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다

특집_ 나를 만든 책들

독서의 즐거움을 알려주다
신영복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OBS 권현 기자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책 3권이 무엇인지 아나?”
갓 대학에 들어간 1993년 3월. 넓은 강의실이 순간 조용해졌다. 공부는 싫고 놀 일 많았던 신입생 시절. 꼭 읽어야 할 책이 3권이라면 괜찮은 거래였다. 수업이 끝나고 교수의 말대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그 때 빼든 책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었다.

‘감옥’과 ‘사색’이란 단어가 눈에 들어왔다.
15척 담장으로 둘러싸인 ‘끝동네’. 세상에 대한 원망과 자기 항변이 아닌 ‘사색’?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단어에 호기심이 생겼다. 책을 펴고 좀처럼 덮지 못했다. 책장을 넘기기도 쉽지 않았다. 어려운 한자가 많아서이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단어와 문장이 주는 여운 때문이었다.

“아무리 담장을 높이더라도 사람들은 결국 ‘함께’ 사는 겁니다.”
무기형을 선고 받은 저자의 옥중 서신을 엮은 이 책은 복역한지 십 년 정도 지난 뒤 쓴 편지부터 시작된다. 강산도 변한다는 세월을 몸은 좁은 감방에 갇혔지만 저자의 마음은 사람과 세상을 향해 열려있다. 나와 내 가족을 위한다며 넓은 세상에 스스로 높은 담장을 쌓고 있는 나에겐 실천하기 힘든 배려다.

“많이 가진 사람은 도리어 적게 가진 사람의 도움을 받습니다.”
소유할 수 없는 한계는 옥중에서 피할 수 없는 숙명이다. 세속에서의 물욕마저 감옥에선 사치일 것이다. 그렇다고 무소유의 실천을 가질 수 없는 재소자의 체념으로 치부할 수도 없다. 갖지 못할수록 갖고 싶은 마음은 더욱 큰 것 아닌가.

“용기는 선택이며 선택은 한 쪽을 버리는 일입니다.”
그래서 필요한 게 버리는 용기다. 버리기 위해서는 선택을 해야 한다. 선택은 골라서 취하는 게 아니라 둘 중 하나를 버리는 것이다. 버려서 손이 비어야 비로소 남을 도와줄 손이 생긴다는 게 무소유에 대한 저자의 철학이다.

“팔목에 시간을 가지고 있더라도 시간에 각박해지지 않겠습니다.”
갇힌 공간에 흐르는 시간. 군대에서는 ‘내무반 시계가 거꾸로 걸려도 시간은 간다’지만 옥중에서 시간의 흐름은 저자의 말대로 반칙이다. 하지만 끝을 기약할 수 없는 무기수는 시간의 흐름을 재촉하지도 아쉬워하지도 않는다.

“교도소의 거대한 인력을 벗지 못하고 꿈마저 징역 사는가 봅니다.”
그렇다고 이 책이 세상을 초월한 듯한 무기수의 고백으로 가득한 건 아니다. 꿈마저 구속 받는 답답함. 추운 겨울을 걱정해 가을을 반기지 못하는 부끄러움. 옥중에서 해마다 세밑을 맞는 야속함. 가족에 대한 걱정과 그리움. 수형의 고뇌가 없다면 옥중 사색은 한가로운 선문답에 그쳤을 것이다.

“새해가 겨울 한복판에 있는 것은 낡은 것들이 겨울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나에게 글쓰기의 교본이었다. 화려하면서도 과장되지 않은, 담백하면서도 단순하지 않은 문장들. 무엇보다 이 책이 즐거운 건 세심한 관찰과 사고의 깊이다. 대중에게 보이기 위해 꾸미고 고민한 글이 아니지만 시처럼 아름답고 사설만큼 힘이 있다.

종교인에게 성서가 아닌 이상 삶을 변화시킬 책이 있을까?
‘대학’을 읽었다고 ‘수신제가’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맹자’를 뗐다고 호연지기가 절로 길러지는 것은 아니다. 빼곡히 메모를 해가며 ‘탈무드’를 읽었지만 삶이 지혜로 충만해지지는 않았고 10권짜리 ‘삼국지’를 다 봤지만 장기판 말 놓듯 인생사 수읽기에 능하지도 못하다. 하지만 시험에 나올 법한 단편 몇 편이 독서의 전부였던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에게 책이 친구가 됐다는 건 이 책이 준 분명한 변화다.

그렇다면 살면서 꼭 읽어야 할 책 3권은 무엇일까?
다시 1993년 3월의 한 강의실. 학생들은 귀를 쫑긋 세웠다. 교수의 답이 걸작이다.
“일단 도서관에 가서 아무 책이나 한 권 뽑아 읽어. 그러면 다음에 어떤 책을 읽어야 할 지 알게 될 거야. 그 책을 다 읽으면 또 다음에 읽을 책이 생기지.”

독서 자체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가르침 때문인지 오늘도 나는 지하철을 타 스마트폰을 켜는 대신 옆구리에 꼈던 책을 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