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Olympics, Enjoy the Moment!

Olympics, Enjoy the Moment!

 

김동세 MBC 기자

 

‘사상 처음’ 이라는 수식어가 붙지 않는 곳을 찾기가 힘들만큼 ‘전례 없는’ 올림픽. 도쿄와의 23일간의 동거는 역시나 ‘유래 없는’ 우려와 악재 속에서 시작되었다. 방사능과 코로나에 대한 우려, 올림픽 조직위가 승인한 ‘Activity Plan’에 따라 철저히 제한된 동선. ‘기껏 불러 놓고 취재를 하라는 건지 말라는 건지’라는 의구심을 품은 채, ‘얼마나 잘 치르는지 한 번 보자’는 다소 삐딱한 시선을 카메라에 장착하고 가깝고도 먼 나라, 일본으로 향했다.

‘원칙’만 있고 ‘효율’은 없는 운영
우선 악명 높았던 ‘입국절차.’ 공항을 빠져나오는 데만 3시간 30분이 걸렸다. (5시간이 걸린 취재진도 있다) “언론인들은 일본의 적(敵)이 아니다.”라는 국제스포츠기자협회(AIPS) 회장의 일갈이 내 입에도 맴돌았다. 올림픽 현장 곳곳에 배치된 자원봉사자들은 너무나 친절했다. 보안 검색대를 한 번 통과할 때마다 ‘아리가또고자이마스(고맙습니다)’를 네다섯 번씩 들었다. 그러나 그런 친절함이 결코 취재를 수월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일본인 특유의 ‘원칙주의’와 ‘꼼꼼함’이 취재를 어렵게 만드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다. 20kg이 넘는 장비를 든 취재진에게 코앞에 있는 입구를 두고 건물을 빙 돌아 들어가라고 하거나, 직선으로 갈 수 있는 길을 ‘갈 지(之)’자로 만들어놓은 건 애교였다. 온갖 절차를 다 거친 뒤 겨우 경기장에 입성하면 이미 한바탕 진이 빠진 상태였다. 자원봉사자들은 한 사람이 해도 될 일을 대여섯 명이 하기 일쑤였고 – 한 명만 거치면 될 일을 대여섯 명 거쳐야 가능했다 – 그나마도 제대로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심지어 믹스드 존에서의 선수 인터뷰 시간을 90초로 제한해놓고 시간을 넘기면 카메라 옆으로 다가와 (말을 하고 있는 선수 앞에서) 끊으라는 제스처를 취하는 이도 있었다. 특히 혼자서 영상, 음향, 송출, 장비 등 여러 가지를 동시에 챙겨야 했던 영상취재기자 입장에서는 이러한 비효율성이야말로 적(敵)처럼 느껴졌다.

