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는 봤나요? ‘2미터 폭설’_KBS 강릉 강규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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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 강릉 강규엽 기자

심심하면 대설특보가 내리는 강릉이란 동네에 살다보니, ‘이번에도 그저 그런 눈이겠거니’ 했습니다. 주말 당직하는 후배기자가 “왜 하필 주말 앞두고 특보인 거죠?”라며 툴툴대는 것조차 귀엽게 느껴질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2월 7일 금요일, 강릉에 내린 눈이 20센티미터를 넘어서자 상황이 급변했습니다. 강릉에 ‘뼈가 이미 절반 이상 묻힌’ 데스크는 전원 대기령을 내렸고, 곧이어 전원 소집령으로 격상시키더군요. 그렇게 눈과의 사투는 시작됐습니다.

‘고립 마을’ 속으로
초기 임무였던 중계차를 마치고 나자 “내일은 고립 마을로 가라.”는 데스크의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아이젠과 스패츠를 주섬주섬 챙겨 찾아간 곳은 고성군 간성읍 흘리라는 마을. 2미터 가까운 눈이 내린 탓에 마을 진입로부터 취재 차량을 포기하고 걷기 시작했지요. 사실 ‘고립 마을’이란 표현은 언론이 만들어낸 자극적 용어일 수 있습니다. 이동하려고 맘먹는다면야 어떻게든 못 갈까요? 하지만 나름 건장한 취재진도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눈길에 금세 지치는데, 산간 마을 어르신들은 오죽할까 싶더군요. 30여 분 걷는 것만으로도 몸이 푹 퍼져버릴 정도였으니까요. 고립 마을 앞에 ‘사실상’이란 액세서리를 달까도 싶었지만, 불편을 겪는 분들에게는 그마저도 사치스럽다는 판단이 쉽게 내려졌습니다.

여차저차 돌아오는 길도 마음이 편치 않았지요. 취재진조차 무리해서라도 들어가기 어려운 ‘진짜’ 고립 마을은 접근조차 하지 못 했으니까요. 평상시에도 걸어서 한 시간 거리라는데, 허리까지 차오른 눈을 헤치고 들어갈 엄두는 나지 않았습니다. 데일리 리포트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이 그럴 듯한 변명거리가 된 것에 솔직히 감사했습니다. (다음에는 좀 더 체력을 길러 1박 2일 일정을 감안하고 취재 계획을 짜려 합니다.)

아찔한 눈사태 피했더니… “영상은 담았어?”
하루는 눈사태가 잇따르던 미시령 관통 도로를 찾아갔습니다. 체인을 감지 않으면 통행 자체가 제한되는 구간이었습니다. 슬금슬금 고갯길을 기어오르며 눈사태가 일어날 수 있겠다 싶은 곳을 찾아다녔지요. 전날 저녁 눈사태가 일어나 수 시간 동안 통제된 데다, 이후에도 계속 눈이 내리고 있던 터라 기다릴 가치는 있었습니다.

하지만 눈사태는 우리 카메라를 피해갔습니다. 고갯길을 올라오는 차량을 촬영하는 도중 취재진 바로 옆을 눈 더미가 덮쳤는데요. 워낙 아찔한 상황이라 미처 카메라를 돌릴 여유도 없었습니다. 또 한 번은 취재 차량 백여 미터 앞에서 눈사태가 일어났습니다. 그렇게 위험한 상황을 두 차례 겪고 나자 철수를 고민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한 선배가 영상은 찍었냐고 묻더군요. 헐. 씁쓸함 그 자체. 하지만 결국은 두어 시간 더 취재를 하고 말았습니다. 그 선배 때문은 아닐 테고, 아마 ‘영상을 찍었으면 대박이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을 우리 취재진도 어느새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지요.

웃을 수도 울 수도 없었지만…
39전국에서 수많은 자원봉사자들이 강원도를 찾아왔습니다. 따뜻한 온정이 연일 이어지는 상황. 하루는 저희 취재진도 본의 아니게 다른 이들의 도움을 받게 됐습니다. 비닐하우스 피해 현장을 찾아가던 중 취재 차량이 눈길에 빠져 꼼짝달싹 하지 못하게 된 겁니다. 삽질도 해보고, 있는 힘껏 밀어도 보고. 그래도 취재 차량은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안 하더군요.

큰일 났구나 싶었을 때, 마을 주민 한 분이 나타나셨습니다. 본인의 트랙터를 이용해 취재 차량을 도와주시겠다는 거였죠. 하지만 눈이 어지간히 많이 오긴 온 모양입니다. 그 트랙터마저 농수로에 바퀴 한 쪽이 빠지고 말았습니다. 도와주려다 사고를 당했으니, 우리는 미안함에 안절부절. 그런데 트랙터를 빼내보겠다며 나선 다른 마을 주민의 차량도 또다시 농수로에 빠져버렸습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게다가 이어 달려온 차량 한 대까지 또 빠졌습니다. 연락을 취했던 보험회사 차량도 왔다가 눈길에 주저앉아 버리고.

앞이 안 보일 정도로 쏟아지는 눈을 두 시간여 ‘얻어맞으며’, 여기저기 수소문을 했지요. 난국을 타개할 수 있는 누군가를 찾아서요. 끝내 초대형 트랙터를 한 대 찾아내 상황을 수습했습니다. 취재 차량을 도우려다 마을 전체가 시끌시끌하게 고생했지만, 다들 당연한 일을 한 거라며 너털웃음으로 저희 어깨를 토닥여주시더군요. 좋은 보도를 많이 해달라면서. 하마터면 눈물을 보일 뻔했습니다. 강릉시 박월동 주민 여러분, 다시 한 번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