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올림픽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이상한 올림픽

 

권종오 SBS 기자

 

CSI. 범죄수사대(Crime Scene Investigation)의 약칭이 아니다. 2020 도쿄올림픽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말이다. 30년 넘게 올림픽과 월드컵 등 각종 국제대회를 취재해온 필자에게도 이번 올림픽은 한마디로 지금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회이었다. 도쿄에 모인 각국 선수단과 올림픽 관계자들은 대부분 ‘조용하고(Calm) 이상하고(Strange) 불편했던(Inconvenient) 올림픽’이란 평가를 내렸다. 축제가 아닌 최초의 올림픽 2020 도쿄올림픽의 가장 큰 특징은 근대올림픽 125년 역사상 최초로 무관중으로 치러졌다는 점이다. 일부 경기장에서 관중이 들어오기는 했지만 그 비율은 전체 입장권 수의 1%를 넘지 못했다.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해외 관중을 수용하지 않기로 했는데 개막을 앞두고 일본에서도 확진자가 급증하면서 긴급 사태까지 선포되자 일본 관중도 받지 않기로 해 사상 최초의 무관중 올림픽이 됐다. 지금까지 올림픽은 흔히 ‘지구촌 축제’로 불렸다. 대회 현장에 모인 선수, 지도자, 관중, 개최도시 주민, 올림픽 관계자, TV로 지켜보는 수십 억 시청자들이 모두 함께 웃고 울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올림픽은 축제가 아닌 그냥 조용히 경기만 치른 최초의 올림픽으로 역사에 남게 됐다.

불편함의 연속, ‘고난의 행군’
전 세계 취재진에게 도쿄올림픽은 ‘가장 불편한 올림픽’이었다. 먼저 도쿄에 들어가려면 출발 96시간 이내 1회, 72시간 이내 1회 등 두 번의 코로나 19 검사를 받아야 했고 음성이 나오면 그 결과지를 일본어와 영어로 번역한 뒤 위치 추적이 가능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을 비롯해 총 5개의 앱을 휴대전화에 설치해야 했다.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뒤에는 QR코드를 체크하고 음성 확인서 등 각종 서류를 검사한 뒤 타액 검사를 실시했다. 결국 여권만 8번을 보여주며 모두 10단계를 거친 끝에 가까스로 경기장 출입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항공기가 나리타 공항에 도착한 뒤 거의 4시간 만에 수속을 마쳤는데 이게 끝이 아니었다. 입국 뒤에도 매일 코로나 진단 키트를 수령한 뒤 자신의 검체를 제출하고 일본 코로나19 방역 대책 스마트폰 앱 ‘오차(OCHA)’에 건강 상태를 기재해야 했다. 입국 이후 14일간은 대중교통을 이용할 수 없고 일반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도 없었다. 필자의 경우 국제방송센터(IBC), 경기장, 숙소 3곳 외에는 14일 동안 출입이 금지됐다.

