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삶] 낯선 길, 비우고 채우다


낯선 길, 비우고 채우다


차마고도에서 만난 나와 우리멀리 가려면 함께 가자!


G1강원민방 전종률 기자


 


 


 


 


차마고도(茶馬古道). 그 낯설고 험난한 길에서 실로 오랜만에 정신의 윤기를 느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분주한 일상에서 벗어나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 속의 고독을 맘껏 누리며 새삼 나와 우리를 되돌아봤다.


생각 없이 살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는데이제부터라도 생각 좀 하고 살아야겠다며 내심 멋쩍은 다짐도 했었다. 고독이 사람을 숙성시킨다는 말이 문득문득 떠올라 혼자 웃음 짓기도 했던 68일간의 짧고도 긴 여정이었다.


G1강원민방 전직원을 5개조로 편성한 중국 차마고도 트레킹은 지난 4월 중순 1조 출발과 함께 시작됐다. 중국 운남성(雲南省) 여강(麗江)의 최고봉인 해발 5,596m 옥룡설산(玉龍雪山) 등정이 최종 목표였다.


 


트레킹 출발을 앞두고 두달여간 체력 단련을 위한 각 조별 주말 산행이 자발적으로 이뤄졌고, 예기치 않은 고산병에 대비하기 위해 전문 산악인들이 추천한 응급약을 미리 준비하는 등 트레킹 일정을 앞두고 G1 가족 모두가 적잖은 심적 부담을 느꼈다. 더구나 가장 먼저 차마고도로 떠난 1조 동료들이 현지에서 전해온 트레킹 코스의 강도는 체력의 한계를 확인할 수밖에 없는 가파른 수준이었다. 트레킹 기간 내내 조원 모두가 직접 등에 지고 가야 할 개인 배낭의 무게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갖가지 아이디어가 한동안 회사 곳곳에서 화제가 됐다.


 




트레킹 3조에 편성된 나는 동료들과 함께 비행기로 인천공항을 출발한지 4시간만에 중국 사천성(四川省) 성도(成都)에 도착했다. 중국 내에서 북경 다음으로 자동차가 많다는 대도시 성도에서 하룻밤을 묵은 뒤 국내선 비행기를 타고 운남성 여강으로 이동했다. 여강은 운남성의 대표적 관광도시. 운남성에 거주하는 26개 소수민족 가운데 고대강족인 나시족(納西族)의 전통 가옥을 비롯한 도시 대부분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도심을 따라 고풍스런 수로가 연결돼 동양의 베니스로도 불리는 여강은 도시 어느 곳에서나 만년설에 덮여 있는 옥룡설산 정상을 바라볼 수 있다. 13개의 석회암 봉우리로 이뤄진 옥룡설산은 그 형상이 푸른 빛깔의 용을 닮아 이름이 그렇게 붙여졌다. 중국 장예모 감독이 나시족 농민 500여명을 동원해 해발 3,100m 특설무대에서 공연한 인상.여강쇼의 실제 배경이 바로 옥룡설산이다.


여강에서부터 조금씩 고도를 높여 옥룡설산을 경유하는 산악 코스가 티베트를 거쳐 인도까지 연결되는 차마고도다. 실크로드보다 200년 이상 앞선 차마고도는 명칭 그대로 중국 남부지역에서 생산된 차()와 티베트의 말()이 주로 교환된 인류 역사상 최고의 교역로다. 육식이 주식인 티베트 사람들은 식물성 영양을 섭취하기 위해 지금도 중국산 차를 생필품으로 여겨 즐겨 마신다.


 


 


트레킹은 봄 농사가 한창인 여강 외곽 지역에서 시작됐다. 운남성 일대는 연평균 기온과 강수량이 다모작 농사에 적합해 부지런한 농부는 한해 5모작까지 농사를 짓는다. 미국 작가 펄 벅의 노벨문학상 수상작 대지의 농부 왕룽이 중국 북부지방의 극심한 가뭄을 피해 가족을 이끌고 이주한 땅이 여기 쯤 아닐까, 하는 여유로운 생각은 트레킹 출발과 함께 사라졌다.


