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뉴스 무시하는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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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행인칼럼02이미 쇄락의 길로 접어든 신문에 이어 방송뉴스도 기로에 서 있다는 얘기를 자주 들어보셨을 겁니다. 사내 교육시간이나 세미나에서 어김없이 등장하는 단골 메뉴죠. 인터넷이나 모바일로 온갖 정보가 실시간으로 무제한으로 쏟아지는 시대이다 보니 그런 얘기가 나올 만도 합니다. TV 뉴스를 보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던 시대는 이미 지났다고 단정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미국의 언론 연구기관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는 인터넷과 모바일로 대표되는 디지털 시대에도 기존의 방송뉴스는 여전히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조사결과를 냈습니다. 그 이유로 신뢰를 들었습니다. SNS 등을 통해 검증되지 않은 수많은 ‘소식’을 접한 사람들이 이것이 ‘사실’인지를 기존의 매체를 통해 확인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공공재인 전파를 빌려 내보내는 방송뉴스는 그래도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전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또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하고 어떤 시각으로 보도하는지 알고 싶어 방송 뉴스를 보기도 합니다.

그럼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방송뉴스를 보면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알 수 있습니까? 논란이 되는 사안에 대해 제대로 전해주기는 합니까? 국가정보원의 정치개입 의혹 사건이 단적인 사례입니다. 서울광장이 국정원의 여론 조작과 정치 개입 의혹을 규탄하는 촛불로 뒤덮여도 주류 언론을 자처하는 방송사 뉴스에서는 이 소식을 접할 수 없었습니다. 시민사회단체뿐 아니라 학계, 종교계까지 나서 시국성명을 냈어도 외면했습니다.

해마다 해수욕장이나 계곡에 몰리는 피서 인파 소식은 주요 뉴스로 다루면서도 무더위에 서울광장에서 촛불을 들고 진상 규명을 외친 사람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닫았습니다. 야당이 장외투쟁에 나서면서 촛불집회에 참석한 뒤에야 정쟁 차원에서 다뤘을 뿐입니다. 그나마도 일부 방송사는 행여 촛불집회 장면이 화면에 담길까 봐 편집에 각별히 신경을 썼습니다. 우리끼리 얘기로 그야말로 눈길 확 끌 수 있는, 그림 되는(?) 아이템인데도 말입니다.

이뿐이 아닙니다. 자체 검열도 서슴지 않았습니다. 국정원 댓글 관련 특종 보도를 스스로 내리는가 하면, 국정원 댓글 논란을 다룬 시사 아이템은 방송 사고를 스스로 감수하면서 ‘통 편집’ 했습니다. 현 정권에 유리하다고 판단되는 NLL 논란을 다룰 때와는 달라도 너무 달랐습니다. 이런 행태는 이명박 정권 때 4대강 뉴스를 처리하던 방식과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 당시에도 4대강 사업에 대한 비판적 보도는 축소되거나 아예 나가지 못했습니다. 정부의 사업이나 정책에 대해 감시하고 문제 제기하는 것이 언론의 책무인데도 오히려 철저히 정권 편에 서서 홍보에만 열을 올렸습니다. 4대강과 대운하를 결부시키는 것조차 금기시됐습니다.
최근 감사원이 4대강 사업은 대운하를 염두에 둔 것이라는 감사결과를 내놓았습니다. 환경부 장관은 보 건설로 물 흐름이 느려지면서 녹조 현상이 심해졌다는 점을 인정했습니다. 이명박 정권 때와는 정반대 결론을 내린 감사원과 환경부의 기회주의적 처신을 방송은 비판할 자격이 있습니까? 4대강 사업의 문제점을 지적한 보도를 막았던 것이 판단착오였다는 해명이나 변명을 당시 보도책임자로부터 들어본 적 있습니까?

4대강 문제를 지적했던 기자들은 그 지적이 사실로 밝혀졌어도 여전히 ‘문제 기자’로 낙인 찍혀 있고, 4대강에 대해 문제 제기조차 못 하게 했던 사람들은 정권이 바뀌었어도 ‘문제없이’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라뱃길(경인운하)은 또 어떻습니까? 환경적 측면은 물론 경제성에서도 문제가 많다는 지적에도 무슨 치적 쌓듯이 만들어 놓고 나 몰라라 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놓아두는 것보다 못한 이런 사업에 엄청난 국민 혈세를 투입해 놓고 봉급생활자의 유리지갑만 쥐어짜서 재정 적자를 메우려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언론이 제 역할을 했다면 건설비만 30조 원 이상 들어간 4대강 사업을 그렇게 일방적으로 추진하진 못했을 겁니다.

지금의 국정원 정치개입 의혹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송뉴스에서는 정치권 공방 외에 어떤 문제제기도 보기 어렵습니다. 살아 있는 권력의 심기를 건드릴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일 경우 특히 그렇습니다. ‘뉴스’를 ‘무시’하는 방송뉴스를 누가 계속 보겠습니까? 지금 방송뉴스가 기로에 서 있는 것이 오로지 새로운 매체의 등장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국민의 신뢰를 잃어가는 것이 더 큰 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