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기자가 만난 방송기자] 돌발영상의 부활을 실천하며

 

 

 

 

방송시간이 임박했는데 ‘사측 인사’가 편집기 전원을 뽑아버린다. ‘펑크’ 위기에 놀라 잠에서 깬다. 과거 돌발영상을 만들던 때가 지금도 가끔 이상한 꿈으로 소환되곤 한다. 지금은 이런 나쁜 꿈마저 그리움으로 다가선다.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과 해직사태 과정에서 회사가 은근슬쩍 없애버린 돌발영상은 갈수록 멀어져만 간다. 돌발영상을 처음 만든 노종면 선배는 9년째 강제해직 상태, 후임자였던 필자 또한 갖은 징계를 겪고 나서 악몽으로나 돌발영상을 그리워하는 신세다.
그런데 얼마 전 돌발영상이 ‘노조 돌발’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했다. 평소 기특한 짓만 하는 후배 하나가 돌발영상을 부활시키겠다며 새로운 돌발영상을 만들어 SNS에 올리기 시작한 것이다. 편집 기법은 업그레이드되고 풍자와 위트는 시샘이 날 정도다. 한물 간 왕년의 가수가, 자신의 히트곡을 화려하게 리메이크한 후배 가수를 보는 반가움? 아니 그보다 훨씬 크고 벅찬 감동으로 YTN의 유일한 여성 촬영기자이자 새로운 돌발영상 제작자인 김현미 기자를 인터뷰했다.

 

 

일시  2017년 2월 20일
장소  서울 상암동 YTN 노동조합 사무실
인터뷰  임장혁(前 돌발영상 제작자)

 

 

소망’한다면 몸으로 ‘실천’하라!

‘노조 돌발영상’은 왜 제작하게 됐나? 노종면과 임장혁에 대한 도전인가?
(웃음)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가 벌어지고 이를 보도하는 언론사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내에 ‘돌발영상’이 부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돌발영상’을 기억하고 그리워하는 시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회사가 스스로 ‘돌발영상’을 다시 할 것 같지는 않으니 우리끼리라도 되살리려는 노력을 해보면 어떠냐는 말들이 많았다. ‘돌발영상’을 상기할 수 있는 제작물을 만들어 SNS상에라도 올리면, 그것이 운 좋게 주목을 받는다면 회사도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있었다. 노조 집행부의 지원으로 실행에 옮기게 됐다. 돌발영상 부활을 소망만 하지 말고 몸으로 실천하겠다는 의미가 컸다.

‘노조 돌발’을 보는 사람들은 예전 ‘돌발영상’과 자연스레 비교할 것이다. 차별점은 무엇인가?
목적은 보는 사람들에게 예전 돌발영상을 생각나게 하고 환기시키는 것이다. 때문에 예전 돌발영상과 더 비슷하게 만들려는 노력은 했어도 일부러 다르게 보이려고 노력하지는 않았다. 최대한 닮으려 했던 만큼 내세우고 싶은 차별점도 없다. 다만 차이점은 있다. (저작권 문제 등 때문에) 촬영 원본 영상을 못 쓰니까 화면 확보에 어려움이 있어서 패러디를 가미한다든가, 내 나름의 가공을 하는 상황이 됐다. 여기저기 흩어진 자료화면들을 취합해 제작하다 보니 현재 벌어지는 단일 상황에 대한 구성보다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반추하는 구성이 더 잦다. 처음 제작했던 ‘과거의 박근혜가 현재의 박근혜에게’ 편은 예전 돌발영상에서는 쉽게 볼 수 없던 구성이라 생각된다. 제작 여건의 차이 때문에 의도하지 않은 그런 식의 차이점은 생겨났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시사 다큐멘터리 느낌도 든다. 엄청나게 다양한 화면을 활용하던데 혼자 다 찾나?
혼자 한다. 무작정 화면을 뒤지는 건 아니다. 먼저 독서하듯 많은 기사와 글을 읽고 있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관련 영상을 유튜브나 방송된 뉴스 화면을 중심으로 찾아본다. 예를 들어 탄핵정국 속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입장과 관련된 내용을 다뤄보겠다 생각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한 과거와 현재의 발언들부터 서치하고 하나의 줄거리와 주제를 대강 잡는다. 그리고 그 발언들이 담긴 실제 영상들을 찾기 시작한다. 영상이 있는 발언도 있고 없는 발언도 있는데, 그렇게 뒤지다 보면 주제에 맞는 다른 발언을 우연히 찾기도 한다. 시간과 맥락을 재구성해 편집을 하고 자막과 그래픽을 입힌다.

기자로서의 만족도가 ‘노조 돌발’의 원동력

제작 시간이 길 것 같다. 회사 일을 해야 하고 세 살배기 아이 엄마로서 육아도 부담일 듯한데, ‘노조 돌발’은 언제 만드나?
회사 업무 끝나면 틈나는 대로 노조사무실에 있는 편집기 앞에 앉는다. 그때그때 만드는 내용에 따라

달라지긴 하지만 주제를 정하고 관련 화면 찾는 데에만 5~6 시간이 걸린다. 편집과 그래픽 작업까지 끝내는 데 편당 7시간 정도 걸리는 것 같다. 일주일에 두세 편 제작하는데 마음 같아서는 매일 한 개씩 만들고 싶다.

