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노트] 누구의 ‘입’, 누구의 ‘입장’이 될 것인가?

박성호 본지 편집위원장(MBC)

영국 BBC의 <뉴스나이트>를 25년간 진행한 제레미 팩스맨Jeremy Paxman의 유명한 인터뷰를 10년 전 영국의 한 강의실에서 본 적이 있습니다. 인터뷰 상대는 내무부 장관이자 훗날 보수당 당수를 지낸 마이클 하워드Michael Howard였습니다. 1997년에 이뤄진 생방송이었는데, 장관이 중요한 질문에 어물쩍 넘어가려 하자 앵커가 같은 질문을 거듭 던졌습니다. 표현만 바꿔 가며 점점 더 압박해 들어갔습니다. 같은 질문을 던지기를 열두 차례. 완강한 태도를 보이던 장관은 결국 입을 열었습니다. 비디오를 보여준 영국인 교수의 취지는 이러했습니다. “기자들은 잊지 말라. 당신들은 묻는 것이 책무이고, 정치인은 답하는 것이 책무라는 사실을.” 시청자와 시민의 ‘입’으로 묻고, 시청자와 시민의 ‘입장’에서 생각해야 한다는 아주 상식적인 교훈을 생생하게 재확인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이 궁금해 할 것은 적극적으로 파악해서 전달한다는, BBC 선거보도의 오랜 전통인 설명임무(mission to explain)가 그냥 생긴 게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듬해 5년 만에 정치부에 복귀해 여당 반장을 맡아 보니, 우리의 상황은 예전보다 더 나빴습니다. 과거에는 정당의 아침 회의 때 대표나 사무총장이 무슨 발언을 하면, 즉석에서 기자들이 질문을 던지는 모습이 진기한 풍경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주요 당직자들이 사전 각본에 따라 자기가 맡은 대사를 자연스럽게 읊었고, 회의장을 가득 메운 출입기자들은 오로지 노트북에 머리를 ‘박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무도 묻지 않았습니다. ‘문화가 달라져서 이제는 반장들은 부스에 앉아 있고 회의장에 오지 않는다.’는 후배들의 말을 흘려듣고, 별 일 없으면 회의장에 올라가 고개를 ‘쳐들고’ 발언자들의 눈빛과 표정, 입 모양을 주시했습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습니다. 회의의 공개 발언을 끊고 질문을 던질 용기는 없어서, 회의 시작 전후로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궁금한 것을 물었습니다. 그로부터 또 5년이 흘렀습니다. 이제는 용기 있는 기자들이 늘어났을까요?

정치뉴스에서 누가 말하고 있습니까? 정치인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의제를 설정합니다. 뉴스는 정치인의 ‘입’이 되고, 기자들은 정치인의 ‘입장’에서 취재의 더듬이를 움직입니다. 시민의 ‘입’은 아예 보이지 않습니다. 시민의 ‘입장’에서 묻고 따지는 뉴스도 흔치 않습니다. 불균형도 이런 불균형이 없습니다. 정치뉴스 시청은 스포츠 중계처럼 참여가 아닌 관전에 의미를 둔 지 오래됐습니다. 우리가 시민을 구경꾼으로 만들었습니다.

새해를 맞아 새로운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이제부터는 저널리즘의 본령이자 우리의 전부인 ‘뉴스’를 분야별로 나눠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분석적으로 비판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로 정치뉴스를 골랐습니다. 사실 방송 정치뉴스의 문제점은 특집으로 다루지 않더라도 다 아는 뻔한 얘기들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알면서도 아무도 바꾸지 않는 문제점이라면 끊임없이 말해야 합니다. 더 생각하고, 더 토론하고, 더 고쳐나가는 한 해가 되길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