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을 바꾼 3일

내 인생을 바꾼 3


YTN 박진수 기자


 


20087월 어느 날,


 


보글보글 생태찌개 끓는 냄새가 꽤 구수하다.


뜨거운 여름 날, 왜 하필이면 겨울에나 잘 먹는 생태찌개를 시켰는지 모르겠다. 앞으로의 기나 긴 우리의 여정을 예고라도 한 걸까?


찌개를 한 숟갈 뜰 무렵 석재가 말문을 열었다.


형 이거 얼마나 걸려요.” (참고로 이거는 낙하산 사장 반대 투쟁)


얼마 안 걸려. 금방 끝나. 군사 정권도 아니고 우긴다고 되니?


명분도 없고 어쨌거나 우리가 크게 잘못하는 게 아니잖아.”


노종면 위원장과 권석재 사무국장이 선거 입후보를 앞두고 한 점심 식사였다.


 


그때는 얼마 안 걸리겠지하며 그냥 지나친 이 말을 지금 생각해 보면 피식 웃음이 나온다. 이 말은 결국 거짓말이 됐다. 공정방송 투쟁을 시작한 뒤 4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으니까. 정권의 특보를 역임한, 정치적으로 편향된 인물이 사장에 선임된다는 것에 시청자와 취재 현장에서도 민감하게 반응했다. 특히 뉴스 회사에서 공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데에는 그 때나 지금이나 이견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잘못하는게 아니라는 당시 말에 대해 노 선배는 굳이 변명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노 선배. 진수도 뭐 하나 해야 하는데?”


 


동기인 석재가 사무국장에 입후보하는 것을 말리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미안함에 무슨 일이든지 도와 주겠다고 말한 후 세 사람과 함께 한 첫 점심 자리였다.


 


 


2008107


 


하루 일과를 마무리 할 오후 5시 즈음,


노조 사무실에 있는 유신이한테 전화가 왔다.


 


, 징계 나왔어요.”


어떻게


정직 3개월요.”


석재는?”


해고요. 6명이야.”


너는?”


해고징계받은 후배들한테 미안하지. 우리야 뭐 괜찮아.”


 


회사 공지가 나가기 전 노조에 사측이 통보한 모양이었다.


이 몇 마디 안되는 단어들은 YTN 노조가 5년에 걸친 공정방송 투쟁을 시작하는 단초가 됐다. 그 날 새벽까지 우리는 소주 잔을 부딪히며 울고 불며 서로를 끌어안았다. 경찰 조사, 정권 실세라는 사람들의 협박, 투쟁이라고 부르기도 쑥스러운, 그저 상식을 말하는 것이 이 정권 아래에서 이렇게 어렵구나 하는 실감, 그리고 무엇보다 사상 초유의 징계에 대한 충격과 억울함, 해고자들에 대한 절절함. 이루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끌어안은 채 밤을 지새웠다.


 


징계가 난 다음날 인사위원들을 찾아갔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징계에 대해 선배라고 믿었던 간부들에게 우리의 분노와 억울함을 조금이라고 말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그 시간을 간부들은 하극상이라고 불렀다. 지금도 간부들은 조직의 질서를 무너뜨렸다며 당시 후배들의 행동을 절대 잊지 못한다고 말하곤 한다. 심지어 꼭 복수해야 하고 버르장머리를 고쳐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들은 후배들의 항의에 분통을 터트릴 줄만 알지 자신들의 행동과 결정이 옳았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내게는 지금도 이들의 편리한 사고방식이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2009322


 


일요일 아침 전화벨 소리는 불길하다.


주섬주섬 전화기를 찾아 귀에 댄다.


 


, 잡혀 갔어요!”


누가?”


노 선배, 조승호 선배, 현덕수 선배, 장혁이 형 이렇게.”


?”


긴급체포. 아침에 집에서.”


…………


회사로 나와야겠는데


…… 알았어!”


 


전화를 끊는 둥 마는 둥 어쩔 줄 모르는 내게 아내가 묻는다.


 


? 회사에 무슨 일 있어?”


아니회사에 나가야겠어.”


?”


