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만한 릴레이] 나는 자연인이다

[만만한 릴레이]
나는 자연인이다
도심 속 전원田園을 찾아서

사진 7_캠핑장

KBS 최건일 기자

10년 전 아파트 동대표가 됐다. 주차 문제가 개선되지 않아 수차례 항의하다 결국 직접 나서서 해결했다. 1년 후에는 입주자대표가 됐다. 자랑이다. 1층에 살았는데, 입주자대표가 되니 집 앞 조경 관리가 달라졌다. “나무를 몇 그루 더 심었습니다. 하하하” 관리소장이 웃는다. ‘특별히 신경 써서’ 빼곡하게 심은 조경수들은 사시사철 해를 가렸다. 그런데! 그 때, 내 눈에 들어온 아파트 한 귀퉁이가 있었으니, 매매 계약서에서는 전혀 존재감이 없었던 공용면적 바로 ‘마당’ 되시겠다.

자연과 하나 된 아파트

사진 1_아파트 마당 사진 2_우거진 숲
두어 평 남짓 베란다 앞 잔디밭은 울타리 안에서는 밖을 살필 수 있었으나, 밖으로는 안이 노출되지 않는 지리적 특징을 지니게 됐다. 실상은 출입도 어려운 맹지盲地임에 틀림없지만 베란다에 쪽문을 내고 나무 계단을 달았더니, 자연과 아파트가 하나 되는 물아일체物我一體의 융합 공간으로 탈바꿈됐다. 돗자리를 펴고 지상 3.5미터쯤에서 소멸할 만큼의 데시벨로 음악을 듣는다. 바람에 뒤섞인 어느 나무의 향이라도 맡을라치면 심장이 느리게 뛰고 근육이 서서히 이완된다.

이중환이 택리지擇里志에서 말한 복지福地가 이 곳이랴, 길지吉地가 이 곳이랴. 아파트살이에 ‘앞마당’이 가당키나 한 일이더냐. 머리 위로 14층을 이고 살면서도 마당 있는 전원주택의 꿈을 이뤘으니 안분지족安分知足하지 않을 수 있으랴. 아마 이때부터 도시와 전원의 경계를 스스로 모호하게 여기고, 내가 살아가는 공간-도시 속에서 끄집어낼 수 있는 자연을 찾아 즐기기 시작했던 것 같다.

마당을 잃고, 유목생활을 시작하다

사진 4-1_평화공원
빛이 안 드는 집에 빚은 많았다. ‘부동산 폭락 전망가’이신 어느 선한 대인大人의 조언을 접하고는 바로 집을 처분했다. 그 집은 길지吉地가 분명했다. 팔자마자 수억 원이 올랐다. 그저 마당 하나를 잃었을 뿐이라고 안위安慰하던 도시 자연인은 하는 수 없이, 서울 마포에 새로운 임시 거처를 정하고 ‘2년 갱신형’ 유목 생활로 회귀했다. 그리고는 도심 속 자연을 찾아 광장을 떠돌았다. 일찍 퇴근한 저녁이면, 어린 두 딸과 연남동 ‘연트럴파크’로 나선다. 술판이 크게 벌어지는 홍대와 연남동을 피해, 성미산로 끝자락 잔디밭에 뽀로로 돗자리 편다. 앉은 자리를 중심으로 바람이 불어오는 쪽에 모기향과 랜턴 조명을 설치해 흡혈방지 결계를 친다. 집에서 먹던 밥과 반찬 그대로다. 아이들은 소풍이라도 나온 냥, 어찌나 잘 먹는지 툭하면 인근 편의점에서 즉석밥을 데워 왔다.

휴일에는 서울 월드컵경기장 옆 ‘평화의 공원’을 자주 찾는다. 공원 안쪽으로 더 들어가면, 인공 호수 건너 한적하고 아름다운 숲이 나온다. 2015년 서울 정원 박람회가 열렸던 곳인 만큼 조경이 남다르다. 그늘막을 치고, 인근 대형마트에서 구입한 접이식 테이블까지 펼치면 하루 종일 전원생활이다.

“인간은 도시를 만들고, 도시는 인간을 만든다”

사진 5_운동장 캠핑
큰 아이가 초등학교 4학년 때, 학교에서 가족 캠핑 희망자를 모집했다. 캠핑 장소는 학교 운동장. 고층 아파트로 둘러싸인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캠핑이라니… 도시에 사는 아이들이 진심으로 안쓰러웠다. 그래도 아이들 성화에 급한 대로 텐트와 침낭, 화로를 구입해 행사에 참가했다. 말 그대로 ‘빌딩 숲’. 금요일 밤에 시작된 1박 2일의 도심 캠핑은 상당히 이색적이었다. 밤이 깊어가면서 하나 둘씩 꺼져가는 아파트 불빛을 헤아리고, 주변이 어두워진 틈으로 낯선 별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냈다. 조용히 도시를 바라본다. 통상 도시를 벗어나 숲 속이나 강가에서 원초적인 삶을 체험하는 것이 인간의 본질을 찾아가는 자연스러움이라 여겼는데, 내가 살고 있는 도시 한복판에서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인류가 만들어 낸 문명을 직시하는 시간 또한 역설적으로 자연스러웠다.

사람들은 도시는 나쁘고, 전원은 좋게 여기는 경향을 보인다. 이 상대적 인식은 ‘자연스러운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나무 위의 까치집은 자연적인데, 인간이 만든 도시는 비자연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도시 또한 문명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인간이 자연적으로 행한 결과물인데, 이젠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물론, 그 안에서 생명이 움트고 인간과 자연이 소통할 수 있는 도시라면 더할 나위 없으리라.

그리고, 캠핑에 대하여: 그 지속가능성의 한계
이제는 트렁크가 커다란 SUV로 차를 바꾸고 싶을 만큼 어지간한 캠핑 장비를 갖췄지만, 그래도 1박 2일 캠핑을 자주 가기는 쉽지 않다. 가족,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6학년의 주말이 여간 바쁜 게 아니다. 또 7살 딸아이가 느끼는 무료함도 캠핑의 지속성을 떨어뜨리는 주된 이유다. 어린이집에 같이 다니는 남자친구 가족과 같이 가면 가겠다는데, 그건 내가 싫다. 그렇다고 주말에 나 혼자 야영을 떠나기에는 아직 나는 가족의 일원으로서 확고한 자리를 잡지 못했다. 버려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여전히 도심을 전전한다.

사진 7-1_캠핑장 그림

캠핑의 계절이 오고 있다.

다음 주자는 요즘 ‘KBS 2TV-대화의 희열2’ 프로그램에 고정 패널로 출연하고 있는 KBS 신지혜 기자에게 ‘방송 뉴스’가 아닌 재미난 ‘방송’ 이야기를 듣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