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닭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

 

지난해 YS로 애칭 되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는 많은 사람들에게 반독재 투쟁이 무엇이었고, 민주투사가 무슨 뜻인지에 대한 의외의 학습효과를 우리 사회에 선물했습니다. 그리고 YS가 했다는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경구는 아무리 탄압의 시간이 길어도 기어코 국민이 승리하는 날이 온다는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상징하는 표현이 됐습니다.

비록 YS가 보수 3당 합당으로 우리 민주주의에 결정적인 악영향을 끼쳤다는 평가를 받는 부분도 있지만 그의 반독재투쟁, 민주화 역정에 대한 전체 평가에는 큰 영향을 끼치지 않는 듯합니다. 저는 민주화,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위기의식과 애절함, 안타까움이 새삼 부각되고 있기 때문 아닐까 분석하고 있습니다.

유신의 폭압 정치가 정점에 달하던 1979년 10월 4일, 박정희 정권은 당시 신민당 총재였던 YS를 민주공화당과 유정회 의원들의 날치기를 통해 국회의원직에서 제명 처리합니다. YH무역 여공들의 신민당 당사 농성을 강제 진압하다 사망자가 발생해 여론에 밀린 상황에서 YS가 뉴욕타임즈 인터뷰를 통해 “미국은 박정희 정권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민주화 조치를 하도록 압력을 가해야 한다.”라고 주장한 부분을 사대주의와 헌법 부정으로 몰아 ‘야당 총재 제명’이라는 극약 처방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극약을 받아 마신 것은 YS가 아니었고 바로 폭압적인 유신체제였습니다. 부산과 마산에서 민주항쟁이 일어나고 바로 그 여파로, YS를 제명한 지 불과 3주 후인 1979년 10월 26일, 유신체제는 대통령 박정희가 심복인 중앙정보부장에게 피격되면서 붕괴되고 맙니다. YS가 국회의원 제명 이후 상도동 자택으로 끌려가며 외쳤던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던 절규와 믿음, 간절한 기원이 유신체제의 철옹성을 무너뜨린 셈입니다.

21세기가 왔다는 흥분도 이제는 사라진 2015년. 대한민국의 시계는 다시 거꾸로 돌아간 듯 다시 ‘유신의 부활’, ‘민주주의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습니다. 민주주의 사회의 근본이라는 언론 자유에 대한 우려도 이젠 우려가 아닌 현실이 돼 가고 있습니다.

언론 자유의 위기는 내부로부터도 싹트고 있습니다. 무한 경쟁에 내몰린 언론사들은 생존에 급급해 저널리즘의 원칙을 뒤로 하고 있고, 아예 정치권의 대변인이 된 듯한 사이비 방송까지 넘쳐나는 것은 그 어느 누구도 아닌 우리 언론의 책임입니다. 기업도 모자라 아예 정부로부터 돈을 받고 기사를 생산하는 타락함, 특정 정치세력의 스피커가 돼 버린 듯한 정파주의, 이미 도를 넘었지만 그 악영향을 고민하는 모습조차 아직 보기 어렵습니다.

첩첩산중이라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일까요? 북두성도 보이지 않고 새벽은 더더욱 멀어만 보입니다. 그러나 YS가 남긴 유산은―보다 정확히는 YS와 DJ 등 7,80년대 한국 민주주의를 투쟁으로 지탱해준 민주투사들 공통의 것이겠죠―우리에게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 ‘언론 자유에 대한 열정’이 보다 더 치열해야 함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더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함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한자 표기로 병신년丙申年인 올해는 우리식 발음에 우스개 요소가 있어 여러 말 풀이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중 저는 ‘병(乙보다 못한 丙)들도 신나게 살 수 있는 한해’라는 풀이가 맘에 들었습니다. ‘병’들이 신나게 살 정도면 ‘을’들도, 우리 사회의 기죽은 을들도 어깨를 조금 펴지 않겠습니까?

사실 도시 부르주아에 의해 싹이 튼 민주주의는 봉건 영주 같은 갑甲보다는 부르주아 같은 당시의 을乙이나 그보다도 못했던 병丙들을 위한 것이었다고 풀이합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이 유럽과 미국에서 민주주의가 꽃을 피게 된 것도 바로 그런 정신이 잘 발현됐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선 분명 ‘갑질’을 감시하고 ‘을’과 ‘병’의 인권과 권리를 조명한 언론의 부단한 역할이 큰 역할을 했을 겁니다.

그래서 저는 당연히 우리 언론이 자리해야 할 곳도 바로 을과 병을 더욱 조명하는 자리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가 제대로 균형을 잡고 성장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살을 에는 듯한 칼바람 속에서도 봄은 오고 있습니다.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옵니다.’

방송기자연합회 회원 여러분! 어깨 겯고 2016년 丙申年 한발 한발 더 나아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