……………


 


옷을 챙겨 입기 위해 안방을 들어가 바지를 입으려는데 갑자기 눈물이 쏟아져 나왔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침대에 걸터앉아 입을 막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집사람이 옷을 챙겨 주려고 문을 빼꼼이 열다가 슬그머니 문을 닫는다. 전화기를 통해 전 조합원은 회사로 집결하라는 노조의 메시지가 울렸다. 이 문구를 본 뒤 무슨 정신으로 남대문 경찰서까지 갔는지 지금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4년도 더 지난 과거의 일이지만 이 사흘이 유독 기억 속에 생생하다. 나는 이 시간 느꼈던 무수한 감정들을 아마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공정방송이 왜 필요한 지조차 잘 모르면서, 그저 우리 회사 잘 되고 동료들을 지켜줘야겠다는 생각에 시작한 공정방송 투쟁.


처음에는 예상조차 하지 못했던 긴 시간이 흘렀지만 그 속에 충격과 슬픔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주장을 귀 기울여 들어주는 시민들을 보며 언론인으로서 더욱 큰 책임감을 느꼈고, 지칠 때마다 곁에서 어깨를 두드려주는 동료들을 보면서 다시 힘을 얻었다. 우리를 이렇게 오래 싸울 수 있도록 한 원동력은 결국 사람에 대한 희망이었다.


 


투쟁 초창기 신재민 차관의 재허가 거부와 민영화 협박, 노조 강경 진압, 해고와 구속 수사 협박 등 회사 안팎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얘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래도 이 말들 가운데 해고와 구속 수사는 정확했다. 2차 경찰 조사까지 성실히 임했고 3차 조사 또한 시간 약속까지 잡아둔 상황에서 경찰은 노 선배를 포함한 4명을 합법 파업에 들어가기 하루 전 집 앞에서 긴급 체포로 연행했다. 아이 셋의 가장이며 노조위원장을 맡고 있는 노 선배가 도주 우려가 있다는 것인지 아니면 조사에 불응하고 불성실한 태도를 보였다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일요일 아침 집 앞에서 멀쩡한 사람들을 끌어간 행태를 생각하면 지금도 섬뜩하고 무서워진다.


 


징계가 벌어진 날 자기는 해고 통지서를 받고도 정직자들에게 미안하다며 연락을 돌린, 착하디 착한 정유신은 아직도 회사에 돌아오지 못하고 있다. 물론 맨 처음 생태찌개를 같이 먹었던 노종면 선배와 권석재도 지금 회사 안에 없다. 또 다른 해직자 우장균, 조승호, 현덕수 또한 남대문 YTN 사옥이 아닌 다른 공간에서 우리들을 만난다. 나는 솔직히 걱정되는 것이 있다. 6명이 비록 몸은 우리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늘 함께하고 있다고 믿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들이 YTN이라는 단어를 혹시 낯설어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그들은 우리였고, YTN이었으며, 공정방송을 지키는 상식의 보루였다.


팔을 들어 구호를 외치는 것 조차 어색하고, 출근 저지를 어떻게 하는지 조차 모르던 YTN 노조원들은 4년이 넘는 시간을 거쳐 매일매일 새로운 역사를 쌓아가고 있다. 우리는 이제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의 존재 이유는 공정방송에 있고, 그것이 곧 시청자를 향하는 길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제 다시 10차 파업을 시작한다. 배석규 사장을 위시한 현 경영진들은 사원들이 땀 흘려 이룬 성장의 과실을 제대로 나눠주려 하지 않는다. 노사 협상을 앞둔 상황에서 노조 위원장과 사무국장, 공방위원장을 되려 중징계하는 등 노사 협상에 대한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고 있다. 임금 뿐 아니라 우리의 중요한 목표는 해직자 복직과 공정방송이다. 이것은 임단협의 부록으로 따라오는 것이 아니다. 언론 종사자에게 무엇보다 중대한 근로 환경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YTN의 상처는 결코 아물지 못할 것이다. 공정방송을 향한 퍼즐 한 조각을 맞추지 못한 채 영원히 미완성으로 남게 될지 모른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모아 이 퍼즐을 차곡차곡 완성해 나갈 것이다. 마지막 조각을 맞출 날이 머지 않았다고 나는 믿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웃으며 이 길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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