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칼럼] 오보와 가짜 뉴스 그리고 언론중재법, 언론계 내부의 자성 노력으로 돌파해야

오보와 가짜 뉴스 그리고 언론중재법,
언론계 내부의 자성 노력으로 돌파해야

 

우리 언론계가 시끄럽습니다. 아시다시피 언론중재법 때문입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이른바 ‘가짜뉴스’에 의한 피해가 심각하다며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의문이 먼저 생깁니다. 언론중재법이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자는 취지로 만든 법률인데, 이른바 가짜뉴스 피해 대책의 일환으로 법률 개정을 추진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여당 정치인들이 우리 언론을 가짜뉴스의 진원지로 여기고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렇다면 가짜뉴스는 무엇인가요? 뉴스는 사실을 취재해 보도하는 것이 전제(premise, 前提)인데, 논리적으로 가짜와 뉴스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죠. 많은 경우 오보와 가짜뉴스를 가르는 차이를 의도(목적성)가 있느냐 여부로 나눕니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재임 내내 자신을 비판하는 언론을 비난하고 조롱을 일삼던 트럼프 전 대통령에 의해 일반 명사처럼 굳어버린 가짜뉴스(fake news)는 이미 한국의 시민들에게도 익숙한 용어가 됐습니다. 지난 2019년 2월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들은 가장 유해한 콘텐츠로 ‘언론의 사실 확인 부족으로 생기는 오보’를 꼽았습니다. 또 같은 조사에서 가짜뉴스의 유형으로 위 ‘언론의 사실 확인 부족으로 생기는 오보’를 세 번째로 꼽아, 시민들은 이미 가짜뉴스와 오보를 구분해서 보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현실이 그렇습니다.

저는 오보는 언론의 숙명과도 같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확인의 강제권을 갖고 있지 않는 언론인은 늘 작은 사실의 조각들에서 거대한 진실을 찾아내야 합니다. 저는 이 사실의 조각들을 ‘잠정적 사실’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진실은 우리가 ‘공동체의 이익’이라고 생각하는 ‘사실의 조각 모음과 합리적 추론의 결과물’이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언론보도 가운데 오보와 가짜뉴스(악의적 오보)를 단어 몇 개와 법률 조항 몇 가지로 구분해 낼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애초부터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이 때문에 법규로 가짜뉴스(악의적 오보)의 정의와 유형을 규정하고 처벌하려는 것은 오보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고 필연 자유로운 취재를 위축시킬 수밖에 없습니다. 오보를 어느 정도 용인하고 이해해 줄 수 없다면, 진실을 향한 취재는 시도조차 어려워집니다. 이 같은 설명은 저널리즘의 정의와 메커니즘을 완전히 표현해 낸 것이 분명 아닙니다. 하지만 동의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언론을 공부하거나 언론에 종사하고 있다면, 이해는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협회원들께서 이번 호 「방송기자」를 읽어볼 때쯤 어쩌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이미 국회 본 희의장을 통과했을지 모르겠습니다. 항의를 위해 몇 번 만났던 여당의 지도부와 핵심 의원들에게서 위와 같은 언론과 저널리즘에 대한 이해를 저는 조금도 느끼지 못했습니다. 안타깝지만 정치가 언론을 규정하고 통제하는 것을 당연시 하는 정치인, 그리고 이를 ‘언론개혁’이라고 믿는 지지자들의 힘과 목소리가 지금은 더 큽니다. 상황은 암담합니다. 하지만 이 모든 문제의 근원에는 우리 언론 자신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렵지만 다시 바꿔나갈 수 있는 희망이 있습니다. 개정안의 위헌 결정 여부와는 별개로 우리 언론계 스스로가 자성의 노력으로 돌파해야 합니다. 가령 언론중재위나 방송심의위와 같은 관제 기구가 아니라 언론계가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규제와 심사기구를 만들어 실질적이고 효력이 있는 자율 규제와 심사를 통해 나쁜 기사와 언론사를 축출하고 언론의 신뢰를 높여 나가야 합니다. 이는 기자협회나 노동조합과 같은 현업 언론인들만의 힘으로는 어렵습니다. 언론 사업자들과 편집인 단체, 그리고 기사를 유통하는 플랫폼 사업자들까지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합니다. 정부와 정치권이 정작 해야 할 일은 이러한 사회적 합의를 유도하고 지원하는 일입니다. 현 정치세력들에게 이를 기대하긴 어려워 보이지만 우리 힘으로 해내야 합니다. 협회원 여러분들의 관심과 참여가 중요한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