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당신의 꿈은 어디에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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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불문학과 영문학을 복수전공하며 인문학에 침잠하는 시간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축복이었다. 몇 백 년이라는 시간의 무게와 그에 상응하는 시대적 변화에도 바래지 않고 살아남은 ‘진짜배기’ 글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뛰어넘어 살아 숨 쉬는 작가들의 명징한 영혼을 만났고, 그들이 지녔던 인간조건에 대한 예리하고 깊이 있는 통찰력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2학기에 걸쳐 들었던 김인환 교수님의 프랑스 시 수업에서는 평가의 중요한 부분이 ‘시낭송’이었다. 매 수업시간 모든 수강생들이 차례로 일어나서 배운 시를 통째로 암송해야했다. 당시에는 구식방법이라 생각되었지만 암송을 하면서 프랑스어의 아름다운 소리와 운율이 의미와 하나로 결합되는 시 예술을 더욱 이해하게 되었고, 당시에 배운 시들은 아직까지도 꽤나 상세하게 기억이 난다. 낭만주의 시인 라마르틴과 비니, 뮈쎄도 좋아했지만, 상징주의 시인 보들레르는 그의 일기를 찾아 읽을 정도로 인간적인 매력을 느꼈다. 보들레르의 시들은 일면 순수하면서도 쾌락적이고 이상을 추구하면서도 현실의 한계에서 고통 받고 치열하게 고민하는 모순적인 이원성을 드러내는데, 그것이 지극히 인간적이고 진실하게 다가왔다. 양면적이지만 분열되어 있지는 않고 내면의 숭고함을 끝내 놓지 않는다. 베를렌느의 우수어린, 여린 감성도 사랑했다.

 

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할 때는 주로 영문학 수업을 들었는데, 고전 시집을 사서 쉬는 시간에 읽곤 했다. 한 학기를 마치고 3주간의 겨울 방학 때 햇살이 따뜻했던 플로리다 마이애미 해변가에서 엘리자베스 베렛 브라우닝의 소넷트들을 읽으며 행복해했던 기억은 참으로 생생하다. 로버트 프로스트의 담담하고 차분한 정서도 사랑했고 오든의 소외된 것을 따뜻하고도 냉철하게 바라보는 독특한 시각도 참 좋아했다. 하지만 가장 기억에 남고 내게 큰 영향을 미쳤던 시는 20세기 미국의 흑인 시인 랭스턴 휴즈의 다음 시다.

 

“Harlem – A Dream Deferred”

 

What happens to a dream deferred?

 

Does it dry up

like a raisin in the sun?

Or fester like a sore–

And then run?

Does it stink like rotten meat?

Or crust and sugar over–

like a syrupy sweet?

 

Maybe it just sags

like a heavy load.

 

Or does it explode?

 

휴즈는 지연된, 혹은 미뤄진 꿈을 다양한 이미지로 형상화했다. 햇볕에 말라비틀어진 건포도, 고름이 흐르는 곪아버린 상처와 악취가 나는 썩은 고기로 말이다. 끈적이던 사탕이 설탕가루로 껍질을 덮은 채 말라버린 모습과 무거운 짐처럼 축 처져있는 모습도 보여준다. 꿈이 있다고 하지만, 누구나 꿈을 늘 기억하며 그 방향대로 살지는 않는다. 살다보면 일상에 짓눌려 어느새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영혼은 꿈꾸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 테고, 계속되는 현실과 이상의 부조화로 인해 꿈은 어느새 이 시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끈적이고 고름 나고 말라비틀어진 부담스런 덩어리가 되어 있을 뿐이다. 마지막 줄에서 시인은 묻는다. 그 꿈은 결국 터지고 말았느냐고. 사람에 따라 “explode”의 의미를 해석하기에 따라, 공허하게 없어졌다는 의미, 혹은 불꽃처럼 터지면서 되살아나는 의미,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내가 이 시를 접했을 때는 전자로 느껴졌고 너무 슬퍼서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작년 말에 뉴스 기사화되었던 내용인데, 한 설문조사에서 우리나라 40대 남성들이 20대 시절로 되돌아간다면 가장 찾고 싶은 것이 꿈이라고 했다. 첫사랑보다 우선이었다. 그 기사를 접했을 때도 이 시를 떠올렸다. 한국 사회 현실의 힘겨움을 이겨내며 전쟁 치르듯 하루를 살고 나면 타성에 젖고 피곤에 찌들어 사는 이유도 모른 채, 고민할 여유도 남기지 못한 채 잠이 든다. 이렇게 하루하루 쳇바퀴 돌리듯 살다보면, 내면의 꿈들은 당연히 이렇게 썩고 냄새나고 고름이 흐르는 채로 아파하고 있지 않을까.

 

대학 마지막 학년 때, 이 시를 읽고 결코 꿈을 ‘defer’하며 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러고 나서 프로스트의 시 <The Road Not Taken>의 마지막 구절처럼 꿈을 향해 어려운 발걸음을 내딛었다.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매순간 치열하게 고민하고 발을 내딛었는데 과연 나는 내 꿈이 굳거나 썩지 않고, 생생하게 잘 살리는 길을 가고 있는 것인가, 여전히 매일 고민한다. 내 영혼에 가장 솔직하고 진실한 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도 늘 생각한다. 타고난 신의 불꽃인 소중한 꿈들이 흉물스럽고 악취 나는 덩어리로 마음속에서 썩어가지 않도록 진실한 영혼의 외침에 자주 귀 기울일 것을 다짐한다.

 

왜곡된 욕심이나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거짓 욕망의 가치들을 타성에 젖어 따르기보다 진정으로 가슴 뛰게 하고, 생각만 해도 행복해지며 인생의 목적이 되어주는 각자의 꿈, 희망, 또는 바람들을 진실하게 따른다면 세상은 더 다채로워지고, 사람들 각자의 두근거리는 설렘으로 가득 찬, 더 살만하고 재미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지금 이 순간, 당신의 꿈은 어디에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