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내 이름은 대기 = waiting


 


내 이름은 대기 = waiting


KBS 박대기 기자


 


 


 


삼국지에서는 이런 식이었다. 장비, 자는 익덕, 연나라 사람. 아마 미래에 2010년 경의 인터넷 하위문화를 굳이 찾아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런 식으로 찾을 것이다. 김솔희, IDshuaixi. 박대기, IDwaiting. 이런 식으로 이메일은 단단하게 나의 일부가 되고 있다. 내 이메일은 waiting@kbs.co.kr. 100년만의 폭설로 서울이 눈에 덮인 날, DC 인사이드를 중심으로 중계차 장면 사진이 화제가 됐다. 또 이메일 ID가 그 상황과 잘 맞다고 해서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왜 이렇게 장난스런 이메일 ID로 정했느냐는 말을 많이 듣는데, 그건 입사동기인 김영은 기자가 지어준 거다. 품위 있는 ID를 따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김 기자는 waiting이 정감이 있고 기억하기 쉬우며 누구나 재미있어 할 거라고 말해주었다. 듣고 보니, 늦게 시작한 이 일에 임하는 마음가짐으로도 좋은 것 같았다. 웨이터 같은 느낌으로 편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스스로 이름을 짓는 것보다 남이 지어주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고, 스마트하고 톡톡 튀는 김영은의 말을 따르는 것이 옳아 보였다.


 


ID가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그 날 하루만 3천통 가까운 메일을 받았다. 그 중에는 실직하고 우울한 마음으로 방 안에서 겨울을 보내고 있는데, 일본 TV에 방송된 내 중계차 영상을 보고, ‘밖에 나가 일해보자는 의욕을 찾았다는 일본인의 메일도 있었다. 나중에 받은 것이지만, 감옥에서 유일하게 시청이 허용된 12시 뉴스에서 내 ID와 나를 보고 사회에 나가서 열심히 살아야지생각을 했다는 전과자도 있었다.


메일을 준 분들은 게으르고 탐욕스러운 나의 실체를 모르고 몇 가지 영상과 표정, 그리고 ID를 보고 생각한 이미지로 나를 잘못 생각한 것임에 틀림이 없다. 어쩌다 보는 뉴스에서 8초 정도 등장하는 내 모습, 그리고 귀퉁이에 적힌 ID는 그 분들을 현혹하고 있었다. 어쩌면 정의로운 사람이 아닐까, 어쩌면 내 편이 돼 줄 영향력 있는 사람이 아닐까. 때로 겸연쩍고 송구스럽기도 하고, 때로 내 정체가 탄로나면 어쩌나 불안했다.


 


오늘도 메일함을 열면 갖가지 단체에서 온 취재요청 단체메일 외에도 다양한 사연을 호소하는 메일이 도착해 있다. 대부분의 메일은 방송기자이고 출입처가 정해진 내가 다룰 수 있는 능력 밖의 문제들이다. 기자라면 누구나 만난 적이 있을, 법과 공권력의 구제를 받지 못하고 오랜 시간의 고통에 물든 사람들도 자주 메일을 보낸다.


읽음표시만 남기고 내가 할 수 없는 수많은 사연들. 매일 업보를 쌓고 있다. 조금이라도 나은 기자가 되자, 적어도 중요한 제보는 기사로 만드는 기자가 되자, 생각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한 일들이 수없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