‘노조 돌발’이 방송을 타는 것도 아니고 주머니에 생기는 것도 없는데. 왜 하나?
내가 지금 하고 있는 회사 일, 현업에 대한 만족도가 떨어지는 게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알리고 싶은 것도 많고, 하고 싶은 말도 더 많은데 현업을 통해 촬영기자로서의 욕구를 다 드러낼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고 프레임에 갇혀 있는 느낌이다. 기자로서의 현업에 만족도가 높았다면 굳이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지금 YTN에서 생산해내는 리포트의 프레임에서 발휘하고 분출하지 못하는 것들, 만족하지 못하는 부분을 조금이나마 충족할 수 있다는 것이 ‘노조 돌발’을 만드는 이유이다.

 

촬영기자는 역사의 목격자…목격담은 직접, 제대로!

본업은 촬영기자다. 어찌 보면 취재기자 없이 촬영기자 혼자 화면부터 메시지 생산까지 도맡는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셈인데?
촬영기자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상황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야 한다. 그야말로 찍는 수준에 그쳐서는 안 된다. 예를 들어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나오는데 세월호 유가족들이 옆에서 항의 시위를 하고 있을 경우 대통령이 걸어가는 모습만 촬영하고 유가족은 배제하는 방식의 화면만 담으면 그냥 찍는 수준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상황이 주는 메시지들을 현장에서 습득해야 하고 습득한 메시지를 영상에 담아 보도가 나가도록 하는 것이 촬영기자라고 생각한다.
현재 방송 보도는 현장에서 그림 찍어오는 사람 따로 있고 텍스트를 쓰는 사람 따로 있다. 텍스트를 쓰는 취재기자와 영상으로 표현하려는 촬영기자들은 스토리텔링 방식이 분명히 다를 수 있다. 만일 취재기자가 촬영까지 해서 시청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반대로 촬영기자가 현장에서 알게 된 팩트들을 자신이 촬영한 화면과 한데 묶어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 지금처럼 분업에 의한 스토리텔링과는 많이 다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돌발영상’ 역시 취재와 촬영, 편집이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목받는 스토리텔링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이렇게 되면 뉴스의 영역이 매우 넓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촬영기자의 역할과 영역도 더 넓어져야 한다고 본다. 요즘 1인 미디어가 비슷한 일을 하는 것도 같은데 그들은 장비나 시스템 등 물리적 여건이 갖춰진 방송사 소속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것이다. 방송사에 소속된 우리 촬영 기자들은 여건이 훨씬 나을 것이다. 촬영기자는 역사적 사건의 진정한 현장 목격자이다. 목격자가 제대로 된 목격담을 직접 전달해야 하지 않는가.
2008년 입사던데, 그때는 YTN 해직사태로 대표되는 권력의 언론장악이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그런데 아직 사태는 진행 중이다. 어떤 감정인가?
얼마 전에 입사한지 만 9년이 됐다. 신입 때부터 낙하산 사장 반대투쟁과 해직사태, 보도통제를 눈으로 보고 몸으로 겪었다. 언론과 권력의 관계에 대해 많은 걸 느꼈고 그만큼 괴롭고 힘들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다른 YTN 공채 기수와 달리 12기, 내 동기들 중에 그만둔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점이다. 너무 일찌감치 힘들고 버거운 것들을 봐와서 그랬나? YTN 식구들이 함께 버텨냈기에 우리가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
해직사태가 벌어질 당시 처음으로 든 생각은, 좀 이상한 생각이긴 했지만, 기자들이 이렇게 탄압받을 수도 있구나 하는 점이었다. 기자가 되기 이전부터 은연중에 기자라는 직업이 어느 정도 권력이라는 생각이 있었던 것 같다. 언론은 제4부라는 말도 배웠고, 그렇게 배우는 과정 속에서 나 스스로도 머릿속에 ‘기자는 어느 정도 권력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었나 보다. 해직사태와 언론장악 과정 등을 지켜보며 ‘기자는 절대 권력이면 안 되는구나’라고 고쳐 생각할 수 있었다. 기자가 권력자들을 접하면서 ‘나도 권력이 있다’는 묘한 착각이 생기는 것 같은데 그런 부분을 스스로 얼마나 잘 정제하는가가 매우 중요한 것 같다. 기자 개인으로서도 많은 걸 깨달은 9년이었다.

‘프레임’을 깨고 ‘소외된 현장’으로

시국이 시국이니만큼 현재 노조 돌발 소재는 줄곧 국정농단 사태이다. 돌발영상이 방송으로 부활해 본인이 제작을 맡는다면 그때는 어떤 얘기들을 다루고 싶나?
취재 부서에서 취재 일정이 뜨면 촬영기자가 지정되고 함께 취재를 나간다. 그런 취재 일정에 포함되지 않는 사안들을 다루고 싶다. 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 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조명해보고 싶다. 1인 미디어들도 그런 사람들에게 집중하면서 영역이 넓어지고 주목도 받게 된 것 같다. 이른바 대안 매체의 영향력도 소외되고 배제돼 왔던 사람들과 사건들을 다루면서 커진 것 같다. ‘메이저’라고 하는 언론사들도 바로 그런 부분에 더 초점을 맞추면 파급력은 훨씬 커질 것 아닌가. 기자로서도 더 의미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꽤 많은 ‘노조 돌발’을 제작해 선보였는데, ‘노조 돌발’이 정식 명칭인가?
노조 사무실에서 노조 장비로 제작하다 보니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노조 돌발’로 부르고 있을 뿐 아직 이름이 없다. ‘돌발영상’의 부활을 상징하면서 ‘프레임’을 벗어나는 의미를 담고 있는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 싶기는 하다. 우리가 쓰는 기사들은 의도했든 아니든, 어떤 프레임을 만들거나 프레임에 갇혀 진실을 왜곡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프레임에서 벗어난다는 의미와 돌발영상의 추억이 어우러진 이름을 고민 중이다. 좋은 이름이 있으면 추천해 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