현지 산행 가이드는 첫 트레킹 목적지인 나시 객잔(客棧)까지 가는 산길이 완만해 쉬엄쉬엄 걸어도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하지만 길은 내내 가파르고 비좁았다. 설상가상으로, 앞서 걷는 일행의 가벼운 발길에도 시야를 가릴 정도의 흙먼지가 일었다. 버프로 감싼 코와 입에서 연신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우리 일행은 현지 가이드 2명을 포함해 모두 20명이었다. 이번 트레킹의 궁극적인 목적은 조원 모두가 힘을 나누고 보태 트레킹 코스를 완주하는 것이었다. 경영, 편성제작, 보도, 기술 등 각 국별로 서너명씩 고루 인원이 배정돼 평소 얼굴이나 알고 지낼 뿐이던 타국 동료들을 가깝게 만나는 계기가 됐다. 조원끼리의 경쟁이 아니라 함께 가기 위한 여정이다보니 누가 시키지 않아도 먼저 지친 동료의 배낭을 서로 나눠 메는 흐뭇한 광경이 펼쳐졌다. 해질 무렵 이번 트레킹 코스의 첫 숙소인 나시객잔에 도착했다. 키 작은 나무 몇그루가 고작인 고산 중턱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객잔은 예상과 달리 전기와 뜨거운 물이 있었다. 낯선 자연환경에 적응하느라 지친 심신에 축복 같은 위안이 됐다.


 





옥룡설산 정상을 향한 트레킹은 계속됐다. 차마고도는 나귀 한 마리가 간신히 이동할 수 있는 좁은 길이다. 아래는 그야말로 천길 낭떠러지. 새와 쥐만 간신히 다닐 수 있을 만큼 비좁은 조로서도(鳥路鼠道)가 다름 아닌 차마고도였다. 호랑이가 건너 뛸 만큼 협곡 사이가 가깝다는 호도협(虎跳峽)을 따라 길은 끝없이 이어졌다.


오지의 순례자가 되어 차마고도를 걷는 동안 미망하고 미혹했던 머릿속 사념들이 앙금처럼 가라 앉았다. 몸은 비록 물 먹은 스폰지처럼 무거웠지만 정신은 새털처럼 가벼웠다. 일탈의 환희가 밀려왔다.


 


옥룡설산으로 가는 길에 객잔 네 곳에서 밤을 보냈다. 객잔의 밤은 늘 흥겨웠다. 미리 준비한 소주와 격의 없는 대화가 이국의 밤을 감미롭게 흔들었다. 5분만 예정했던 선후배간 반말하기 게임2시간 이상 유쾌하게 이어지기도 했다. 겉모습으로만 대충 알고 지내온 직장 동료들의 사려 있고 정 깊은 속내를 회사를 떠날 때까지 영영 모를 뻔 했구나, 하는 자성의 시간을 갖기도 했다.


 


옥룡설산 등정 마지막 날. 새벽녘에 객잔을 나선 우리 일행은 마을 마방에서 각자 노새를 타고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이 집에서 기르는 노새를 직접 끌고 나와 일행을 옥룡설산 4,000m까지 안내했다. 수나귀와 암말의 잡종인 노새는 이도저도 아닌 엉성한 생김새와 달리 가파른 산길에서 위력을 발휘했다.


노새에서 내려 정상까지 1,000m 이상을 도보로 이동하는 코스가 마지막 관문이었다. 중국 소설 서유기에서 손오공이 수백 년간 갇혀 벌을 받았다는 옥룡설산의 깊고 장엄한 자태를 힘겹게 쳐다보면서 한걸음 한걸음 산을 올랐다.


정상이 가까워지자 바람도 거세게 불었다. 공기 중 산소량이 급격하게 줄어드는 것인지 호흡마저 쉽지 않았다. 몸은 더는 못 걷겠다며 자꾸만 발목을 잡았지만 동고동락의 깊은 정으로 서로에게 의지한 우리 모두는 정상에 올라 새로운 도전을 기약했다.


 


차마고도를 다녀온 지 한달여가 지났지만 낯선 오지에서 느꼈던 특별한 감상은 선명한 컬러 이미지로 내 안에 남아 있다. G1강원민방이 소통과 도전의 기업문화를 만들기 위해 마련한 전직원 차마고도 트레킹에서 나와 우리를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