 마당에 취재 방식의 변화도 있을 법하지만, 여전히 고래古來의 방법 외엔 답이 없다. 변화가 없는 곳, 그곳이 서초동이고, 법조다.
더욱이 취재 환경은 나아지기는커녕, 나빠지고 있다. 사람 취재 말고는 달리 뾰족한 수가 없고, 정보를 쥔 검사들을 만나기는 하늘에 별 따기다. 어렵사리 갖는 티타임은 신선들이 선문답 하듯 이뤄지기 때문에 ‘팩트’ 한 줄을 알아채기가 힘들다. 덕분에 마감 시간만 되면 곳곳에서 탄식과 신음이 들린다. 선배는 신입 법조기자에게 “네가 전생에 잘못을 저질렀기 때문”이라며 위로(?)하고, 탈脫법조를 한 기자에게는 ‘조상의 은공’이라며 축하하는 게 일상이 됐다. 법조 탈출에 성공한 기자는 ‘다시 돌아온다는 징크스’를 깨기 위해 사비를 털어 기자실에 간식도 돌려보지만, 열의 아홉은 다시 돌아온다.
치열한 경쟁의 ‘아사리판’… 정보의 비대칭
법조기자는 왜 이렇게 힘들까. 법조가 언론계에서 스트레이트 경쟁이 가장 심한 곳이라는 이유를 찾지만, 근본적 원인을 꼽자면 지나친 정보의 비대칭성 때문이다. 민주화 이후 ‘검사’의 권위와 권한은 약화됐지만, 도리어 ‘검찰’의 역할과 업무영역은 커졌다. 토론과 합의로 해결할 문제들은 어김없이 서초동으로 넘어왔다. 외부에선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이 훼손됐다며 ‘사법의 정치화’를 비판하지만, 그 전에 ‘정치의 사법화’가 단초를 제공한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단적인 예로 NLL 대화록 유출, 청와대 문건 파동 등 대부분 국가를 뒤흔든 사건의 출발은 여의도였지만, 그 끝은 서초동이었다. 이 때문에 혹자는 서초동을 무한 수렴의 공간이라고 하고, 혹자는 하수 종말 처리장이라고 한다.
어찌 됐든 정보는 서초동으로 몰리고, 검찰이 그 정보를 독식한다. 불친절이 미덕인 검찰은 입을 닫기 일쑤다. 외부의 견제와 검증이 차단된 정보의 독식은 왜곡 또는 변질을 수반하고, 어김없이 납득하기 어려운 수사 결과로 이어졌다. 왜 여전히 검찰 중심으로 취재하는지에 대한 답도 여기에 있다. “공소장이 법원으로 넘어가면 이미 늦었어. 그 전에 숨은 사실이 뭔지, 확대한 게 뭔지를 알아채야 하는데, 그 역할은 법조기자만 할 수 있어.”라고 선배들은 말한다. 후배들은 거기서 법조기자의 존재 가치를 찾고 있다.
이런 이유에서 연일 신음 소리를 내던 법조기자들은 취재만 시작되면 눈이 반짝거리고, 밤샘 뻗치기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큰 사건이 터져 ‘아사리판’이 될수록 소진됐던 배터리는 다시 충전되고, 경쟁적으로 취재한다. 그러면서 보람을 느끼지만, 또 잘못도 저지른다. ‘진실’에 대한 취재가 아닌 ‘검찰 수사’ 취재에 맹목적이 됐을 때 벌어지는 일이다.
피의사실 공표, 법적 진실과 실체적 진실의 간극
팩트 한 줄을 취재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지만, ‘피의사실 공표’라는 상반된 현실도 있다. 형사사법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에 상반되는 건데, 이런 문제를 검찰 탓으로만 돌리는 건 언론의 무책임이다. ‘여론몰이’인 피의사실 공표는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뤄지지 않는다. 기자 개인의 역량(?) 또는 이해관계에 따라 획득된 정보의 양과 질이 달라진다. 피의사실 공표의 폐단을 막기 위해 검찰이 기소할 때만 수사 기사를 쓰라고 요구하는 법조인도 있다. 그런데 이는 ‘기자의 기사’와 ‘검사의 공소장’이 같다는 말에 불과하다. 범죄사실에 불과한 공소장이 실체적 진실을 찾는 기사와 같을 수 없다.
공자님 말씀 같지만, 결론은 역시 기자의 몫이다. 기자의 올바른 방향 설정과 가치 판단 말곤 대안이 없어 보인다. 같은 팀의 선배 법조 기자가 한 말을 되새겨 본다. “팩트 한 줄을 취재할 때 검찰은 견제 대상이고, 기사를 쓰는 건 기자라는 생각을 잊지 않는다면 정확한 기사를 쓸 수 있다. 불과 1년 전에 증거조작 사건이 일어나지 않았느냐.” 동감하는 말이다. 돌이켜 보면, 서울시 공무원을 간첩 혐의로 수사한다는 단독 기사를 쓰지 못한 것보다 그 과정에 증거 조작이 있었다는 ‘진실’을 놓쳤다는 게 뼈아픈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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