황당한 OBS의 횡포
위에 지적한 불편은 사실 필자가 불편함을 감수만 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하루나 이틀 전에 취재 일정을 모두 제출해 승인을 받으라는 것은 도무지 납득이 되지 않는 사태였다. 전말은 이렇다. SBS를 비롯한 지상파 3사는 막대한 중계권료를 지불하고 올림픽을 중계방송하고 취재 보도한다. 역대 올림픽의 사례를 보면 육상 100m 결승 같은 세계적으로 관심이 유독 많은 종목(이른바 ‘하이 디맨드(High-Demand)’만 현장 취재할 수 있는 인원이 제한됐다. ‘하이 디맨드’를 제외한 일반 종목은 별다른 제한 없이 취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 올림픽은 달랐다. 올림픽 주관방송사인 ‘OBS(Olympic Broadcasting Services)’는 야구, 축구, 육상은 취재 2일 전에, 다른 종목은 1일 전, 그것도 오전 11시까지 취재할 종목을 미리 신청해 승인을 받으라고 요구했다. 코로나19를 고려해 기자들이 한꺼번에 ‘믹스드 존(공동취재구역)’에 몰려 인터뷰를 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인원을 제한한 것으로 보였다. 이번 올림픽의 경우 ‘믹스드 존’에서 인터뷰 할 때 선수와 2m 이상 떨어져야 했다. 이를 위해 지상파 3사는 길이 2m가 되는 긴 마이크를 미리 준비했다. 마스크를 낀 채 2m 거리에서 인터뷰를 하다 보면 주위가 시끄러울 경우 선수의 발언 내용이 잘 들리지 않아 애를 먹기도 했다. 선수와 거리두기를 철저히 했음에도 OBS는 자세한 설명 없이 ‘믹스드존 티켓’을 임의대로 하루는 A사에 줬다가 어떤 날은 B사 또는 C사에 주면서 사실상 취재의 자유를 제한하는 횡포를 저지른 것이다. OBS의 이런 행태 때문에 지상파 3사는 부득의하게 서로 취재한 화면을 공유할 수밖에 없었다.

마지못해 올림픽 치른 일본
집들이에 손님을 불러놓았는데 정작 집주인이 집들이 내내 시종 시무룩한 표정을 지으면 손님들은 음식이 입에 들어가는 지 코로 들어가는 지 잘 모르다 귀가할 것이다. 이번 올림픽이 바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생각한다. 코로나19 속에 굳이 올림픽 개최를 강행한 것은 일본 자신들이다. 다른 나라가 강행하라고 강요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일본은 마치 마지못해 올림픽을 치르는 듯한 인상을 주었다. 심지어 이번 도쿄올림픽 유치에 앞장섰던 아베 신조 전 총리마저 개회식은 물론 어떤 경기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역대 개최국이 이처럼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에 열정을 보이지 않는 것도 드문 일이다. 비용 절감도 지나친 면이 없지 않았다. 도쿄의 더위는 한마디로 살인적이었다. 양궁 경기가 열렸던 유메노시마 양궁 경기장이 특히 심했다. ‘유메노시마’는 ‘꿈의 섬’이라는 뜻인데 이곳에 차양막조차 제대로 설치되지 않았고 간이 화장실마저 부족
해 각국 취재진은 ‘찜통더위’에 악몽을 꿔야 했다. 급기야 양궁 경기장에서 근무하던 자원봉사자 1명이 체감 온도 40도가 넘는 무더위에 쓰러지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또
도쿄 인근 치바현에 위치한 대형 전시장인 마쿠하리 메세에서는 태권도와 펜싱이 동시에 각각 A홀과 B홀에서 개최됐는데 이곳이 어느 경기장인가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눈에 띄지 않았다. 있는 것이라고는 A4 용지 한 장 크기에 적힌 안내가 전부이었다. 외국 취재진을 위한 배려가 부족한 것은 물론 오랫동안 올림픽을 준비한 나라가 맞는 지 의심이 드는 대목이었다.

어찌됐든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도쿄올림픽은 끝났다. 필자는 한마디로 ‘실패한 올림픽’이라 생각한다. 유치 확정 이후 8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대회 준비는 곳곳에서 허점을 드러냈고 일본을 전 세계에 알릴 개회식과 폐회식도 낙제점을 면키 어려웠다. 후쿠시마 재건이라는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고 일본의 강점을 제대로 알리지 도 못했다. 1년 연기와 무관중 개최로 최소 17조 원 이상의 천문학적인 금전적 손실도 입었다. 이제 세계의 눈은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 2022년 2월 4일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막을 올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확산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위해 지금보다 훨씬 강화된 규정을 적용할 것으로 전망된다. 코로나19보다 더 큰 이슈는 중국의 인권 탄압을 이유로 서방 국가들이 대거 보이콧에 동참할지 여부이다.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은 ‘가장 시끄러운 올림픽’이 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