‘엄격’한 듯 ‘허술’했던 버블 방역
출국 전 두 번을 포함, 일본에 머물렀던 23일간 총 12번의 코로나 PCR 검사를 받았다. 매일 체온을 비롯한 몸 상태를 ‘OCHA(온라인 체크인 건강관리 앱)’를 통해 올림픽 조직위에 보고했고, 동선과 접촉자 파악을 위한 위치추적 앱도 설치했다. 입국 후 14일 간은 숙소, IBC, 경기장을 제외한 어떠한 곳의 출입도 불가했고 동선도 철저히 제한됐다. 숙소로 사용한 호텔 로비에는 조직위에서 보낸 ‘감시원’이 두 명씩 상주했고, 방에 여러 사람이 모여서 식사 및 음주하는 행위도 금지됐다. ‘원칙대로라면’ 취재진은 차량으로 이동하는 도중에 편의점에 들를 수 없고 현지인 가이드만 차에서 내려 대신 물이나 도시락을 사다줄 수 있었다. 다만, 올림픽 조직위 측에서 요구한 다양한 코로나 관련 수칙들은 전적으로 개인의 ‘양심(?)’에 의존했다.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비인두도말 PCR 검사’ 방식 대신 일본에서는 ‘타액 PCR 검사’ 방식을 사용했다. 본인이 직접 테스트 키트에 검체를 채취하고 바코드를 등록한 뒤 IBC 내의 지정 장소에 제출하는 방식인데, 다른 사람의 타액을 제출해도 조직위는 알 방법이 없었다. 체온 등 신체 상태는 임의로 입력해도 그만이었고, 차에 휴대폰을 놓고 내리면 편의점에도 충분히 다녀올 수 있었다. 물론 나를 비롯해 주변의 어느 누구도 이런 위반행위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인들처럼 통제에 고분고분 따르는 사람들만 올림픽에 오지는 않았을 터. 실제로 본인이 머물렀던 호텔 식당에서는 저녁마다 십수 명의 서방 국가 취재진들이 모여 마스크도 쓰지 않고 술판을 벌였지만 로비에 있던 조직위 관계자는 어떤 제지도 하지 않았다.
취재진에게 유독 엄격했던 방역수칙이었지만, 정작 확진자가 급증하고 있던 일본 자국민에 대한 통제는 소홀하기 그지없었다. 비상사태가 선포됐음에도 사회적 거리두기나 출입 인원 통제는 없었고, 영업시간 제한 또한 지원금을 받는 일부 점포에만 해당됐다. 하필 우리 숙소가 위치했던 신주쿠 한가운데의 유흥가는 밤만 되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모여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젊은이들이 넘쳐나는, 그야말로 무법지대였다. 현지 가이드 분은 이곳 이야말로 도쿄의 코로나19 폭발의 진앙지이니 특히 조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입국 14일 이후로는 격리가 풀려 자유로운 이동과 외출이 가능해졌지만 숙소 근처의 식당을 가는 것조차 불안했다. 결국 3주 내내 거의 모든 식사를 도시락과 컵라면, 즉석식품으로 해결했다.

‘성적’보다 ‘성장’이 중요해진 올림픽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편하고 힘들기만 했던 올림픽은 분명 아니었다. 무엇보다, 올림픽의 주인공인 ‘국가대표’ 선수들을 눈앞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경험을 무엇에 비교하랴. 김연경(배구) 선수(이하 ‘선수’ 생략)의 스파이크를, 신유빈(탁구)의 스매싱을, 김우진(양궁)의 퍼펙트 샷을 현장에서 ‘직관’했고, 이름만 들어도 심장이 떨리는 스포츠 스타들과 눈을 맞추며 인터뷰를 했다. 승패와 관계없이 그들의 눈에서 타올랐던 열정은 바닥난 체력에 숯이 되어 있던 나의 정신력에도 불을 지펴주었다.
특히, 이번 올림픽에서 내 가슴을 가장 뜨겁게 해주었던 몇몇 선수들이 기억에 남는다. 출전을 위해 온몸의 수분을 다 빼낸 것도 모자라 삭발까지 감행한 강유정(유도), 자신을 가로막는 벽은 물론 스스로의 한계까지 뛰어넘어버린 우상혁(육상),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와 저력으로 눈물 나는 감동을 안겨 준 신유빈(탁구), 귀화까지 해 가며 ‘한국의 아이들이 단 몇 명이라도 럭비를 알고 즐길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실천했던 코퀴야드 안드레 진(럭비), 세계 최강자들과 겨루며 투혼을 발휘하고 목표 달성에 실패한 뒤에도 진정한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진윤성(역도). 메달과는 관계없이 그들은 나에게, 또 우리 국민에게 이미 챔피언이었고, 선수들이 올림픽을 즐기는 모습은 우리(한국 관객)들도 더 이상 메달과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축제 그 자체를 즐기게 해주었다. 그들과 함께 우리도 한 뼘 더, 성장했다.

ARIGATO, Team Korea
‘유래 없이’ 말 많고 탈 많았던 도쿄올림픽은 3년 후 파리를 기약하며 막을 내렸다. 폐막식이 끝나고 올림픽 스타디움 전광판에 펼쳐진 ‘ARIGATO’라는 감사 인사를 우리 선수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하고 싶다. 다시 시작된 3년이라는 그들의 기다림이 희망으로 가득하길 응원한다. 그리고 끝내 ‘미생(未生)’이었던 이번 올림픽 또한 파리에서는 ‘완생(完生)’으로 치러질 수 있기를 바라며, さようなら、東京(사요나라, 도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